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공산당 선언)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해악을 끼친 나쁜 책
사회주의 체제를 이해하는 핵심은 권력구조 ? 소련 중국 북한 등 예외 없이 독재자 출현
자유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오류 수정 시스템인 반면 사회주의는 독재자 옹호하며 잘못도 방치
레닌도 민주화 외치며 “거짓말도 혁명 수단” - 운동권 세력도 신념 앞세우며 거짓말도 정당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앞에 새겨져있는 멋진 문구다. 세대에 걸쳐 쌓인 지식과 지혜는 수많은 양서(良書)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졌고, 인류를 성장과 번영의 길로 이끌었다. 세상사가 늘 그렇듯이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인류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친 나쁜 책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히틀러의 <나의 투쟁>, 마오쩌둥의 <마오쩌둥 어록> 등이 꼽힌다. 특히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1959년까지 최소한 86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로 추정되는 데 널리 퍼진 만큼 악영향도 막심했다.

1848년 발표된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자본주의는 결국 몰락하여 노동자들의 사회로 대치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마르크스는 노동 계급의 선봉인 공산주의자들이 사유 재산을 폐지하고 프롤레타리아 세상을 열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어로 쓰인 <공산당 선언>은 처음 몇십 년 동안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당국의 검열과 감시 속에서 출판도 어려웠다. 러시아어 초판도 러시아가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왔다.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던 <공산당 선언>은 나중에 특별한 독자들을 만났다.

스위스 취리히에 살던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라는 러시아 혁명가는 <공산당 선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즉각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그는 <공산당 선언>의 내용을 실천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이름을 취했다. 레닌이었다. 레닌과 그의 동지들은 1917년 러시아가 혼돈의 시기를 맞았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전환시켰고,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당이 한 나라를 다스리도록 만들었다.

<공산당 선언>은 중국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문이 1908년에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완역본은 1920년경에 나왔다. 반체제 지식인들과 어울리던 마오쩌둥은 중국어만 읽을 줄 알았는데, 마오쩌둥은 <공산당 선언>을 읽고 역사는 자신의 편임을 확신하면서 공산주의(사회주의) 혁명에 뛰어들었다.

베트남의 호치민은 프랑스어를 알았고 젊은 시절 프랑스어로 된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그는 프랑스 유학시절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고,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에 맞선 독립 투쟁에서 <공산당 선언>을 활용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당 선언>을 읽은 시기는 1952년이었다. 그는 “그때 하루는 <공산당 선언> 한 권이 내게 들어왔고 결코 잊지 못할 말들을 보았다. ..그 표현들과 진리라니!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진리들을 매일 목격했다.”고 회상했다.

<공산당 선언>의 열렬한 독자들이 만든 나라들은 그들의 소망과 달리 볼썽사납게 몰락했다. 풍요로운 유토피아를 꿈꿨으나 예외 없이 ‘빈곤과 억압과 공포의 세상’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다 그런 패망의 길을 걸어야 했을까.

공산화된 헝가리에서 살았던 경제학자 야노쉬 코르나이는 ‘권력구조야말로 사회주의 체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권력구조야말로 사회주의 사회가 ‘비효율과 부패의 극치’에 이르고 결국 패망의 길에 들어서는 지를 설명해주는 열쇠가 된다는 의미다.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최고 기구로서 공산당은 국가위에 군림한다. 공산당은 중앙위원회에 운영되는데, 이 기구는 보통 정치국원이나 상무위원 등 소수 당원으로 이뤄진 정치국이 관장한다. 정치국은 거의 언제나 최고지도자의 지도를 따르게 된다. 권력이 집중되므로 필연적으로 독재자를 낳는다. 이러한 체제를 고안한 사람은 레닌으로 그는 이를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불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함께 민주라는 어휘가 심각하게 모독을 당한 사례다)

레닌과 함께 혁명에 참여한 레온 트로츠키도 레닌의 방안이 가진 문제점을 일찍부터 예언했다. 트로츠키는 1906년 “당 조직은 처음에 당 전체를 자신으로 대체한다. 다음에는 중앙위원회가 당 조직을 대체한다. 마지막으로 한 독재자가 중앙위원회를 자신으로 대체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닌은 러시아의 차르(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둘렀다. 공산주의 체제가 굳어지자 스탈린은 레닌보다 훨씬 큰 권력을 행사했다. 스탈린 이후 러시아 지도자들은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지만, 브레즈네프도 결국 권력집중을 통해 스탈린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다. 한 독재자의 권력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났지만, 그건 다른 독재자의 출현으로 대체됐을 뿐이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도 절대적 권력을 누렸고, 덩샤오핑은 그 밑에서 박해를 받았다. 덩샤오핑은 이런 사정을 개선하려고 집단지도체제를 고안해 시행했다. 그의 개혁은 공산당의 권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한계가 있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절에는 집단지도체제가 그런대로 굴러갔으나,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다시 권력 집중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 ‘공산당 일당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주의의 속성 자체가 결국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 독재자들은 최종 결정권자가 되다보니 ‘무오류의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다. 독재자의 오류를 인정하면 이는 공산당의 오류를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산당 통치의 당위성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오류’는 과거 절대 권력의 황제나 왕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중국 당나라의 현종은 22세의 며느리인 양귀비를 취하면서 ‘제왕은 무치(無恥). 황제는 부끄러울 게 없다’고 했다. 서양 역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한 것으로 유명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하느님의 대리인이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한 낡은 생각이 20세기에 사회주의 국가에서 재현됐다.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중국과 베트남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사회주의 독재자들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한반도 북쪽에서는 여전히 독재자의 우스꽝스러운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최고권력자가 백마를 타고 ‘백두산 등정 쇼’를 펼치고, 남북한 축구경기가 ‘무관중, 무중계, 무득점’의 소위 3무(3無)경기가 되는 것 등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 나타나지 않을 현상이다.

권력구조는 달리 표현하면 의사결정 시스템을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는 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는 유권자의 의지와 능력에 의해 움직여진다. 정치가 잘못되면 권력을 교체하고, 경제에 불균형이 생기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 ‘끊임없는 수정과 보수’를 통해 발전해나가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사회주의 체제는 ‘무오류 인간’인 독재자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므로 일이 잘못됐을 때 이를 지적하고 시정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끊임없이 잘못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발각되면 독재자가 다른 사람을 느닷없이 희생양으로 삼아 처형하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끊임없이 숙청이 일어나고, 통계 조작과 왜곡 선전 등 거짓말이 넘쳐흐르는 것도 바로 ‘무오류 독재자를 옹호하는 권력구조’ 때문으로 보면 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거짓말이 사실상 범죄다. 하지만 목적 지향적인 사회주의에서는 다르다. 레닌도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 거짓말은 혁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거짓말을 백번하면 참말이 된다. 거짓말을 창조하지 못한 자는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 공산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민주화란 단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 좌파 운동권 세력들은 ‘큰 정의’를 위해 작은 거짓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인 것과 비슷하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조국 사태’도 운동권들의 이 같은 집단 심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운동권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거짓말이 일상화되어 있는 반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의 거짓말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거짓말은 과거 광우병 파동과 한미FTA 반대 등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현 정부도 국정 잘못을 대부분 ‘남 탓’으로 설명하거나 엉뚱한 통계 등을 들어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제지표 중 어느 하나 좋은 게 없는데도 대통령의 입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삶의 현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로서는 어리둥절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표현이다. 하지만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불합리한 표현과 거짓말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지극히 당당한 자세를 취한다. ‘조국 사태’에서 맹활약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시시비비(是是非非,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라는 상식보다 ‘세상을 바꾸자’는 신념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참으로 역겨운 민낯이자 밉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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