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 요구 '미동' 없는 여야 지도부·반발하는 중진들…난항 예상
여야 인적쇄신 초읽기…자의반 타의반 되나

임종석 전 실장,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사진 / 시사포커스 DB]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4·15 21대 총선을 5개월 여 앞두고 정치권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철마다 새 인물 확보에 따른 인적 물갈이, 정치 시스템 개혁이 정치 혁신으로 여겨지는 만큼 과거 총선에도 불출마 선언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있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 공천 탈락이 점쳐지는 고령자 다선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데 반해 이번에는 초·재선 혹은 40대 의원, 차차기 대선 주자로 촉망받던 인사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대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화두는 반성과 쇄신

표창원·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 / 시사포커스 DB]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내세운 주된 이유는 세대교체, 자책, 쇄신 요구, 백의 종군이다.

가장 먼저 불출마 선언을 한 민주당 비례대표 이철희 의원은 지난달 15일 “정치의 한심한 꼴 때문에 많이 부끄럽다”며 “더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롭게 나서서 하는 게 옳은 길”이라고 쇄신론에 불을 지폈다.

이어 같은 당 표 의원도 지난달 24일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정의’만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초심, 흔들리고 위배한 것은 아닌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아파하며 보낸 불면의 밤이 많았다”고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염증으로 초선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며 쇄신의 깃발을 드는 상황이 오랫동안 당정청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다선 ·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의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후 한동안 상황은 잠잠했으나 86그룹을 대표하는 임종석 전 실장이 17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가뜩이나 86세대에 대한 인적 쇄신 요구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86세대 용퇴론이 재점화됐다.

이제 관심은 임 실장의 이번 선언이 당 내 86세 의원들의 도미노 선언으로 이어져 대대적인 물갈이로까지 번질지다. 현역 의원들로서는 더욱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종로 출마설이 돌던 임 전 실장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특히나 “예나 지금이나 저의 가슴에는 항상 같은 꿈이 자리잡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 번영, 제겐 꿈이자 소명인 그 일을 이제는 민간 영역에서 펼쳐보려 한다”고 향후 입각 가능성 자체에도 선을 그었다.

내년 총선 불출마에 이어 정계 은퇴를 시사하면서 86세대 의원들에 대한 당 내 거취 압박에 한층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수도권 3선인 백재현 의원도 불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백 의원의 공식 선언이 나올 경우 임 전 실장의 불출마와 함께 중진 물갈이설도 몰아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에 폭탄 던진 김세연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사진 / 시사포커스 DB]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에 비해 인적 쇄신 바람은 잠잠했다. 애초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의원의 경우 불출마를 재확인에 그친 것에 불과하고 유민봉 의원도 앞서 불출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시사해 왔다.

때문에 최근 인적쇄신을 요구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사실상 김성찬 의원이 유일할 정도로 한국당 내 쇄신 바람은 미풍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국당에 폭탄을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적쇄신 중심에 서 있는 3선인 김 의원이 불출마를 공식화 하면서 지도부 용퇴나 당 해체, 의원 전원 불출마 같은 고강도 쇄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이 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며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김 의원은 “민주당 정권이 아무리 폭주를 거듭해도 한국당은 정당 지지율에서 단 한 번도 민주당을 넘어서 본 적이 없다”며 “조국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에는 오히려 그 격차가 빠르게 더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호감 정도가 변함없이 역대급 1위다. 감수성이 없다. 공감 능력이 없다. 그러니 소통능력도 없다”며 “당은 공식적으로 완전하게 해체하자.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서, 새로운 기풍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열정으로,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 내용을 보면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는 유승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대표의 보수통합론과 비슷한 맥락이다.

앞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한국당 간판을 내리는 문제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지부진한 보수통합론에 대한 답답함과 함께 해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을 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혹스럽지만...신통치 않은 반응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 / 시사포커스 DB]

임 전 실장과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민주당·한국당 지도부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임 전 실장과 김 의원 모두 당 내에 어떤 교감 없이 불출마 선언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먼저 민주당의 경우 이인영 원내대표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임 전 실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학생운동을 할 때도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더니…저도 이 자리에 와서 처음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3선이다 4선이다 이런 인적 쇄신으로만 혁신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 건지, 더 큰 가치와 새로운 정치 문화의 정립으로 혁신할 수 있는 지혜는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을 피했다.

하지만 18일 이 원내대표는 “모든 사람이 다 나가야 하는 건 아니잖느냐”며 “남아서 일할 사람들은 남아서 일하고 세대 간의 조화도 있을 수 있고 세대 간의 경쟁도 있을 수 있다”고 사실상 86세대·중진급 인적 쇄신에 대해 선을 그었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황 대표는 17일 김 의원이 제안한 당 해체와 의원 총사퇴 요구에 대해 “우리 당의 변화와 쇄신을 위한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잘 들어서 당을 살리는 길로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일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저부터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며 “반드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김 의원의 지도부 퇴진 요구는 거부했다.

이처럼 지도부에서 파장을 최소화하고 있는 가운데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여당에서는 중진·86세대, 한국당에서는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도 만만찮다.

86그룹 핵심인사 가운데 하나인 우상호 의원은 1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우리가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 돼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약간 모욕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보수가 공격하는 것은 별로 힘들어 하지 않지만 같이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지지자들이 '기득권층화돼 있는 86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하면 마음 속에서 '진짜 그만둘까' 이런 생각들이 나온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우원식 의원도 “근거 없이 386·586을 기득권으로 매도하는 건 민주개혁 세력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386, 586이 기득권이라는데 정말 그런가?”라며 “그들은 기득권이기에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기량으로 수구 기득권집단에 맞서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철희 의원은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과 만나 임 전 실장의 불출마에 대해 "86그룹이 세대로서 자리를 비워줄 때가 아니냐는 문제로 그 물꼬를 임 전 실장이 터준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친문과 86 두 주축 그룹에 겹치는 임 전 실장의 선택은 의미가 있다”면서 “2000년대부터 정치를 시작한 그 그룹들이 정계에 들어온 지 20년 됐으면 퇴장할 때가 된 것”이라고 당 내 인적쇄신을 촉구했다.

한국당 중진 의원 사이에서도 김세연 의원의 요구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다. 한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 내 의총에서 먼저 했어야지 당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망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당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3선이 쑥대밭을 만들면 무책임한 것 아닌가”라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의원은 “당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당 내 의원 총사퇴, 지도부 사퇴 등 현실 가능성이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 과연 당을 위한 발언인가”라며 “보수 세력 통합을 위한 새 판 짜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한 말이겠지만 총선 전 지도부를 흔드는 즉 자중지란의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내 저변에서는 김 의원의 이번 선언이 당내 불출마 선언 '도미노'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류도 읽힌다.

김용태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한국당이 제대로 된 응답을 하지 못한다면, 존재 이유를 국민들이 엄중하게 추궁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저야 지역구 이미 내놓은 상태지만 ‘더 험지로 가라고 하면 험지로 가고, 중진들 다 물러나라고 하면 깨끗하게 받아들여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야당이 정부 여당의 실정에 기댄 반사이익을 얻는 게 보통의 일인데 지금 거꾸로 되고 있다”며 당 쇄신을 촉구했다.

◆정치권 인적쇄신 이뤄질까…물갈이 향방은?

국회 본회의장.[사진 / 시사포커스 DB]

인적 쇄신의 '확실한 지표'로 인식될 수 있는 다선 중진의 불출마 기류가 계속 이어질지 미지수다.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여야 중진 의원들의 반발과 불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20대 국회, 법안 처리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고 무엇보다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 등 퇴행하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또 재활의 기회를 호소하기 위해 지도부에서는 인적쇄신이라는 고강도 자정 노력을 보일 것은 분명하다.

국민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쇄신·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여야 물갈이 향방에 대한 전망도 나온다.

먼저 최근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한 것과 같은 자발적인 불출마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중진들의 결단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경우 차후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철희·표창원 의원처럼 정치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떠나거나 권토중래를 위한 일보후퇴일 수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16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이른바 '오세훈 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을 통과시킨 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불출마로 얻은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으로 정치 무대에 복귀한 바 있다.

또한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쇄신 대상으로 지목돼 ‘용퇴’ 압력을 받아 물러나는 비자발적 불출마다. 민주당에서는 586(50대, 80년대학번, 60년대생)이 한국당에서는 3선 이상 다선 의원들이 중심이다. 지도부에서 드러내놓고 불출마를 권고하기 보다는 물밑으로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러한 기류에 반발을 하고 있지만 새판짜기의 거센 바람 속에 물갈이라는 쓰나미를 비켜가기 힘들어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공천 탈락이다. 쇄신 흐름이나 여론을 읽지 못하다 공천에서 탈락하는 경우다. 이는 쇄신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당이 뒤쳐진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인적 쇄신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당이 기득권을 내려 놓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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