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의 착각에 북유럽 국가들은 발끈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기업활동 보장하는 경제자유도에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모두 한국보다 높은 순위
스웨덴 법인세(22%)는 한국(25%)보다 낮고 상속세 증여세 재산세도 폐지 ‘경제에 도움 안된다’
한국 정치인들, 스웨덴의 진면목은 보지 않고 ‘복지와 사회보장’ 등 복지 혜택만 정치선전에 활용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은 2016년 미국 대선에 나섰다. 그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했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흔히 얘기하는 소련이나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사회복지국가’를 의미했다. 샌더스가 미국 경제를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비판하면서 TV토론회에서 무상 의료, 무상 대학교육, 무상 보육 같은 복지제도를 갖춘 덴마크를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난데없이 한방 맞은 덴마크가 거의 뒤집어졌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는 “덴마크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며 즉각 진화에 나설 정도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10월14일 사퇴)이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했을 때 많은 한국인들은 스웨덴과 덴마크를 떠올리며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 같다. 독일에서 집권한 사회민주당을 떠올리며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이 있는 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많은 한국인들 특히 좌파 진영은 스웨덴을 ‘롤 모델’로 삼는 분위기다. 그들은 스웨덴의 진면목을 보려고 하지고 않고, 설령 진짜 내용을 알더라도 정치적으로 유리한 내용만 적극 선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진실을 알려면 그들의 역사와 문화부터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북유럽의 대표주자인 스웨덴의 역사를 약 150년 전인 1870년대부터 설명하자면 “자유시장경제를 특징으로 했다가 사회주의로 방향이 바뀌면서 경제성장과 신규 고용창출이 중단되었으며, 그 후 잘못을 깨닫고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복귀하면서 경제가 다시 성장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스웨덴도 과거에는 가난했다. 스웨덴의 전체 인구 가운데 5분의 1이 굶주림을 해결하려고 미국으로 떠났다. 작황이 나빠 친척 친구 이웃이 굶어 죽는데 도망이나 이주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날씨가 비슷한 미국 북부지역에 주로 정착했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미식축구팀의 이름이 ‘미네소타 바이킹스(Vikings)’인데 이곳에 약 32%의 주민들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혈통인데서 유래했다.

스웨덴은 1870년대부터 1936년까지 고성장을 기록했으며 성장률이 영국보다 두 배나 높았다. 강력한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세금도 적게 부과하는 ‘친기업 경제’를 추구한 덕분이다. 그 결과 1860년대 기대수명(평균 생존연수)이 46세인 나라에서 1891년 50세, 1921년 60세가 되었고 1948년에는 70세를 넘어섰다. (광복을 맞이한 1945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45세에 불과했다)

스웨덴은 1936년부터 1970년까지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었지만 사회주의적 성향은 강하지 않았다. 대대적인 국영화도 없었고 노조들도 투쟁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스웨덴이 본격적인 ‘사회주의 시기(1970~1991년)’를 겪을 때 발생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1970년 당시 OECD 회원국 가운데 4위였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995년 16위까지 밀려난 것.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공무원의 증가였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 사이에 공무원 숫자가 70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늘었다. (스웨덴 인구가 지금도 1천만 명임을 감안하면 신규 공무원 50만 명 증가는 대한민국에 비유하면 250만 명에 해당한다.) 공무원이 많아지니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강도는 세졌고 규제 관청도 많아졌다. 1960년 민간 경제영역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100명이었다면 국가에서 받은 돈으로 사는 사람은 38명이었는데, 1990년에는 민간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100명이면 국가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무려 151명이었다. 같은 기간에 민간 부문의 종사자가 300만 명에서 260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국가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110만 명에서 390만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복지국가 노선을 유지하면서 연금 개시연령을 67세에서 65세로 낮추고, 실업수당 지급기간도 30일에서 60일로 늘렸다. 노조는 강력한 투쟁으로 3년 만에 35%의 임금인상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법제화하면서 노조는 직원 고용 및 해고, 회사의 기본 전략, 세부 사안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확대와 노조의 권리 강화가 미칠 악영향을 생각해보시길)

스웨덴의 사회주의 노선은 경제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 이케아의 설립자인 잉바르 캄프라드는 고소득층에 대한 최고세율 85%를 적용받고, 추가로 재산세까지 납부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지면서 세금 납부를 위해 본인의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야할 상황까지 몰렸다. 캄프라드는 1974년 덴마크로 이민을 갔다가 스위스로 이주했다.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고액 과세대상자로서 무려 102%의 세금을 납부해야했다. 소득보다 세금이 더 많아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 그런데도 전 세계의 좌파들은 ‘높은 과세, 부의 재분배, 국가의 대대적 개입, 규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스웨덴 모델에 열광했다.

스웨덴은 이렇게 걷은 세금을 복지와 민간 보조금으로 지출했다. 경쟁력을 잃은 조선업에 쏟아 부은 세금만 무려 100억 유로(13조원)에 이르렀는데도 결국 ‘말뫼의 눈물’로 대표되는 조선업 몰락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공적자금 약 12조원을 연상시킨다)

스웨덴 국민들은 사회주의 노선에 점차 등을 돌렸다. ‘고액 과세와 복지국가 원칙’은 유지하되 경제를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개혁이 1990년과 1991년 단행된 세제개혁. 법인세율은 57%에서 30%로 낮아졌다가 2019년 현재 22%까지 내려왔다. (한국의 법인세율 25%보다 낮다) 주식 소득에는 세금이 면제되었고, 배당소득세는 12.5%로 인하됐다. 소득세 최고 세율도 50%로 제한되고 재산세도 2%에서 1.5%로 낮췄다. 2004년부터는 최대 30%에 달했던 상속세와 증여세가 완전히 폐지되고(한국은 상속세 최고세율 65%), 2007년에는 재산세도 없앴다. 조세 체계도 단순해졌다.

사회보장비 지출은 1993년 GDP의 22.2%에서 2000년에는 16.9%로 낮췄고, 공공부문 인건비도 같은 기간에 18.2%에서 15.6%로 줄였다. 1990년 GDP 대비 국가 총지출비중은 61.3%였는데 2012년에는 52%로 하락했다.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얼마나 충실한 체제인지 보여주는 지표가 경제자유도인데, 2018년 기준으로 스웨덴의 순위는 15위이다. 샌더스가 사회주의 국가로 지목한 덴마크는 12위, 노르웨이는 23위다. 한국은 27위로 북유럽 국가들보다 경제자유도가 떨어진다. 스웨덴은 ‘더 많은 평등을 위해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고, 국가 주도 대신 시장 주도가 더 중요하다’는 원칙으로 탄탄한 경제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도 5만4천 달러로 세계 10위를 자랑한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스웨덴이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한 사회복지국가라고 착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부분은 교육인데, 한국은 지금도 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고교 평준화와 영리학교 금지’를 수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롤 모델로 삼는 스웨덴에서는 공립학교에 대한 탈규제가 이뤄졌고, 영리 목적의 학교까지 허가해서 경쟁과 이윤추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스웨덴 린네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최연혁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야한다. 성장하지 않으면 복지를 책임질 재원(세금)이 마련되지 않는다. 스웨덴의 경우 노령수당은 과거 보편적 복지였으나 지금은 기여한 만큼 가져가는 선택적 복지로 바뀌었다. 출산보너스 같은 현금성복지는 장기적 효과가 없어서 2004년 도입했다가 2007년 없앴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웨덴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스웨덴의 사례를 들 때 한 가지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북유럽 문화권은 ‘직업윤리 의식, 성실성, 정직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미국인들과 북유럽출신 미국인(약 1,100만명)을 비교한 사례가 있는데, 2013년 기준으로 미국인의 1인당 평균 GDP는 5만 2,592달러인 반면 스웨덴 계 미국인은 6만 8,897달러로 무려 31%나 높았다. (한국에는 사기와 공갈, 위증, 무고라는 3대 거짓말 범죄가 유난히 많은데 2018년 경찰청에 접수된 사기사건만 24만 건에 달한다. 인구가 1억2천만 명인 일본의 4만 여건에 비해 6배나 많다. 스웨덴과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창피하다) 스웨덴이 사회주의 시스템 속에서도 그나마 쫄딱 망하지 않은 것은 ‘품격 있는 문화와 민족성’ 덕분이 아닐까 여겨진다.

한국인들 가운데는 우리의 ‘롤 모델’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독일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은 동독과 서독의 역사에서 나타나듯이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운명’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라다. 마치 대한민국과 북한처럼.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쓰게 된 데는 수많은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만 꼽으라면 서독의 경제관리청 장관으로 재직했던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를 들 수 있다. 그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동독과 서독으로 갈리고, 서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때 ‘국가에서 주도하는 계획경제 체제를 반대하며, 자유 경쟁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경제에 찬성한다’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경제에서 가격과 임금에 관한 규정을 촘촘히 네트워크로 엮는 ‘통제경제’를 추구했다. 에르하르크는 이를 깨부수는 데 앞장섰다. 독일의 경제를 말할 때 흔히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에르하르트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그는 ‘사회적 시장경제란, 경쟁원리를 바탕으로 한 정책과 사회정책을 황금비율로 분할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번영을 창출하는 ’시장경제질서‘로 기존의 사회정책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선성장-후분배 즉 케이크를 키우면 키울수록 나눠줄 수 있는 조각은 더욱 커진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에르하르트는 1948년 6월, 통제경제와 일상 필수품에 대한 재판매가격 유지가 철폐되었다고 선포했다. 모든 거래의 자유화를 단행하고 시장의 자율기능에 경제를 맡긴 것이다. 그러자 물가가 급등하면서 시민들의 시위는 거세졌고, 노조는 ‘에르하르트를 교수형에 처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실업률도 급등했다.

에르하르트는 물러서지 않고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지켰다. 시장의 혼란은 얼마 안가 잠잠해졌고,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경제가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서독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연평균 9.3%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61년부터 73년까지 연평균 3.5% 성장률을 경험했다. 결과적으로 에르하르트의 결단이 동독과 서독의 체제경쟁에서 서독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겼고, 결국 통일을 이루는 역사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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