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은 ‘동냥벼슬’ .. 고개 숙이고 허리 굽혀야 표를 얻는다
판사 검사 장차관 교수 등은 평생 갑(甲)으로 생활해 국민 호감을 살 수 있는 ‘을(乙)마인드’ 부족
정당이 선거 승리하려면 갑(甲)마인드 인사 걸러내야 - 유권자 여론 반영하는 ‘국민경선제’가 정답
명예와 권력을 탐하며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인사들 - 유권자들은 진정성과 절실함 여부를 바로 알아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는 동냥아치가 참 많았다. 살림이 넉넉하다 싶은 집의 대문을 두드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과 목소리로 먹거리를 구하던 사람들. 늦가을에 추수를 끝낸 농촌의 어머니들은 “추운 겨울을 잘 보내셔야 할텐데...”라며 쌀을 듬뿍 퍼서 퍼주곤 했다. 동냥아치들은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목에 힘을 주고 머리를 빳빳이 드는 동냥아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흔히 국희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도의원, 시의원 등 선출직들을 ‘동냥벼슬’이라고 부른다. 동냥아치가 한푼 두푼 구걸하고 한 됫박씩 쌀을 얻듯이 유권자들에게 한 표 한 표 얻어내야 ‘당선’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한 표를 그냥 줄 리 없다. 일단 선출직에 나오는 사람의 인품과 식견, 전문성을 살핀다. 인생 경력도 두루 점검해본다. 무엇보다도 말이 공손하고 고개를 잘 숙이며 ‘겸손’할 줄 아는지 따져본다. 지역구에서 “그 사람은 싸가지가 없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출마를 접는게 나을 수 있다. ‘소문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나쁜 소문일수록 더 빨리, 더 멀리, 더 넓게 퍼져 나가는 반면, 좋은 소문은 연못에 던진 조약돌처럼 조금 퍼져나가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10명의 열렬한 지지자보다 ‘고춧가루 한 명’이 더욱 중요한 게 선거판이다.

내년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한층 바빠졌다. 현역 의원들은 아예 지역구에서 산다. 한 표라도 더 얻으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잘 숙여지지 않는 허리도 최대한 굽혀가면서 친한 척 애쓴다.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어린 학생처럼.

정치권의 관심사는 여당과 야당 간 전체적인 승패 여부다. 내년 총선에서는 과연 어떤 후보자, 어떤 정당이 이길까.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일단 ‘정책 중심의 총선’이 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컨대 4.15 총선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라면 ‘현 정책을 지속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스톱시켜야 하는가’를 놓고 유권자들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예컨대, 소득주도성장과 경기침체,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탈원전과 전기료,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확대, 문재인 케어와 의료보험료 상승, 부동산 규제와 세금의 적정성, 외교와 안보의 성패 등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 선거판에서는 ‘정책 선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정책 자체의 진짜 의미도 알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책 하나하나가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인물 선거’가 되어버린다. 특히 선출직에 나서는 후보에 대한 ‘호불호’와 ‘전체적인 이미지’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인물선거에서 절대적으로 유권자의 표를 좌우하는 게 ‘동냥벼슬에 대한 마인드’이다. 달리 표현하면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행을 하고, 고개를 팍팍 숙이는 후보자가 표를 더 많이 얻게 된다는 의미다.

‘동냥 마인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체득해야 자연스럽게 나온다. 예컨대 자신의 인생이 걸린 절박한 후보자와 ‘제 2의 인생’을 생각하는 후보자와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평소에 을(乙)의 인생을 살았거나 을(乙)과 부대끼며 지내온 후보자와 늘 갑(甲)의 위치에서 누리고 살아온 후보자의 차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결국 여나 야나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동냥벼슬의 의미를 잘 아는 ’을(乙)마인드’의 인사를 많이 후보자로 내는 게 바람직하다. 반대로 해석하면 갑(甲) 마인드를 지닌 인사를 많이 후보자로 낼수록 진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에서 ‘갑(甲) 마인드’가 충만한 직업들이 있다. 장관이나 차관 등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분들, 판사나 검사 등 어릴 적부터 영감 소리를 듣고 산 인사들, 교수와 박사 등 남을 가르치기만 한 사람들, 별을 달고 번쩍거리는 지프차를 타고 다닌 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늘 아랫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주로 지시를 했지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 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반면에 노동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 오랫동안 변호사를 한 사람들, 혹은 기업에서 자수성가한 분들의 경우 ‘눈칫밥’을 먹어 왔기에 상대방의 생각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을(乙)로 살거나 최소한 을(乙)의 심리를 읽고 다독거릴 줄 아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내년 총선에 참여하는 각 정당들의 구성원을 보자. 어디에 갑(甲)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고, 어디에 을(乙)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은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갑(甲)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목이 뻣뻣하고 허리가 쉽게 굽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불쑥불쑥 갑 마인드의 ‘헛소리’가 튀어나온다. 그러다보니 선거판에 재를 뿌리거나 훼방을 놓는 고춧가루 부대를 자기도 모르게 양산하는 바보짓을 하기도 한다.

내년 총선에 임하는 정당들의 운명은 과연 갑(甲) 마인드를 지닌 인사를 얼마나 걸러내는 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의적으로 인사를 쳐낼 수는 없는 법. 결국 갑 마인드를 지닌 인사를 걸러내기 위해서는 지역 후보자를 지역 유권자들이 직접 선정하는 ‘국민경선제 방식’을 도입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당 지도부에서 내려찍는 후보자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아 그 사람, 괜찮아요!”라고 하는 후보를 골라서 선거에 내보내야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할 때 거만하거나 목에 힘을 주며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인물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권력욕’만 추구하는 위선자들을 나름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甲(갑) 마인드’를 지닌 인사들의 특징이 있다.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과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것. 사람들은 진정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쉽게 정의할 수 없지만 어떤 인물이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바로 알아본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절실함이 있는지 없는지도 말 몇 마디와 행동거지에서 그냥 눈치 챈다. ‘진정성과 절실함이 부족한 후보’를 많이 내는 정당, 그 정당은 오로지 망하려고 작정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망할 때 보면 ‘남이 망하게 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망한다.’는 말처럼.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