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를 뒤흔든 '분식회계 괴담' 그 내막은

태풍급 루머가 금융가와 증권가를 강타했다. 그 내용은 '모 그룹 9조원대 분식회계 적발설'. 관계 당국이 나서서 부랴부랴 소문을 잠재웠지만, 그 여진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6월 24일, 금융가와 증권가는 한바탕 때아닌 난리가 났다. 이유는 홀연히 등장한 '루머' 하나 때문. 같은 날 '세계일보'가 "최근 시중에 국내 기업 두 곳의 분식회계설이 나돌아 금융계가 긴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이 '화근'이었다. 분식회계 적발에 이어 '7월 대란'설까지 이 기사의 내용은 사실 엄청났다. 이 루머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 서울 명동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한 재벌그룹의 지주회사격인 A사가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는데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는 것. 관련 감독기관이 이를 곧 발표할 예정이며, '7월 금융대란설'로 연결된다는 내용이다. 충격적인 것은 분식회계의 규모, 루머에 의하면 무려 9조원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분식회계 파동으로 엄청난 곤욕을 치른 SK그룹의 경우, 분식회계 규모가 고작(?) 2조원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로 놀라운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 소문은 제법 '구체성'을 띄고 있다. 즉 '7월 대란'의 기운을 이미 일찌감치 감지한 사채시장의 큰손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5월 증시에서 자금을 긴급 회수 조치를 취했고, 그 바람에 증시 폭락사태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는 것. 루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금융기관인 B사의 분식회계설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분식회계의 목적도 희한하기 짝이 없다. "주가를 조작하여 끌어올려, 스톡옵션을 행사할 의도로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풍문부터, "머지않아 '날벼락'을 맞게될 것"이라는 '고급' 소문까지 횡횡했다. 워낙 별의별 소문이 '정보'라는 이름으로 떠도는 증권가이지만, '분식회계 괴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한 당위성과 근거를 갖추고 점차 '기정사실'화 되어갔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7월 대란'이라는 핵폭탄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잡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파다하기도 했다. '누가 퍼뜨렸냐' 발칵 뒤집힌 재계 루머에 대해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금융감독원은 사태가 심상치 않자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섰다. 6월 24일 오후 금감원이 배포한 해명자료에 의하면, "일상 업무로 감리를 하고 있을 뿐이며 감리대상에는 회계분식 규모가 9조원이나 되는 대규모 기업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분식회계 괴담'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은 셈. 또한 금감원은 "감리결과에 나타난 위반사항을 제재하려면 감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가 의결하게 된다"며 "최근에는 지난 6월 14일 감리위원회가 열렸고, 다음 번 위원회는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란 주범'으로 설왕설래의 대상에 오른 관련 기업도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루머에 가장 시달린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한화그룹은 6월 24일 "우리는 A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즉 9조원대 분식회계설은 전혀 터무니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한 것. 한화그룹 구조본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한화를 포함한 여러 기업들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같다"며 "하지만 한화는 분식회계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같은 루머로 선의의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밝혔다. 다른 기업들은 '적극적인 해명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라는 인식 하에 상당히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증권가에 장본인으로 소문이 나돈 '10대그룹'들의 홍보팀 라인에서는 정보력을 총 동원하여 소문의 실체를 추적하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루었다고 한다. 걸려든 기업이 워낙 '대어'급이라 쉬쉬? 그렇다면 이런 '악성루머'가 왜 퍼지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6월 23일 씨큐리콥, 제이엠아이, 정호코리아, 삼호 등 13개 법인이 분식회계 등 회계처리 기준 위반으로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제제조치를 받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정설. 증선위는 분식회계가 적발되거나 감사인을 정하지 못한 기업 등에 대해 회계법인을 지정해 주고 있다. 여기서 "과연 어느 곳을 '분식회계'해 주었길래 적발된 것이냐"는 의문이 흘러나오게 된 것. 일단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증권가에서는 "부풀려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반응이다. 즉 관련 당국에서 이미 실사 작업을 마쳤으며, 정확한 규모와 시기를 확정짓지 못한 채 '조율' 중이라는 또 하나의 '루머'가 나돌기 시작하고 있는 것. 명백히 분식회계 단서가 잡힌 몇몇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감독원은 회계기준 위반여부에 대한 최종 점검을 거쳐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9조원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국의 '레이다'에 걸려든 기업들이 워낙 '대어'급이어서, 사실이 알려졌을 경우 미칠 엄청난 파장을 두려워 '쉬쉬'하고 있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작년에 SK 분식회계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악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냐? 어떻게 보면 그 후유증이 현재 한국경제의 장기 침체의 모습으로 지속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서, 또 크게 터진다면 그 여파는 얼마나 대단할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견해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오른 모 그룹과 모 은행의 향방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루머'란 그 자체로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로 드러난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국가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경제분야는 더더욱 그러하다. IMF·대우사태, SK사태 등 대한민국을 크게 휘청거리게 한 대형사건들도, 처음엔 '카더라'라는 작은 입방아로부터 비롯됐다. 요즘 나도는 '분식회계 괴담'도 과연 어떻게 될지. 반은 흥미진진, 반은 노심초사하며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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