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文 대통령 ‘중재자’ 역할 나서라는 신호?
北, 평화경제보다 북미협상 ‘우선?’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정작 북한은 16일 도발을 멈추지 않고 또다시 동해상으로 미상의 발사체를 2발을 발사했다.

올 한해에만 벌써 8번째 미사일 시험이다. 북한이 한미 연합 연습에 대한 반발 차원 때문인지 대화 신호와 상관없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겠다는 의도인지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남북 대화재개 구상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북한, 잇따른 도발 ‘왜’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강원도 통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의 발사체를 2회 발사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해당 발사체의 고도와 비행거리, 최대 비행 속도 등을 면밀히 분석 중이다. 비행거리 등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강원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점으로 미뤄 단거리로 추정하고 있다.

합참은 “우리 군은 추가발사에 대비해 관련 동향을 추적 감시하면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5월 4일과 9일 잇달아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을 시험 발사했다. 이스칸데르는 복잡한 궤적을 통해 요격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러시아의 개량형 단거리 미사일이다.

북한이 한미 미사일방어체계(MD)를 사실상 무력화 시키는 이스칸데르급 미사일 시험 발사로 기술력을 과시하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올해 총 8차례 미사일 발사를 5월 이후에 몰려 있는 것에는 또 다른 노림수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간 협상 국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산된 도발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부각시켜 연합연습을 진행하는 한미의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엔 친서, 우리에겐 미사일?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하여 경축사를 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하여 경축사를 하고 있다./청와대

문제는 북한 측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다. 빈번해지는 북한의 도발기조 속에서 진행된 한미 연합훈련 첫날인 지난 11일 북한은 우리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끊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은 이날 외무성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적절히 해명하기 전에는 남북 사이 접촉 자체가 어렵다”고 밝혔다.

권 국장은 “앞으로 대화에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런 대화는 조미(북미)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 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에게는 대화채널을 끊겠다고 하면서도 미국에게는 친서를 보내 대화 의지를 전달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각)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서 친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미사일 시험 이유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 이후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함께 북미 실무협상을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이 나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자마자 만나서 협상을 시작하고 싶다고 매우 친절하게 말했다”며 “단거리 미사일들을 시험 발사한 데 대한 작은 사과였고, 이런 시험은 훈련이 종료될 때 중단될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경제’ 구상과 ‘통일’을 언급한지 하루 만에 북한측은 ‘도발’로 응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성과”라며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그 이전의 상황과 분명하게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며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에 대해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비난하는 대변인 담화를 냈다.

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전했다.

북측은 “남조선 당국이 이번 합동군사연습이 끝난 다음 아무런 계산도 없이 계절이 바뀌듯 저절로 대화국면이 찾아오리라고 망상하면서 앞으로의 조미(북미)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 보려고 목을 빼 들고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런 부실한 미련은 미리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한 당국자의 말대로라면 저들이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고 북남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건설하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지금 이 시각에도 남한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합동군사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때에 대화분위기니, 평화경제니, 평화체제니 하는 말을 과연 무슨 체면에 내뱉는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문 대통령을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이라면서 “말끝마다 평화를 부르짖는데 미국으로부터 사들이는 무인기와 전투기들은 농약이나 뿌리고 교예비행이나 하는데 쓰자고 사들였다고 변명할 셈인가”이라고 맹비난 했다.

북측은 “판문점 선언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북남대화의 동력이 상실된 것은 전적으로 남한 당국자의 자행의 산물이며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 드라이브를 걸려던 정부는 북한이 도발로 답하면서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다.

◆선미후남?…고개드는 ‘중재자’ 등판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새 무기 시험사격을 지도했다"고 11일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뉴시스.

그러나 북한의 우리 정부에 대한 무시와 비난, 도발이 미국과의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을 이끌기 위한 전략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으로 임명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2일 “통미봉남이 아니라 선미후남”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미국과의 관계를 먼저 개선하지 않으면 또는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서 비핵화 과정이 시작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이든지 금강산 관광이든지 또는 우리 기업들의 대북 투자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금은 남북 대화할 가능성도 없지만 순서로 봐서 할 필요도 없다. 그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롱하고 막말하고 굳이 그렇게까지 자극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는 진행자 물음에 대해 “북한이 가끔 정말 절실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애들 문자로 약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뷰티풀 레터'(아름다운 서신)이라고 얘기했지만 실무 협상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중간에서 누군가가 조정해 줘야 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란 걸 그들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돌려차기의 선수”라고 했다. 즉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로 적극 나서달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사실 평화경제 등 남북 관계에서 이뤄지는 현안들은 미국과의 첫 단추 이후 진행이 가능하다. 북미 협상에 결과에 따라 남북 경협 등 평화 경제 구상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도발이 계속될수록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중재자이자 촉진자 역할의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이 한미 연합연습 종료 이후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다고 밝힌 만큼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것이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요구하는 신호라면 북미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북미 협상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험악한 남북관계를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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