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관계자 “역사 고증 미비해 안내문 설치 등 신중했다...국민 의견도 반영 필요”
문화재청, 지난 9월 서울시 친일 잔재 문화재 8곳 고증 및 관리 등 권고

옛 한국은행인 화폐박물관에 남아있는 머릿돌 사진 / 김은지 기자
옛 한국은행인 화폐박물관에 남아있는 머릿돌 사진 / 김은지 기자
현재 화폐박물관인 전 한국은행 본점 건물에 새겨진 머릿돌이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가 쓴 걸로 추정되고 있으나 관련 설명 등이 일체 없어 문제로 지적됐다. 사진 / 김은지 기자
현재 화폐박물관인 전 한국은행 본점 건물에 새겨진 머릿돌이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가 쓴 걸로 추정되고 있으나 관련 설명 등이 일체 없어 문제로 지적됐다. 사진 / 김은지 기자

[시사포커스 / 김은지 기자] 현재 화폐박물관인 전 한국은행 본점 건물에 새겨진 머릿돌이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가 쓴 걸로 추정되고 있으나 관련 설명 등이 일체 없어 문제로 지적됐다.

1일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안내판 설치 같은 경우 국민적 합의나 의견 등이 반영돼야할 걸로 보여 신중한 입장”이라면서도 “머릿돌을 방치하지 않고 잘 보존하고 있으며 전문가는 아니지만 더 확실히 고증하기 위해 관련 옛날 문헌 등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87년까지 한국은행 본점으로 사용된 건물의 머릿돌을 이토 히로부미가 썼다는 주장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전신인 조선은행 머릿돌 원본 글씨가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시립 중앙도서관에 전시돼있는 걸로 보도됐다. 남아있는 머릿돌엔 이토 히로부미 이름은 사라졌고 날짜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연호인 ‘융희 3년’으로 바뀌어 있어 원본에 써있는 ‘명치 42년 이등박문’과는 차이가 있는 걸로 전해진다. 하지만 머릿돌에 쓰인 한자문 ‘정초’는 거의 일치하는 모습인 걸로 알려졌다.

보도에 대해 시민들은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일제시대 때 침략당하면서 누가 이렇게 했다라는 역사적 인식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군들이 써놓은 글씨여서 마음이 안 좋지만 박물관에 보관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앞서 지난달 1일 MBC 프로그램인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 가수 김종민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지나는 장면에서 “이 한국은행 건물에 이토 히로부미 글씨가 있는데 아직도 남아있어서 논란이 좀 있는 거 같다”며 “박물관 같은 곳에 두면 어떨까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기 1년 전인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저격한 인물이다. 이토를 사살하고 순순히 체포돼 생을 마감한 안중근 의사는 법원 심문 과정에서 이토의 죄목 15가지 중 경제침략과 관련해 ‘제일 은행권을 강제하고 한국 내 땅들을 억지로 팔게 만든 죄’를 언급한 걸로도 전해진다.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같은 해 옛 한국은행을 세우는 데 주도한 걸로도 알려져 있다. 대장성 허가로 설립된 이 은행은 주식 공모와 창립 총회도 모두 일본에서 이뤄지고 1만 명이 넘는 주주의 98%가 일본인이었던 걸로 전해진다. 1911년 8월 1일엔 조선은행법 시행으로 한국은행에서 조선은행으로 전환돼 공식적으로 일본 소속 은행이 되어 일제 침략 도구로 쓰인 전례가 있다.

이러한 배경이 있어 이토 히로부미가 머릿돌을 썼다는 추측·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 보이지만 아직 역사적 고증이 더 필요한 부분인만큼 한국은행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보존하는 게 일차적으로 제일 중요하다”며 “지금 보면 70% 이상 글자가 훼손된 상황이라 이게 정말 이토가 쓴 게 맞는지 혼란이 오기도 하는 상황이라 고증이 더 필요하고 방치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 9월 서울시에 있는 친일 잔재 문화재 8곳을 대상으로 역사적 고증이 이루어지도록 각 지자체들을 통해 권고한 걸로 전해진다. 문화재청이 해당 내용에 대해 잘 조사하고 권고사항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는 추가적으로 파악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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