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일본을 겨냥해 내놓은 강경 발언은 일순 듣기에 통쾌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현실성이 결여되고, 사실을 왜곡한 선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해왔으나 일본이 일방적으로 거부해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처럼 주장했지만 정작 이번 갈등의 실질적 원인인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징용 배상 판결을 대법원에서 지난해 10월 내렸던 이후 8개월 넘게 1965년 한일협정상 절차에 따른 일본의 외교적 요청을 거부해왔다.

한일협정에는 양국 간 분쟁이 일어나면 외교적 협의를 하게 되어있고, 이마저 안 되면 양국이 지명하는 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며 이 역시 어려울 경우 제3국이 지명하는 중재위원회로 풀어나가게끔 명시되어 있는데, 이에 따른 일본 측 요청에 불응한 건 문 정권이며 일본이 본격적으로 보복 조치에 돌입하니 그제야 외교적 협의를 하자고 태도를 바꾼 것을 마치 처음부터 문 정권에서 적극 해결 의지를 보였었던 것처럼 강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벌어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 또한 1965년 한일협정이란 국제법을 먼저 스스로 무시한 단계에서 이미 성립될 수 없는 발언인 것이고,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단행 이후에도 좀처럼 한일관계 관련 반응을 내놓지 않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런 상황에 답답했는지 6일 “한국이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 한국정부는 청구권 협정을 먼저 제대로 지키면 좋겠다”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거론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수출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특성상 국제법의 의미와 무게가 어떤 건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지난해에 나왔던 대법원 판결의 여파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텐데도 3권 분립을 내세우며 그간 여태 방조해놓고 이제는 책임이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나라와 국제법상 협정을 맺은 어느 나라인들 납득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정부가 대법원 판결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3권분립을 내세운 것 역시 별 이유로 삼기 어려운데, 타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제법상 약속에 대해선 양측 중 어느 일방 국가의 사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는 사법자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며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판국에 정부의 이런 대응은 외국에서 보기엔 그저 사법부로 책임을 돌리는 모습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특히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대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히려 1965년 한일협정 협상 과정을 보면 개인에 대한 피해보상은 일본 정부가 먼저 제안했었고, 당시 박정희 정권에선 한국정부가 개인청구권에 대해서도 대행할 테니 모두 정부에 달라고 해 이대로 협정이 맺어졌으며 이에 따라 개인청구권도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정부에 청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인데 갑자기 일본 기업에 제기하고 국내 재산을 압류한다고 하니 일본 정부까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한일협정의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이번처럼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제기해 국제 문제로 일파만파 비화되게끔 두지 않고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우리 정부에서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선에서 매듭지은 것인데 그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정부 위원으로까지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왜 지금 와선 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밖에 할 수 없다.

또 문 대통령은 힘으로 제압하던 질서가 과거의 유물이라고 역설했으나 이 또한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도외시한 ‘우물 안 개구리’식 발언이라고밖에 평할 수 없는데, 트럼프의 미중무역전쟁이나 중국의 사드 보복,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 등 힘으로 제압하려는 국제질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가고 있다.

그런 외교의 기본도 모르면서 일본에게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말로만 외치는 것은 가히 여론 선동 아니겠는가. 당장 일본의 경제력만 봐도 GDP가 한국의 약 3배고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일본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규모의 3배에 이른다.

이 뿐인가. 우리나라 주요 산업에 꼭 필요한 핵심 기술도 일본이 상당한 비중을 점하고 있어 결코 하루아침에 자존심 하나만 갖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현재 일본과 동등한 수준으로 국산화 추진하는 것도 그 많은 품목을 단순히 자금만 투입해 이뤄낼 수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문제다.

국제법과 관계된 민감한 사안을 제대로 된 대책 없이 건드려놓고 경제에까지 여파가 미치자 그 책임을 은근슬쩍 다른 나라와 우리 기업, 국민에 전가한 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는 현 정권과 여당은 더 감당하기 어려운 추가 보복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이라도 정부의 실기와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고 일본과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