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조국’을 계기로 사회주의를 생각한다(2) - 계급사회와 권력세습의 일상화
‘사회주의자 조국’을 계기로 사회주의를 생각한다(2) - 계급사회와 권력세습의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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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일체화’로 국부(國富)를 사유화하고 권력세습
소련 중국 북한의 위선 ‘겉으로 혁명 외치고, 속으로 자본주의 사치 누려’
문재인의 조국 임명, 불의와 불공정보다 ‘우리 편이 우선’이라는 권력의 속성 보여줘
조국의 사회주의 옹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대한민국’에 커다란 위험 요소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자본주의 즉 자유시장경제가 경제적 풍요를 안겨줬지만, 동시에 불평등과 격차라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서 모두가 행복해지기는 불가능한 만큼 사회주의와 복지국가를 만들어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권력의 평등화’를 도모했다. ‘돈이 곧 권력’이므로 ‘부의 거대한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부의 창출보다는 부의 분배에 집중했다. 그들은 토지와 공장 등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협동으로 생산하는 체제 건설을 시도했다. 경쟁사회가 아니라 협동사회를 통해서 불평등과 격차를 바로잡자는 의도였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사회주의는 자유를 억압하고 경제를 망가뜨렸다. 윈스턴 처칠은 이를 두고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폐해는 풍요의 불평등한 분배이지만, 사회주의의 태생적 미덕은 가난의 평등한 분배다.’라고 꼬집었다.

사회주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해졌을까 불행해졌을까? 사회주의 체제를 택한 나라들을 보면 극히 일부 지배층만 대대로 특권을 누렸고, 나머지 사람들 대부분은 불행한 삶을 보내야했다. 자본주의가 소득을 기준으로 한 계층사회라면, 사회주의는 권력을 기준으로 한 계급사회가 되었다. 정치와 경제에서 평등을 추구했는데, 역설적으로 더욱 불평등한 사회가 되는 모순이 발생했다.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정치권력은 역사에서 오랫동안 경제권력을 지배했다. 동양권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원리 속에서 황제와 선비계급이 모든 권력을 향유했다. 서양에서도 왕과 교회가 지배층이 되어 농민과 상인을 다스렸다. 정치권력은 자유민주주의 도입과 함께 점차 약해졌다.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을 기점으로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이 크게 줄었다.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창의력이 보호를 받았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발전한 데는 이처럼 ‘약해진 정치권력’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균형을 잡아갔다. 그 결과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꾼 사회주의자들은 경제권력에 대한 통제를 꿈꿨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경제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 프랑스 심리학자인 귀스타브 르봉은 1896년 출간한 <사회주의 심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사회주의가 핍박 없는 모두가 잘사는 평등사회를 주창하지만, 사회 발전 원동력인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억압하기 때문에 결국 핍박과 빈곤을 낳게 된다.” 르봉의 진단 이후 21년만인 1917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이 탄생했고, 소련을 포함해 사회주의 국가들은 르봉의 예언을 현실화시켰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예외 없이 빈곤한 계급사회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속성을 신랄하게 지적한 선구자로 밀로빌 질라스가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그는 1956년 <신계급(The New Class)>에서 공산당 지배계급을 자본가나 지주들과 똑같은 기생충처럼 착취하고 특권을 누리는 신계급으로 묘사했다. 공산당 지배계급은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국가의 부를 공산당 지배계급의 개인 소유물로 여기고 행동한다’고 강조한 것. 다른 책에서는 이렇게 썼다. “공산혁명 이전에 귀족이 갖고 있던 별장에서 만찬을 하는데, 귀족의 시종이었던 노인이 여전히 시종 노릇을 하고 있었다. 변한 것은 별장 주인의 얼굴뿐이었다.”

러시아 혁명과 그에 따른 내전으로 소련에서는 수백만 명이 전쟁이나 기근으로 죽었다. 귀족과 중산층,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공산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라를 떠나면서 인적자본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다. 점차 국가가 안정되자 소련은 유토피아 건설에 착수했다. 레닌과 스탈린의 주도하에 소련은 ‘문맹 농민들의 사회’에서 ‘엔지니어의 사회’로 변모했다. 그 시절 공산당에 새로 유입된 출세제일주의자들과 공장 밑바닥에서부터 승진해 올라온 '비드비젠치(발탁자들)'가 소비에트 관료자리를 꿰차며 스탈린 체제의 강력한 지지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소련 체제의 건설기와 국가 위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활약하여 조국 근대화와 전쟁 승리에 이바지했다. 당시에는 대체로 20대, 30대의 젊은 나이였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발생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권력이 고위직들의 자녀로 세습된 것이다. 공산당 간부와 농민, 광부들은 전혀 다른 사회적 자본과 교육 기회, 생활 조건하에 놓인 것이다. 당간부의 아들은 당간부가 되고 광부의 아들은 광부가 된 것. 소련 사회는 ‘노멘클라투라의 세상’이 되었다. 노멘클라투라는 원래 간부 명단이었으나 나중에 공산당 간부 전체를 의미하게 되었고, 이들은 1970년대 이후 복지부동의 부채집단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활용했다. 그들은 공식석상에서는 자본주의 세력에 맞서 노동자 농민의 혁명을 수호해야한다고 말했지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의 사치품을 수입하고 즐겼다. 취미부터가 외국산 수입차와 고급 사치품 쇼핑이었다. 한 감찰관이 공산당 간부를 모아놓고 왼손을 들라고 하니 모두 금빛 번쩍이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을 정도였다. 소련 인민들이 국내나 동유럽 단체 관광을 갈 때, 노멘클라투라의 자녀들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윤택한 삶을 즐겼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젊은 노멘클라투라들은 뛰어난 인적네트워크와 국가 재산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과 정보가 있었다. 그들은 국가 재산을 외국에 팔거나 헐값에 인수하여 엄청난 재산을 쌓았고 ‘올리가르히라는 새로운 특권층이 되었다. 약 150여 명에 이르는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전체 부(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다. 그들은 잘난 부모 덕택에 누릴 수 있었던 ‘고등교육과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부의 세습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권력 유지’를 국민 복지보다 우선순위에 뒀다. 정치권력을 거머쥠으로써 부를 쌓고 권력도 세습할 수 있었다. 현재 중국 최고권력자인 시진핑은 권력자들의 자녀를 뜻하는 태자당의 대표주자로서 현 위치까지 올라왔다. 태자당 젊은이들은 권력층에 진입하거나 수십억 달러의 갑부로서 흥청대는 삶을 즐긴다.

2013년 당시 중국 상무위원 9명 중 5명의 자녀가 미국 사립대에 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수십만 달러의 학비를 거리낌 없이 써댄 것이다. 소련에서 나타난 것처럼 서구체제를 비판하면서 자녀를 해외로 보내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다. 이들은 미국 내 인맥이 ‘권력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보장하는 증표’로 인식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딸인 시밍쩌도 하버드대를 다녔다.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인 위선 정치인으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꼽히기도 했다. 그는 팔소매가 해진 낡은 잠바를 입고 바닥에 구멍이 난 구두를 신고 다니는 ‘대표적인 청빈 정치인’으로 많은 중국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다가 2012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원자바오 일가의 재산이 무려 27억 달러(약 3조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중국의 권력자들이 권력뿐만 아니라 돈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이 곧 돈’이라는 공산당 특유의 독재 권력구조 덕분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간 경쟁과 협력이 교차하는데 비해,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일체화’가 이뤄졌던 것이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보다 더한 계급사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15만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연설을 하면서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대통령이 본 사람들은 북한의 대표적인 특권계층이었다. 북한에서 선택된 사람들이 아니면 평양에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북한이야말로 ‘정치권력이 경제를 포함한 모든 권력 그 자체’를 의미하므로 최고권력자인 중앙당 간부들이 당연히 최대 부자가 되는 사회가 되었다. 권력서열이 높아야 평양의 고급아파트촌에 들어갈 수 있고, 사치품을 구매하거나 집에 비치할 수 있는 게 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의 빈부격차는 대한민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것도 현실이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흔히 자본주의 원리가 지배하는 영역에서 ‘흙수저들’은 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사람보다 돈 먼저인 세상’을 만들기 때문에 제한을 가해야한다는 것. 조국 법무장관이 청문회에서 ‘경제민주화나 토지공개념’을 얘기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고 번영하려면 ‘국가의 지배, 즉 공권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공권력이 비대해지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를 받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력 집중 혹은 경제권력의 비대화’를 걱정하지만, 더 우려하고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부분은 사회주의가 시도했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일체화’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사악한 본질을 소련 중국 북한 등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역사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사람들은 권력의 속성이란 이념이나 성향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우리 편’만 챙긴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장관을 임명하면서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의 시각에서 볼 때, 아빠가 서울대 교수를 하니 그곳에서 장학금을 받고, 엄마가 동양대에 있으니 그 곳에서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해 급여를 받은 것은 대표적인 ‘불의와 불공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모든 것도 ‘조국은 우리 편’이라는 사실 앞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했을 것이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조국 법무장관을 이렇게 평가했다. "아내가 구속돼도 장관 하겠다고 하니 권력을 위한 냉혈한이다. 보통 자신이 다치면 몰라도 가족이 다치면 포기한다."

이처럼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사회주의자 조국’의 권력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과 사회주의 옹호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하에서 번영해온 대한민국에 ‘커다란 위험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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