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입했다가 오히려 더 치솟는 부동산 가격부터 경제성장률 하락, 국회에서의 공수처법 논란 등 과거 노무현 정권 당시가 그대로 재현된 듯한 뉴스가 연일 지면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반미 분위기가 극에 치닫던 그때를 연상시키는 극렬 시위대의 주한미국대사관 월담 사건까지 최근 벌어져 참으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미 올해 초에도 미국 대사관 앞에서 탄저균 미군 철수 시위가 벌어진 바 있고, 현 정권 출범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방한했었던 지난 2017년에도 미국 대사관 앞에서 한국대학생연합 사드 반대시위 등을 벌였지만 그간 청와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인지 이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제대로 된 반응조차 내놓지 않아왔다.

심지어 현재 부임해 있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 대해선 우리 정부가 외교부로 불러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협정 종료 결정을 비판하는 발언을 자제해달라면서 사실상 ‘초치’한 것으로 밝혀져 이 같은 초유의 사건에 전직 주한 미국 대사들까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 아니라 해리스 대사는 물론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까지 앞서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한미 군사안보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한국에서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청와대는 ‘한미 군사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발언하는 등 일찌감치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듯한 행보를 노골적으로 지속해왔다.

특히 일본에선 4세대 이동통신 때 화웨이 장비를 대거 설치했던 소프트뱅크마저 미국의 우려 표명 이후 다른 업체 장비로 전면 교체하겠다고 발 빠르게 대응했음에도 정작 우리나라는 ‘화웨이와의 거래는 기업 자율로 결정할 일’이라며 청와대부터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반응하니 이러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졌었는데, 그 영향인지 한일 무역 갈등 때도 미국은 이를 방관하면서 우리의 중재 요청을 칼같이 거부한 바 있다.

이처럼 그동안 일련의 과정을 보다 보면 한미 간 갈등수위는 현 정부 들어 점차 높아져 간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번 대사관 월담 사건과 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나 미 국무부가 외교공관 보호 노력 강화를 ‘촉구’한다는 외교적으로 이례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입장을 표명한 것만 봐도 이런 냉랭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당사자인 해리스 대사는 주한미국대사관 무단 침입 사건이 처음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라고 지적한 것은 물론 미 대사관 직원 두 명이 다치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한국 정부 당국 누구도 미안하다고 표명한 바 없다며 섭섭한 심정을 드러냈는데, 이런 공개 발언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함에 따라 24일엔 미 대사관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태드 데이비스 해외건축운영국장 등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급파돼 직접 대사관저 보안 실태 등을 점검하기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도 미 대사관저를 침입했던 대학생진보연합 측에선 끝까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을 체포한 담당경찰의 실명과 휴대전화를 SNS에 공개하며 적반하장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현 정부와 공권력이 얼마나 눈치를 봤으면 범법행위를 하고도 이들이 이렇듯 대범하게 행동할 수 있겠나.

더구나 대진연이란 이 단체는 지난해 ‘김정은 방한 환영’ 집회를 연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고 지난 4일에는 반미 기자회견을 연 뒤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기습 점거 난동을 피우기도 한 것으로 밝혀져 북한이라면 무슨 얘기를 들어도 온정적인 현 정부가 이번 사건에도 ‘학생들이 다칠 수 있다느니’ ‘여대생이라 신체접촉이 어렵다느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의도적으로 소극적 대응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월담 저지는 차치하고 후속조치도 여러모로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 무려 17명의 대학생이 사다리 두 개를 이용해 미 대사관저 돌담을 넘었으나 이들 중 고작 7명만 경찰에 구속됐으며 법원은 그나마 이 중 3명은 제외하고 4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데 그쳐 일각에선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미국과 교섭 중인 정부가 이들 단체의 행동을 미측에 대한 압박카드로 활용해보려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미국과만 대화하며 그간 러브콜을 보냈던 한국에는 오히려 연일 으름장을 놓고 있는 북한에 대해선 항의는커녕 엉뚱한 낙관론을 펴거나 비호하기에 급급해 반세기 넘는 동맹인 미국에 대한 모습과는 참 대비되고 있는데, 현재 김정은에 대하는 태도의 절반만이라도 일찍이 미국에 보여줬었다면 과연 미 정부가 직접 대사 피습까지 당했었던 이전 박근혜 정권 때보다 우려 어린 반응을 보였을지 청와대를 향해 한번 묻고 싶다.

원교근공이란 말은 외교관계에 있어 누구나 흔히 들어왔을 만큼 미국과의 관계는 그동안 우리나라에 다른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도 중시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번 정권 들어 지나치게 이를 경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일같이 걱정되는데, 부디 자신들의 세계관과 논리에만 빠져 한국이 직면해 있는 냉엄한 외교 현실을 도외시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재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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