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형과 무지형 낙관주의자는 대책 없이 허장성세와 희망고문으로 일관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미래 실현가능성과 냉철한 현실대응책의 조화를 도모
주가 급락과 환율 폭등 속에 청와대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경제론’에 여론은 댓글로, 북한은 미사일로 강력하게 반응

친구로는 낙관주의자가 좋다. 긍정적인 신념과 태도, 사고방식으로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와 함께 있으면 즐거움과 만족감이 높아진다. 행복전도사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낙관주의로 사는 게 비관주의자보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매일 잔소리하고 투덜대는 친구보다 ‘하쿠나 마타타(문제 없어, 다 잘 될거야)’를 외치는 친구를 가까이해야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세상을 장밋빛으로 보는 사람은 어딘지 바보 같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미래를 개척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낙관주의자로 사는 게 마냥 좋고 미래가 나아질까.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천하태평이라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장밋빛 환상’만 얘기한다면 그 결과가 좋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라면 어떨까?

낙관주의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옌스 바이드너는 낙관주의자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저돌적인 목적추구형, 세상에 무지한 유형, 조용한 은자형, 이타적 성향, 지적이면서 뛰어난 현실 대응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뒤 가리지 않는 목적형 낙관주의자들은 성공확률이 지극히 낮을 때도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들의 열정은 대부분 과녁을 빗나가고 그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의도가 좋다면서 현실마저 왜곡하고, 자신이 ‘바보 멍청이’인데도 자신의 판단오류를 알아채지 못한다. 능력도 없는데 고집은 엄청 세다. 정치인이나 사업가 가운데 ‘희망고문’을 하며 주변 사람 대부분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유형이 여기에 해당한다.

순진한 그리고 무지한 낙관주의자들은 감동을 잘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자기 자신에게 취해서 장애물이나 실패 가능성을 모두 무시해버린다. 실행계획도 없는 아이디어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다. 고려해야 할 문제점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가족이나 동료, 투자자나 임직원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일은 잘 되도록 되어 있다’며 ‘허장성세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 미래에 대한 경고는 전혀 듣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북벌론을 외치던 송시열은 “백성이 올바른 도덕을 가지면 100만 오랑캐가 쳐들어와도 몽둥이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대책 없이 말만 앞세운 인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이나 나라에서 이런 인물이 주도권을 쥐면 패망으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조용한 낙관주의자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즉 ‘소확행’을 추구한다. 마음속으로 일 욕심도 많지만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 이러한 낙관주의자들은 타인의 삶에 크게 간섭하지 않으므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이 없다.

세상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 낙관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열정에 사로잡히지만 일관되게 일을 끌어가지는 못한다. 장애를 뚫고 꿈을 실현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족과 공동체를 중시하고 가치 지향적으로 살지만 큰 욕심은 없다. 타인을 배려하므로 크게 화를 낼 일도 없고, 당연히 남과 다툴 일도 적다.

지적으로 뛰어난 낙관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출세 지향적이어서 성공을 추구하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다만 감성에 치우치지 않으며, 상황을 잘 파악해가면서 성공의 길로 나아간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책임을 질 줄 아고, 원활하게 소통을 하는 유형이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지적으로 뛰어난 낙관주의자들이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최고 분야에서 결정권을 행사하고 우리의 삶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들은 미래의 실현가능성을 믿으면서 동시에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최상의 방어책도 만들어놓는다. 특별한 프로젝트에 현혹되지도 않고 사리분별에 매우 신중하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을 기만하려는 사람을 강하게 응징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중시한다. ‘모든 게 잘 될거야’라고 무작정 기대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국가와 국민을 이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5일 한일 경제분쟁과 관련해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평화경제의 대략적인 방안이거나 짐작할 수 있는 효과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일 경제분쟁은) 오히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 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가 리더로서 ‘낙관주의자’가 되어 미래와 희망을 얘기하고 국민들에게 힘을 불어주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반면에 SNS 댓글 등을 보면 ‘한 달 넘도록 모든 조치 검토, 예의 주시, 강력한 대응 등의 얘기만 나온다. 해결책은 어디에 있나’라는 식의 글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옌스 바이드너가 언급한 다섯 가지 유형의 낙관주의자중 어디에 해당할까.

문 대통령이 ‘미래의 실현가능성과 냉철한 현실대응책’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지적이면서 최고의 낙관주의자라면 대한민국에게는 행운이다. 반면에 자신의 판단오류를 알아채지 못하는 목적형 낙관주의자이거나 대책 없이 말만 앞세운 세상에 무지한 유형의 낙관주의자라면 대한민국에 큰 불행이다.

일본의 ‘백색리스트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크게 올랐다. 공포감이 금융시장을 뒤덮고 있는데, 그 쓰나미는 실물시장에도 바로 닥칠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금융시장에 대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상황을 살피고 있다”며 낙관적인 판단을 내렸다. ‘경제위기설은 일본의 의도’라고까지 규정했다. 그러한 와중에 북한은 미사일 2발을 또 쏴서 ‘대통령의 평화경제론’에 무안을 줬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제발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라는 색안경을 벗고 냉철한 시각으로, 특히 가족과 내가 속한 조직(기업)의 삶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판단해 보셨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어떤 성향의 낙관주의자이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이 천당행 기차를 올라탈지 아니면 지옥행 기차에 내던져질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지적인 낙관주의자로 말할 수 있는 국정최고책임자’를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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