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측근들만 살기 좋은 세상…‘20년 독재’에 국민 경제는 바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크렘린궁

[시사포커스 / 임솔 기자] “국민 3분의 1이 매년 두 켤레의 신발을 살 여유도 없다”

지난 3월 러시아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동향 조사 보고서’에 적혀있는 글귀다. 이 보고서에는 국민 13%가 개인 화장실이 없어서 야외나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과 국민 53%는 병원비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할 비상금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또 지난 5월 러시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레바다 첸트르’에 따르면 응답자 중 65%가 은행에 예금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12년부터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현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국민들의 소득 대비 저축 비율은 3.7%로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축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소득 수준 때문인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뒷받침됐다.

러시아의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독재를 꼽고 있다. 독재로 인해 경제가 파탄난 대표적인 나라로 김씨 왕조가 군림하고 있는 북한과 우고 차베스, 니콜라스 마두로가 1999년부터 통치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꼽을 수 있는데, 러시아도 이들 국가의 뒤를 따를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도 1999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맡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BBC에 따르면 푸틴은 소련의 비밀경찰인 KGB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그의 측근들은 대부분 소련의 안보 분야 엘리트 출신이다. 이들은 매우 부유한 기득권층이며 푸틴 대통령 본인도 거액의 재산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로이터통신은 푸틴과 가까운 다른 권력자의 자녀들이 고위 행정직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러시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반부패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는 이를 두고 소수의 특권층만 돌보는 ‘신 봉건 체제’라고 꼬집었다. 나발니는 “푸틴의 정치 체제는 부패에 의해 매우 약화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고, “집권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은 ‘사기꾼들과 도둑놈들의 정당’이고 현 정권은 존재할 가치가 없으므로 붕괴돼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7월에는 한 달 최저생계비가 1만753루블(약 20만원)인 절대빈곤인구가 전국민의 14.3%인 2090만명이라는 통계청 조사 결과가 있기도 했다. 2018년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까지 빈곤 수준을 6.6%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지만 현재 추세로 볼 때 달성할 확률은 극히 적어 보인다.

과거 냉전 시기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소련의 위상을 감안하면 이를 계승하고 있는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처참하게 몰락한 셈이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유럽연합(EU)에서도 낮다는 루마니아보다 낮으며, 실질임금은 불가리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과거 소련의 위성국가였는데 러시아가 이들보다 못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게다가 부의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어서, 러시아 국영 대외경제개발은행(VEB)에 따르면 최상위 3%가 국가 금융자산의 89%를 소유하고 있다. 또 블룸버그는 올해 1분기 러시아 상위 23명의 재산이 223억달러 증가했다고 추정했다.

지난 8월 1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 모습. ⓒDWE
지난 8월 1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 모습. ⓒDWE

상황이 이렇다보니 러시아 청년들의 탈(脫)러시아 의사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갤럽이 지난해 실시한 현지 면접조사에서 15~29세 청년층 응답자 중 44%가 해외로 이주하고 싶다고 답했다. 2014년 같은 조사에서의 이민 희망 응답이 7%였던 것과 비교하면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6월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감사원장은 국민들의 생활수준 저하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이 같은 현상이 계속 지속되면 국가적으로 ‘혁명적 상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7월 레바다 첸트르는 ‘2024년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이 남아있길 원하냐’는 질문에 38%가 ‘원치 않는다’고 응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의 27% 보다 11%p 늘어난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지난 8월에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푸틴은 도둑’, ‘차르 타도’, ‘러시아에 자유를’ 등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으로 행진을 이어갔는데 당국이 강경 진압을 시도해 하루에만 모스크바에서 245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1.6%에서 1.2%로 하향조정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1.2%, 세계은행은 1%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자국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1%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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