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같은 삶을 살아온 비극적인 사나이

5살배기 아이가 자장면 사주겠다는 꼬임에 속아 섬으로 끌려와 44년 동안 학교도 못 가고 강제노역을 한 ‘올드 보이’같은 사건이 경찰수사에서 드러났다. 장모(49)씨가 전남 신안의 외딴섬에 들어온 것은 1960년 여름. 당시 목포역 앞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던 장씨는 “자장면을 사 주겠다”는 J(65)씨의 꼬임에 넘어가 자장면을 한 그릇 얻어먹은 뒤 뱃길로 1시간 떨어진 섬에 따라 갔다. 이후 장씨는 J씨의 농삿일과 김 양식, 소 키우기 등 온갖 막노동에 내몰리며 노예 취급을 받아왔다. 장씨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J씨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도 학교 문턱 조차 못 가봤고, 단 한 차례도 섬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채 지옥 같은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고된 노동에 “일이 힘들다”는 불평을 할 때면 J씨는 어김없이 주먹과 발길질로 응답했다. 상습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 근처 산으로 수십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J씨의 집요한 추적에 걸려 이내 강제노동에 내던져졌다. 장씨의 ‘노예노동’ 대가는 그러나 누더기 옷에 개밥이 전부였다. 용돈은커녕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폐가에서 잠을 자야 했다. 섬에 들어와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노예 같은 삶을 살던 장씨에게 정식으로 이름이 생긴 것은 1991년. J씨가 그 동안 장씨를 입양아라며 주위의 눈을 속여 오다 장씨에게 1955년생으로 주민등록과 호적을 만들어 준 뒤 전기와 난방시설도 없는 폐가로 내쫓은 것. 폐가로 쫓겨난 뒤에도 장씨의 노예 노동은 계속됐지만 50여 가구가 사는 집성촌인 탓에 마을 주민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쉬쉬해왔다. 그러나 지난 11일 오후 “일하기 싫다”며 집 근처 산으로 도망간 장씨를J가 또다시 붙잡아 와 집 기둥에 나일론 끈으로 묶어 놓고 대나무 등으로 폭행하던 것을 보다 못한 마을 이장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경찰은 현지 조사와 주민들의 진술 등을 통해 범행사실을 확인, J씨를 검거했다. J씨는 경찰에서 “장씨를 친자식처럼 키웠고,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은 사후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였다”고 진술했다. 한편 “왜 대들지 못했습니까?”라는 경찰의 질문에 장모씨는 응답 없이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경찰은 27일 J씨에 대해 상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모씨가 범인 J씨보다 더 힘이 세거나 저항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는 저항 한 번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노예생활이 중단된 것은 스스로 노력이나 투쟁이 아닌 폭행을 보다 못한 마을 주민의 뒤늦은 신고 때문이었다. 그가 5세 때부터 줄기찬 학대를 받았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정상적인 지적발달을 거치지 못했을 것이고, 어려서부터 워낙 맞고 자라 늘 피의자에게 주눅이 들었기 때문에 저항 한번 못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이런 비슷한 예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편의 습관적인 구타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 자신이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계속 맞고 지내는 여자, 교내폭력에 계속 시달리면서도 쉬쉬하는 아이, 몇 차례의 취직시험에 실패하고 나서 애초부터 나는 안 된다고 자살생각에 빠져 있는 취업준비생, 몇 번의 실연 끝에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며 이성과 담을 쌓는 사람 등 여러 유사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 Seligman)은 동물실험을 통해 절망이 학습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실험실에서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행동을 좌절당한 개는 어느 시점이 넘어서면 더 이상 고통을 피하려는 행동을 포기한 채 수동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후로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도 피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을 그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실험을 인간에게도 시행함으로써 절망이 학습된다는 사실을 밝혔고 한편으로는 낙관성도 학습됨을 보여주었다. 야생의 동물도 빠져나갈 수 없는 우리에 갇혀 사육을 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야생동물임을 잊어버리고 가축인줄 착각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는 우리에서 꺼내주어도 도망갈 줄 모른다. 이정도 단계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재롱도 부린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연적응 훈련에 실패한 지리산 반달곰 프로젝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학습된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다.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고 내 능력과 한계를 바로 볼 때 학습된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동물원의 곰이 가축이라는 거짓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야생동물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을 때 자연 속에서 살아갈 생존본능을 되찾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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