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 표퓰리즘이냐 현실적 대안이냐
20대 남성의 불만, 모병제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고용지표가 개선세를 보이면서 9월 청년층 고용률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체감 실업률은 20%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만큼 청년 일자리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듯 20대 총선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 월급 300만원을 주는 직업 군인 형태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출산율 0.98명이라는 인구절벽 현실을 맞아 현역병 대상의 부족을 대비한다는 명분과 함께 이른바 ‘이남자’로 불리는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는 실리를 모두 챙길 이슈를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상황에서 국민 정서상 수용이 쉽지 않고 자칫 안보 불안을 초래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어 민주당에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연구원, “인구절벽 상황에선 모병 불가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7일 ‘분단 상황 속 정예강군 실현 위해 단계적 모병제 전환 필요’라는 정책브리핑을 발행했다. [사진 / 민주연구원 정책브리핑 캡처]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7일 ‘분단 상황 속 정예강군 실현 위해 단계적 모병제 전환 필요’라는 제목으로 모병제 공론화에 나섰다.

민주연구원은 모병제 전환을 “정예강군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대적 과제로 병역자원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서 인구절벽을 근거로 들었다.

민주연구원이 국방부 자료를 토대로 산정한 결과 주요 병역 자원인 19~21세 남성이 2019~2013년간 100만4천 명에서 76만8000만 명으로 23.5% 급감하고 2030년~40년간에는 70만8000만 명에서 46만500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분석했다. 2028년부터는 국가 전체 인구증가율도 마이너스로 전환하는 만큼, 당초 계획대로 '50만 군대 및 병 복무기간 18개월'을 유지해도 병역 자원 확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해당 보고서는 “2025년부터 군 징집인원이 부족해져 징병제를 유지하고 싶어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병력 수(量) 중심에서 '전력 질(質)' 중심의 군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징병제 체제에서는 첨단 무기체계 운용 미흡 등으로 숙련된 정예강군 실현이 불가하며 징병제를 유지할 경우 오히려 전투력이 하락할 위험성이 있기에 모병제 전환을 통한 ‘장기 복무 정예 병력’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연구원은 현재 복무기간으로는 전투숙련도가 상급(16~21개월 필요)에 이르지 못하고 전역하는 상황이며 해·공군 및 특수 임무를 맡은 부대일수록 심화된다는 분석이다. 즉 복무 단축으로 전투 기량이 더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다.

징병제의 강제성은 군의 질과 사기 저하를 가져오고 있고 미래전 양상의 변화에 따라 병력 규모가 아닌 첨단무기체계에 기반한 군사전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첨단 무기체계에 기반을 둔 통합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연구원은 정예군을 뒷받침할 게임 체인저로 ▲기계화부대 중심 전략기동군단 ▲전천후·초정밀·고위력 미사일 ▲적 종심 침투 등 특수임무여단 ▲‘드론+로봇’ 드론봇전투단 ▲개인전투체계 ‘워리어플랫폼’을 신속히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징병제로 인한 기회비용이 11.5~15.7조 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모병제로 사병 18만을 감축할 시 GDP 상승은 16.5조 원의 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져왔다.

◆모병제로 남녀갈등 해결?

눈에 띄는 것은 모병제를 도입할 경우 ▲군가산점 역차별 ▲병역기피 ▲남녀간 갈등 ▲군 인권확대 및 부조리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보고서는 “모병제 자체가 개인의 자발성과 애국심에 기초한 만큼 군기와 사기가 충만한 군대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질적 사회문제였던 병역비리를 근절하고 자원입대 병력 구성으로 군 인권수준을 향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화두로 올랐지만 일부 20대 남성들은 불편함을 넘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미국 CNN은 지난 9월21일 한국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백래시(반발)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CNN은 한국 남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취업난 ▲군복무 박탈감으로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즉 남성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일자리 및 정부 정책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한 남성은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20~30대 여성들은 차별 받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다”라며 “병역 의무와 취업에서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CNN은 “경쟁이 치열한 한국의 일자리 시장에는 보수가 좋은 직장이 적다”며 “한국 경제는 1970~1990년대 급성장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청년실업률은 6.9%에서 9.9%로 오르는 등 젊은 세대는 경기침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2월19일 20대 남성들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가 급격히 떨어진 원인을 ‘젠더 이슈·병역 문제·일자리 부족’을 꼽았다.

표 의원은 당시 KBS 1TV ‘사사건건’에 출연해 “양성평등과 성폭력·미투(#MeToo) 국면이 지나가면서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많이 이뤄졌고, 법원에서도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20대 남성들은 ‘이러다가 남성은 여성이 말만 하면 범죄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상대적 피해의식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적 이유를 포함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 여파와 그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정착되지 않은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수 남성은 ‘나는 군대 갔다 와서 사회에서 손해도 많이 보고 보상도 없는데 기피한 사람들은 (오히려) 존중받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린 지난해부터 이남자(20대 남자) 지지율이 심상치 않았다. 종교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논란과 일자리 등 경제사회적 상황악화 과정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혜연 정의당 부대표도 지난해 12월 20일 상무위원회에서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정부정책에서 자꾸만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국 사태로 20대 남성 지지율이 급락하자 경제난·취업난과 맞물려 20대 남성들이 정부로부터 소외됐다는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20대 남성 맞춤형 공약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갑론을박’...野. “안보불안·불공정 유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사진 / 시사포커스 DB]

하지만 모병제가 민주당의 총선 공약으로 채택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당장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의 ‘모병제’ 검토에 대해 안보불안·불공정 유발 및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보훈단체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권 2년 동안 제일 불안한 것 중에 하나가 안보 불안인데 총선을 앞두고 모병제를 꺼내는 모습을 보면서 ‘심사숙고해야 될 문제를 이렇게 불쑥 꺼낼 수 있느냐’는 생각을 했다”며 “병역을 선거의 도구로 만드는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나 원내대표는 “안 그래도 지금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불공정에 상처를 많이 입고 있는데 군대 가는 문제에 있어서까지도 또 다른 불공정을 유발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며 “모병제로 인해서 안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걱정, 또 준비 없이 모병제를 불쑥 했을 때 공정의 문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심사숙고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어떠한 논의도 없이 불쑥 꺼낸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많이 들었다”며 심사숙고 해야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변혁 회의에서 “모병제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 국가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해 왔다”며 “민주당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총선을 앞두고 나온 것을 보고 매우 충격적이고 놀랐다”고 꼬집었다.

유 의원은 “모병제는 남북이 이렇게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우리 국가 안보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안보를 해칠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모병제는 징병제에 비해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제도”라고 했다.

이어 “실제로 모병제가 도입됐을 경우를 상상해 젊은이들이 어떤 사람이 군에 가고 어떤 사람이 군에 안 가는 현상이 발생할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며 “민주당은 당장 이 모병제 아이디어를 거두고 국가 안보에 위해되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20대 총선 당시 모병제를 정식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의당은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의에서 “인구감소의 위기 시대에 당연한 선택”이라며 “정의당은 이미 한국형 모병제를 제안한 만큼 민주당이 모병제 검토 결과를 도출한다면, 군 체계 개편문제에 대한 국민토론회 등을 거쳐 공론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종민 부대표는 “이것이 총선용이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며 “당론으로 검토해보겠다는 것인데, 여론 떠보기용이라면 무책임한 정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모병제 안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을 명확히 내오길 바란다”며 “정의당은 민생국방, 국민안보의 입장에서 모병제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토론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이야기 한 적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모병제 관련해 “민주연구원에서 여러 가지 견해 중 하나로 나온 것 같은데 확인해보겠다”며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할 단계도 아직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공론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며 “정책위원회에선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체제라는 우리 안보의 특수성 때문에 국민 정서상 수용이 쉽지 않고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20대 남성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까지 갑론을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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