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이념적으로 매혹적이었으나 실현되었을 때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도출
윌 로저스 “공산주의는 금주법과 같다. 좋은 생각이지만 제대로 실행될 턱이 없다.”
좌파 사회주의자들 ‘개인보다 집단 우선’의 사고로 협력과 동반자 대신 증오와 적을 양산
평등과 분배를 우선하는 사회주의의 정책 수단은 ‘규제와 보조금’이며 결과는 ‘경제 파탄과 하향평준화’
레이몽 아롱 “사회주의는 지식인의 아편” -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맹독

사회주의는 세상에 수많은 해악을 끼쳤다. 역사는 좌파 정치인이나 좌파 경제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념으로는 가장 매혹적이었으나 실현되었을 때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은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던 여러 독재자의 휘황찬란한 말과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붕괴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중국은 마오쩌둥 밑에서 백성들이 갖은 고초를 겪다가 덩샤오핑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난 후에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베트남도 가난에 허덕이다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도입한 후 국민들의 삶에 숨통이 트였다.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를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면 결국 사회주의는 진리 아닌 사이비과학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시장은 존재했다. 그러나 ‘거래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윤을 내면 안 되는 경제였다.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여겼으나 이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기 몫을 챙겨갈 수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적당히 일하며 책임은 남에게 미루는 ‘게으름뱅이 사회’가 됐다. 사회주의 체제가 작동되던 시절 동유럽에서는 “정부는 인민을 위하는 척 하고, 인민은 일하는 척 한다”는 유머가 나돌기도 했다.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자들이 경제를 이해했다면 그들은 이미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중국은 시진핑의 집권 이후 시장경제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2013년 당 공식문서에 “시장이 자원배분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표현을 넣기도 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폐단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협력 대신 증오’를, 동반자 대신 적을 선택한 것은 너무나 큰 오류였다. 사회주의자들은 소위 혁명을 진행하면서 한결 같이 사회 구성원을 인민 대 비(非)인민으로 2등분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인민들에게는 동지적 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를 실시하고, 비우호적으로 판단되는 비인민들에게는 적대적 독재를 시행했다. 타인(비인민)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고, 우리(인민)는 복잡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로는 좋기도 하고 때로는 나쁘기도 한 복잡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많은 좌파 지식인들과 작가들이 ‘조국 수호’를 외치며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비인민의 인격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게 되고 ‘킬링필드’를 만들기 일쑤였다

사회주의는 ‘개인보다 집단 우선’을 실시하면서 강제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난과 불행의 공평한 분배만 가져왔을 뿐이었다. 지상낙원을 약속했으나 오히려 지옥을 만들었고,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오히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미국의 윌 로저스는 “공산주의는 금주법과 같다. 좋은 생각이지만 제대로 실행될 턱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주법은 1920년 시행됐으나 가짜 술만 넘쳐나 값싼 술을 마시던 서민들은 건강을 잃고 죽는 사람까지 속출한 반면, 부유층은 돈이 더 들었을 뿐 술을 마시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마치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 지배층만 호사를 누리고 인민들이 고통 받는 것과 비슷했다. 당시는 밀주를 통해 갱단들이 득세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33년 연방 차원에서 폐지됐다)

좌파 사회주의의 처절한 실패 역사를 보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얘기했다. 그렇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자본주의 즉 시장경제가 초래한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사회주의의 흑역사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세력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 석기시대를 지내오면서 혈연과 부족으로 이뤄진 소규모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내 것, 네 것’에 대한 관념이 약했으며 공동체 정신이 중요했다. 평등한 나눔이나 유대감 등의 도덕적인 감성을 좋아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대에 들어 개인의 중요성이 집단보다 더 강조되는 ‘개인주의의 등장’ 덕분에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인간의 뇌에 기억되는 기간이 짧은 것이다.

좌파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 심성에 착안해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고 ‘국민을 보듬어주는 큰 국가’를 지향한다. 문재인 정부의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구호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함께, 더불어, 동반, 파트너’ 등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다. 그들은 공동체를 강조하다보니 ‘경쟁, 평가, 불평등’을 싫어한다. 공정한 경쟁 촉진, 엄정한 평가, 노력과 실력에 따른 불평등은 사회를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그러한 과정을 무시한다. ‘무지개빛 결과’만 그려놓고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정책실패로 달성하지 못하면 각종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아니면 남 탓으로 돌려버린다. 프랑스의 정지학자인 레이몽 아롱은 마르크스의 어록인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를 패러디해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표현했다.

세상에 100% 좌파 사회주의 정책도 100% 우파 자유민주주의 정책도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간보다는 정부, 자유보다는 평등, 성장보다는 분배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달성 목표로 삼는 정책들은 좌파 정책으로 봐야한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규제와 보조금’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다. 이러한 정책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문재인 정부가 ‘좌파 사회주의 성향’이라고 하는 이유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공무원 증원과 공기업 비대화, 자율형 사립고 축소, 세금 인상, 재정지출의 확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의료지원 강화 등이 모두 ‘규제 또는 보조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은 뒤처진 사람을 끌어주는 게 아니라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다. 이게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결국 사회와 국가는 발전하지 못하고 ‘하향평준화’가 이뤄진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예외 없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흔히 자녀를 가르칠 때 ‘물고기 이야기’를 많이 언급한다. 배고픈 자녀에게 물고기를 줄 것인가 아니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줄 것인가. 그냥 물고기를 주겠다는 게 좌파 사회주의적 생각이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게 우파 자유민주주의적 사고이다. 모든 부모들은 어느 편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유익한지 잘 안다. ‘나라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좌파 사회주의 정책이 시행되면 그 피해는 누가 입을까. 해악은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좌파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망가지자 중산층과 서민들은 몰락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됐다. 반면에 집권층은 큰 영향이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영향을 중산층이 2016년 66.2%에서 2019년 58.3%로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문재인 정부를 구성하는 권력층과 그 주변 인물들은 한 자리씩 꿰어차거나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자금으로 잔치를 벌이는 형국과 비슷하다.

좌파 사회주의는 공격에 능하다. 실제로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은 망했지만, 사회주의가 출현했던 가장 큰 이유 즉 ‘사회 내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사라질 수도 없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되는 한 ‘케이크를 나눌 때 완전 평등’은 실현되기가 불가능하다. 그런 사실을 포착한 입심 좋은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약자의 대변자’임을 자처하고 공격에 나선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나빠서가 아니라 어차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경쟁 상대도 없고 대체방안도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약을 판다. 모든 병을 고치겠다고 거리에서 떠들어대는 떠돌이 약장수는 완벽한 거짓말쟁이다. 그런데도 좌파 정치인이나 좌파 지식인들은 이런 약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팔아댄다. 마치 사기꾼이 “이거 돈 됩니다. 투자하세요”라고 속이는 것처럼. (그렇게 돈이 벌리면 자신이 몰래 투자하지 왜 다른 사람에게 투자를 권유할까?)

투자에서 고수익이 보장된다고 약속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기꾼으로 보면 된다. 그건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국의 한 교수가 칼 포퍼를 찾아가 인삼차를 건네며 만병통치약이라고 소개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만병통치약은 아무 병도 못 고칩니다.” 좌파 사회주의가 바로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중국의 당 태종의 말 중에 “옛 일을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라는 표현이 있다. 좌파 사회주의는 역사를 통해서 철저히 검증된 만큼 절대 속지 말아야 한다. 그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맹독’이었다. 좌파 사회주의가 ‘맹독’임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국민이 현명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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