단식 계기로 리더십 회복?…급격한 건강 악화에 ‘장기전’ 가능성은 미지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 유우상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 유우상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당초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설치 등 철회를 목표로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체력도 농성 일주일째 접어들면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앞서 황 대표가 단식한지 사흘 만인 지난 22일 투쟁 이유 중 하나였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가 철회되면서 중도에 그만둘 만한 명분이 생겼으나 그때만 해도 지지자들을 찾는 등 건강에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아 23일 “사실 시작은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었다”라며 농성을 이어갔다가 이제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당청은 물론 출구전략을 찾기 어려운 한국당 역시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다가온 선거법 개정안 외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부의도 내달 3일 예정되어 있어 황 대표로선 최소한 이때까지는 단식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지소미아는 차치하고 패스트트랙 법안은 한국당을 제외하고 일방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황 대표의 단식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해낼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黃 단식 결행에 불거진 논란, ‘지소미아 파기 철회’로 일단 만회

황 대표가 지소미아 파기 철회와 공수처법 포기, 선거법 철회 등 3가지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정치권 내에선 대체로 ‘뜬금없다’는 냉소적 반응이 적지 않았던 데다 앞서 당 내부에서도 당 상황과 황 대표의 건강을 우려해 만류했을 만큼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었는데, 여기에 단식 선언하자마자 중도 확장과는 거리가 있는 전광훈 목사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단식 전 영양제를 맞았던 사실이 흘러나오면서 시작부터 논란에 휩싸였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 앞에 천막을 설치하면 안 된다는 규정상 초반엔 청와대 앞에서 저녁까지 농성하다가 국회로 자리를 옮긴 뒤 다음 날 새벽에 청와대 앞으로 이동해 농성을 이어가면서 ‘출퇴근 단식’이란 비아냥도 없지 않았던 데다 주·야간 2교대로 당직자들을 보초 세우면서 ‘갑질 단식’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을 만큼 일찍이 홍역을 치렀다.

심지어 “당 대표가 여론으로부터 조롱 받기 시작하면 당이 회복하기 힘든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고 꼬집었던 같은 당 홍준표 전 대표는 아예 황 대표를 겨냥 “기득권을 지키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려 황 대표가 단식으로 배수진을 친 것은 승부수라기보다 자충수란 시각도 적지 않았다.

특히 단식 선언 직전만 해도 보수대통합 추진 의사를 전격적으로 천명했다가 바른미래당 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측으로부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만 받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안한 1대1 영수회담마저 거절당한데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세연 의원은 황 대표 등을 직접 거명하면서 당 해체와 용퇴까지 역설해 그동안 지도력을 의심 받던 황 대표가 궁지에 몰린 끝에 부득이 꺼낸 게 단식 카드라는 해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부정적 기류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는 단식 3일 만에 자신이 내걸었던 목표 중 하나인 한일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이 결국 이뤄지면서 일단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됐는데,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소식을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접 황 대표를 찾아와 전한 데 이어 24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25일엔 여당 당수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황 대표의 단식농성장을 직접 찾아오는 등 고위급 인사들의 방문이 계속되면서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분위기 변화는 같은 당 의원들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강석호 의원은 2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황 대표의 단식이 뜬금없다는 지적에 대해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많은 분들이 (단식) 거기에 대한 동조를 하고 이해하는 그런 상황”이라며 “지소미아에 대한 한시적 연장을 우리 황 대표 결기로 같이 이뤘다, 그런 생각도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 단식 장기화로 보수진영 결속 효과도…대선주자 위상 회복하나

유승민,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방문을 마친 후 농성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유승민,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방문을 마친 후 농성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그러다 보니 그간 황 대표를 둘러싼 리더십 논란을 불식시킨 것은 물론 급기야 보수진영 결속 효과까지 일어나고 있는데, 25일엔 무소속 이언주 의원 뿐 아니라 황 대표의 단식에 대해 “문 대통령이 얕잡아보고 있는데 단식한다고 해결될 문제냐”고 비판했던 홍 전 대표마저 스스로 농성장을 찾아오기에 이르렀고, 그가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더 이상 황 대표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단식장에서 처음 만나본 황 대표는 참으로 처절했다”며 “당 의원들은 황 대표에게만 짐을 떠넘기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뿐 아니라 26일엔 한국당과의 통합보다 우선 신당 창당 쪽에 무게를 뒀던 바른미래당 변혁 소속의 유승민 의원까지 지상욱 의원과 함께 황 대표를 찾아왔는데, 이 자리에서 유 의원은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법 관련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힘을 합해 막아야 한다”며 황 대표에 연대 의사를 드러냈고 한 발 더 나아가 유 의원은 이날 변혁 회의 참석 후엔 선거제 개편안이 본회의 부의되는 데 대해 “필리버스터 등을 포함해 어떤 방법으로든 막겠다”고 밝혀 한국당과의 필리버스터 공조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이 같은 연대 분위기를 보여주듯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무엇을 위한 단식인가’라고 황 대표를 비판하자 변혁 소속의 이준석 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년 전 패스트트랙을 이유로 단식을 단행했던 분이 패스트트랙 때문에 하는 단식을 왜 비판하는가”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황 대표의 단식을 계기로 보수진영이 결속되는 양상을 띠면서 앞서 한국당 내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황 대표가 감행했던 광화문집회나 삭발투쟁 때처럼 결과적으로 ‘묘수’ 아니냐는 호평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법안은 원내에서 다뤄지는 사안이기에 사실 국회 앞에서 농성해야 함에도 청와대 앞 투쟁을 택한 점 또한 여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실제 배후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인상을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는데다 청와대와의 대치 구도를 이어가 대권주자로서의 위상 또한 다시 확립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비록 이 같은 시각에 대해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패스트트랙 법안들에 대한 야당 요구에 눈도 깜짝 안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이 시기에 몸을 던져 투쟁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목숨을 건 단식을 하는 것”이라며 “정치 공학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단호히 선을 긋고 있지만 최근 황 대표의 단식농성 텐트를 철거하라고 누가 요구한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청와대와 한국당 측 진실공방만 봐도 의도했든 아니든 황 대표가 정치적 효과 역시 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단식만으로 패스트트랙 저지는 어려워…黃 건강 문제도 변수

쇠약해진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25일 단식농성장을 찾아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누운 채로 맞이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쇠약해진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25일 단식농성장을 찾아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누운 채로 맞이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다만 황 대표의 단식이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해도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끼리 선거법 개정안이나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는 건 실질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단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런 면에서 당장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자동부의를 막을 방도가 없는 황 대표가 이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에서 벗어나면서도 내부 결집 효과를 볼 수 있는 단식 카드를 일찌감치 꺼내든 게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없지 않은데, 황 대표가 단식투쟁 중 병원으로 실려 가면 이렇게까지 희생한 그에게 어느 누구도 퇴진 압박을 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황 대표의 건강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건데, ‘목숨을 걸겠다’던 각오가 빈 말이 아닌 듯 혈압이 떨어지고 탈수증세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스스로 단식 철회 의사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공수처법이 자동 부의되는 내달 3일까지는 아직도 6일 정도 남아 있어 일주일 단식으로 쇠약해진 황 대표가 과연 남은 기간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지도 새로운 변수로 꼽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책회의 비공개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의 건강상태와 관련 “거의 말씀을 못하시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도”라며 “저희가 육안으로 보는 것과 의사가 조사한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보수진영 일각에선 연대 단식이나 필리버스터부터 의원직 총사퇴, 총선 불출마에 이르기까지 범여권의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 강경투쟁으로 대응하려는 목소리도 있는 반면 범여권과의 협상을 통해 빨리 타협함으로써 황 대표가 단식을 중단할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마련해주자는 견해도 없지 않은데, 홍 전 대표는 황 대표를 찾은 자리에서 범여권이 추진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패스트트랙 법안 중 사법개혁안은 민주당과 협의 처리하는 정도로 타협하자는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고, 강석호 의원도 이와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황 대표는 공수처법을 비롯한 그 어떤 부분도 타협할 뜻이 없다는 점에서 이 같은 출구전략도 마련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범여권 역시 이렇듯 완강한 한국당 태도를 구실로 한국당만 제외한 채 일방 처리할 경우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의 단식 중단은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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