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물가상승률 0%대...농산물 및 유가 하락 등 공급측 일시적 요인 영향 커
윤 부총재 “최근 저물가 국내 상황, 경기순환 요인 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 지켜봐야”
[시사포커스 / 김은지 기자]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우리나라의 저물가 상황은 수요측 보다는 공급측 요인에 상당부분 기인해 물가수준이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인 아닌 걸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3일 오전 한국은행 윤면식 부총재와 함께 거시정책협의회를 연 기획재정부 김용범 제1차관은 “물가상승률이 급격히 낮아진 것은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은 상황에서 농산물 및 석유류가격 하락 등 공급 측 요인의 일시적 변동성 확대에 주로 기인했다”며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거시정책협의회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국내외 거시경제 현안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설치한 부기관장급 협의체다.
김 차관은 “세계 실물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선호와 축적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경제를 포함한 세계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금리의 전환기적 흐름을 맞이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세계경제의 연계성과 구조적 변화, 경제정책의 파급효과 등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해를 요구받는 상황에서 정책 당국 간 긴밀한 소통은 필수 불가결한 만큼 한국은행과 함께 우리 거시경제의 여건 변화를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자 금일 회의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차관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금년 초 0%대 중반에서 움직이다가 8월엔 0%로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변동성 확대에 주로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공급측 요인인 농산물과 국제유가가 매년 특정연도에 크게 오르거나 크게 내리면서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 현상은 올해에도 크게 나타났다고 김 차관은 지적했다.
김 차관은 “작년 8월엔 기록적인 폭염 등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4.6% 상승했으나 금년엔 봄부터 이어온 온화한 날씨 등으로 같은 달 7.3% 하락해 기여도를 보면 금년 8월 물가상승률을 0.59%p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국제유가도 작년 8월엔 배럴당 73달러였으나 금년엔 59달러까지 하락해 물가상승률을 0.15%p 하락시키는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 요인으로는 유류세 인하와 건강보험 적용 확대, 무상급식 등 복지정책 확대로 가계 부담이 감소돼 지난달 물가상승률을 전년대비 약 0.20%p 하락시키는 요인이 됐다”면서도 “개인서비스 등 기타 품목은 가격 상승세가 지속돼 물가상승률을 약 0.92%p 상승시켰다”고 덧붙였다. 즉 기타 품목에서 나타난 가격상승세는 공급측과 정책적 하락 요인을 상쇄시켜 8월 물가상승률이 0% 수준으로 나타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김 차관은 2006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저성장·저물가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닌 걸로 봤다.
김 차관은 “변동성이 큰 공급측 요인과 서민 부담 완화를 위해 추진되는 정책요인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1% 초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추정되며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농산물·석유류 등을 제외하고 별도로 편제하는 근원물가는 1% 내외에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장기간 하락세가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아님을 강조했다.
한국은행 윤 부총재도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김 차관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윤 부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공급 및 정부정책 측면의 하락요인과 전년동월의 기저효과 등으로 크게 낮아졌지만 연말 경에는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내년 이후에는 1%대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저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상황과 주요국의 경우 유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을 오랜 기간 하회하는 점은 윤 부총재도 인정하며 언급했다.
윤 부총재는 글로벌 차원에서 장기간 저물가가 이어지면서 물가 움직임에 있어 경기순환적 요인뿐만 아니라 글로벌화, 기술진보 등 구조적 요인의 영향이 확대돼 대외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IT기술 보급과 온라인거래 확산 정도가 빠르고 인구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며 “최근 저인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도 이러한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김 차관은 “세계적인 저성장·저물가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우리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재정지출 확대 등 확장적 거시정책을 지속하고 수출 및 내수 활성화 등 기존에 마련한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면서 하반기 경기보강을 위한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 시행하도록 하겠다”면서도 “앞으로는 물가 상·하방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점검하고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