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되는 국제정세 속 여야, 저마다 강경한 주장 쏟아내…내년 총선 의식?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 여부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 여부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한일 갈등과 러시아의 영공 침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주변국 관련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정치권 쟁점도 안보 이슈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대한 일부 반도체 주요 부품·소재 수출을 규제한 데 그치지 않고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까지 단행하자 이에 대한 맞불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파기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데, 북한이 갑자기 지난 25일에 이어 31일에도 단거리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에 따라 일본과 지소미아를 연장해 안보 공조를 이어가야 되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처럼 안보 문제가 집중 조명 받으면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북한에 맞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핵무장론까지 다시금 거론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된 지소미아 연장 문제와 핵무장론이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일본 갈등에 사활 건 與? 당 대표 진화에도 ‘지소미아 파기’ 거론

먼저 한일 갈등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일본에 대한 우리 측 카드로 꼽은 지소미아는 박근혜 정부 말기인 지난 2016년 11월 23일 체결된 군사정보 공유 협정으로 양국 간 1급 비밀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으며 유효기간은 1년이나 기한 만료 90일 전인 8월 24일까지 일방에서 협정 종료 의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장된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나날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이 열렸던 지난 18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지소미아 파기’ 주문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파기 가능성을 열어놓자 미 국무부는 “미국은 한일 지소미아를 전폭 지지한다”며 파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고, 미 국방부 역시 지난 24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정경두 국방장관의 회동 이후 “한일 안보협력과 한미일 안보협력 발전을 긴밀히 하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지소미아 연장 쪽에 힘을 싣겠다는 반응을 내놨다.

여기에 일본도 29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안보 분야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력해야 할 과제는 확실히 협력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일단 연장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현재 우리 정치권에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연장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반해 민주평화당, 정의당에선 파기를 주장하면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정작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선 아직 지소미아에 대한 입장 정리가 안 된 듯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지난 30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재권 의원은 “전략물자를 수출입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정도의 상대와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정부 협정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지소미아를 파기해야 한다”고 역설한 반면 같은 당 이석현 의원은 “한미일 공동안보에 연결고리가 되는 부분을 외교부가 거론하는 것은 한일관계 해결 가능성과 미국과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어 그건 덮어놓고 노력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이 같은 여당 내 엇박자는 앞서 같은 날 오전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소미아와 관련해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발언했음에도 불거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데,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지소미아 파기를 지지하고 있는 여론이 더 많다는 점을 우선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30일 전국 성인 501명에게 조사해 31일 발표한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 여부’ 조사 결과(95%신뢰수준±4.4%P, 응답률 4.6%)에 따르면 연장하자는 답변은 41.6%였으나 파기하자는 비율은 이보다 소폭 높은 47%였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무엇보다 ‘연장’ 의견은 한국당 지지층 등 보수층이 다수를 차지한 반면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중도층에선 ‘파기’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현 상황에 대한 여당의 인식은 이미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전날 민주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데다 31일 청와대까지 NSC 직후에도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래선지 당장 민주당의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인 최재성 의원부터 지난 30일 지소미아 파기를 주장한 데 이어 31일에도 본인의 이 같은 의견을 이 대표에게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기존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는 태도를 보였고,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예고한 일본을 겨냥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 北 미사일에 반등 노린 한국당…핵무장론도 꺼내며 ‘여론전’

자유한국당 정진석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위원장이 3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정진석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위원장이 31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렇듯 여당 일각에선 한일 갈등을 계기로 지소미아 파기 등 자당 지지층에 부응하는 행보를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면 보수야당에선 지난 25일과 31일에 감행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사태를 내세워 오히려 지소미아 연장 필요성을 역설한 데 이어 급기야 핵무장론까지 꺼내들고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소미아 체결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해 한국이 일본에게 24건, 일본이 한국에 24건씩, 총 48건의 정보를 공유했고 지난 25일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정보도 주고받았다. 북한 미사일 발사의 경우 한국은 미사일의 상승 정점까지는 탐지가 가능하나 하강 정보는 알지 못해 하강 정보를 알아야 한국을 타겟으로 쏘았을 때 어디 떨어질지 예측 가능한데 일본 정보를 받아야만 이를 알 수 있다”며 한일관계 측면보단 대북 안보 차원에서 지소미아 연장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뿐 아니라 한국당에서도 같은 날 나경원 원내대표가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국방·외통·정보위-원내부대표단 연석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도발을) 단거리 미사일이라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말하고 여권 내에선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심각한 안보위기”라고 지적한 데 이어 박맹우 사무총장은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강력한 대책으로 세우고, 한미일 공조를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정진석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서 한미일 삼국이 공동 관리하는 핵잠수함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핵잠수함’ 발언까지 내놨는데, 한 발 더 나아가 홍준표 전 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대선 때부터 일관되게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해왔고 당 대표 시절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일각의 조롱 속에서도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로 핵 균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핵 균형만이 살 길”이라고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펼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경태 최고위원은 아예 3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외교 역량을 투입해서라도 전술핵 재배치를 이뤄내야 하며 만약 전술핵 공유가 되지 않는다면 자체 핵개발이라도 추진해야 한다”고 핵개발 주장까지 했는데, 핵개발을 위해선 NPT를 탈퇴해야 한다는 지적엔 “NPT 10조 1항에는 ‘본 조약으로 국가의 이익을 위태롭게 할 경우 탈퇴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남북 비대칭 전력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위험은 명백한 현실이므로 조약 10조 1항의 적용은 충분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다만 핵 개발은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현실적 측면에선 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그나마 가능성 있는 핵무장론으로 꼽히고 있는데, 지난 25일 미국의 국방대학에서 발간한 ‘21세기 핵 억지력, 2018 핵 태세 검토 보고서의 작전 운용화’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도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일본과 전술핵무기(비전략핵무기)를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던 바 있다.

◆ 공수전환 나선 한국당, ‘주도권 잡기’ 성공할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에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운영위 연기를 제안한 뒤 국방, 외통, 정보위-원내부대표단 연석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에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운영위 연기를 제안한 뒤 국방, 외통, 정보위-원내부대표단 연석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렇게 여야 모두 실제 강행 시 후폭풍 여부를 떠나 우선 여론의 이목을 끌기엔 좋은 ‘지소미아 파기’, ‘핵개발’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는 가운데 일단 얼마 전까지 수세로 몰렸던 한국당으로선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공수전환에 나설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시각은 YTN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26일 전국 성인 2512명에게 조사해 29일 발표한 7월 4주차 정당 지지율 집계 결과(95%신뢰수준±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나오듯 한국당이 비록 전체 지지율에선 한 주 전보다 하락했지만 일간 지지율의 경우 지난 25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바로 다음날 2.3%P 반등한 바 있기에 아주 근거가 없진 않은데, 이를 의식했는지 31일 북한이 추가로 미사일을 발사하자 정부에선 정경두 국방장관이 북한을 적으로 표현하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청와대마저 이례적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로 NSC를 개최하며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입장을 내놨는데, 한일갈등으로 지지율 상승 가도를 달리던 당청이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한일갈등이 총선에 유리하다’는 보고서 파문으로 도리어 한일 이슈가 악재로 전환될 수 있는데다 정부가 가급적 로우키로 대했던 북한조차 추가 도발을 강행하자 사실상 궁지에 몰려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국당은 전방위 공세에 돌입한 모양새인데, 한일 갈등 이슈와 관련해선 장제원 의원이 31일 문제의 민주연구원 보고서를 꼬집어 “국익을 저해하면서까지 정파의 이익만 추구하는 전략과 전술을 ‘권모술수’라고 한다”며 “나라가 어떻게 되던, 차기 총선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면 된다는 집권 세력의 졸렬한 전략과 천박한 인식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제 국민이 심판해주실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고, 당 지도부는 이날 예정된 운영위 회의 연기까지 단행하면서 북한 미사일 사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당에선 김종민 의원이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의 시초가 된 것이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판결”이라며 “판결에 따라 일처리하면 되는데, ‘사법부는 사법부고, 국가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워딩에 의해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이 상의해 대화를 전개했다”고 다시금 이전 정권 탓이란 논리로 역공에 나섰는데, 하루하루 급변하는 정세 속에 과연 어느 쪽이 정국 주도권을 쥐는 최후 승자가 될 것인지 그 결과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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