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일전에도 마음은 총선에?…정쟁 촉발시킨 ‘보고서’ 무슨 내용인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5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최근 한일 갈등에 관한 대응은 총선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 배포하면서 ‘한일 갈등’을 총선 카드로 활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 대응에 앞장서던 민주당이 ‘한일 갈등’을 카드로 정쟁에 열을 올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여야 정쟁의 불씨가 됐다.

◆靑·與, ‘친일 프레임’ 공방 벌일수록 ‘유리’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사진 / 시사포커스 DB]

실제로 민주당은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는 것과 관련 한국당이 ‘신친일’ 세력이라고 몰아붙였고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총선용 반일·친일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친일 공방이 거세질수록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고 반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던 한국당의 지지율은 10%대까지로 떨어지게 됐다. 여권에 불리한 상황이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국면이 전환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한국당이 일본 수출 규제 대응을 하는 정부를 비판하자 “다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에 정부 비판에만 몰두하고 백태클만 반복하면 그건 X(엑스)맨이 되는 길”이라며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하에 한마음과 한뜻으로 결속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정권은 연일 일본과 싸우자고 선동하면서도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청와대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태도인가. 친일·반일 편 가르기를 하는 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나”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이 정부는 무능과 무책임을 일본 팔이로 덮으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도 시원치 않을 판에 갈등과 대립을 부르는 강경 발언으로 야당을 자극하는 중”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친일 공방은 여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리얼미터.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지난 22~2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12명을 대상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전주 대비 0.3%포인트 상승한 52.1%를 기록했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 역시 0.6%포인트 오른 43.7%를 기록했다. 긍·부정 평가의 격차는 오차범위 밖인 8.4%포인트로 집계됐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반일 감정 확산과 일본에 대한 정부의 강경 메시지 효과로 2주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당도 전주 대비 1.0%포인트 오른 43.2%로 2주 연속 상승하면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당 지지율은 2주 연속 하락해 26.7%를 기록했다. 2주 연속 20%대를 유지한 것은 황교안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와 관련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7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이숙이입니다'에 출연해 “정부 여당이 저렇게 반일 감정에 자꾸 의지하느냐라는 것에 저희들이 생각하는 것은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해법을 제대로 못 내니까 반일 감정 문제로 (해결)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우리 한국 국민들은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이라 합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쪽보다는 친일이냐, 반일이냐 이런 프레임을 워낙 잘 가져가지 않나”라며 “친일, 반일로 (문제가 흘러)가면 당장 여당한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외교 문제나 통상 문제로 가져가지 않고, 친일 대 반일 문제로 자꾸 가져가면 여당한테 유리한 고지가 될 것”이라면서 반일문제가 여당 선거 국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與, 입으로만 ‘민생’…마음은 총선에?

[사진 /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지난 30일 작성·배포한 ‘한일갈등에 관한 여론동향 보고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담겨있다.

보고서에는 “일본의 무리한 수출규제로 야기된 한일 갈등에 대한 각 당의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많고, 원칙적인 대응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이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대응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에 관해서도 찬성(59.4%)이 많았다”며 “우리 지지층(2040·진보) 뿐 아니라 50대·중도·무당층에서도 원칙적인 대응을 선호했고 이들 집단에서 한일 문제에 대한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나 “자유한국당에 대한 ‘친일 비판’은 지지층 결집효과는 있지만 지지층 확대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친일 비판 공감도는 ‘공감’ 49.9%, ‘비공감’ 43.9%로 (민주당이) 상대적 우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친일 비판 공감도는) 상대적 공감이 적은 것은 정책적 문제가 아닌 ‘정쟁’ 프레임에 대한 반감”이라고 보았다.

내부 문건일지라도 국익에 초당적으로 대처해야할 집권여당의 인식인지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문건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되자 민주연구원은 당이나 연구원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연구원은 31일 오전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30일 당내 의원들에게 발송한 한일 갈등 관련 여론조사 보고서는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됐다”며 “충분한 내부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주의와 경고 조치를 취했다”며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을 선거와 연결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당이나 연구원의 공식입장이 아닌 조사 및 분석 보고서가 오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보다 신중을 기하겠다”고 했다.

◆선긋는 與, 충격 받은 野3당

보고서에 대해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에서 작성을 지시한 바 없고, 논의한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런 조사와 보고서 자체가 부적절하다”면서 “이렇게 외교 문제를 당리당략적으로 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총선이 이제 1년도 안남아 잔뜩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보고서가 드러나자 일제히 날선 반응을 보였다. 특히 민주당의 공식사과와 함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해임도 거론하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이번 보고서에 대해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맹비난 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문재인 정권의 실체이자 영혼”이라며 “나라가 기울어도 경제가 파탄 나도 그저 표, 표, 표만 챙기면 그뿐인 저열한 권력지향 몰염치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했다.

전 대변인은 “경제를 살리는 복안, 시급한 외교적 해법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원칙적 대응을 선호하는 여론’을 움켜쥐고 총선에 써먹을 궁리만 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요체”라며 “그래서 대통령, 청와대, 민주당이 합작해 반일 조장하고, 이순신이니 죽창이니 의병이니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어떻게 일본의 경제보복 문제를 바라보고 대처해 왔는지 이 보고서를 통해 명명백백히 드러났다”며 “수습할 생각 대신 국민 정서에 불을 지피고 그 정서를 총선카드로 활용할 생각만하는 청와대와 여당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경욱 대변인도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친일/반일 프레임은 총선 득표를 위한 정치쇼였음이 민주당의 보고서 유출로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반일을 조장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친일 매국세력으로 몰아붙인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이야말로 나라가 망가져도 자기 권력만 취하면 된다는 심보를 가진 매국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살든 죽든,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발상이 놀랍다”라며 “집권욕에 눈 먼 민주당”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총선’이라는 단어조차 꺼낼 여유와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국익보다 ‘표’가 먼저인 민주당, 반일감정을 만들어 총선의 ‘재료’로 활용하는 민주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연구원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했지만 공식 입장이 아닌 보고서가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될 수 있는 것인가”라며 “국민의 삶을 놓고 도박하지 말라. 민주당의 총선 성찬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내보인 것에 실망과 함께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한일경제전쟁의 불똥이 내 먹고 사는 생업에, 삶에 어떻게 불똥이 튈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당에, 집권 여당의 싱크탱크가 한일 갈등이 총선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사태를 내년 4.15 총선까지 끌고 가려는 속셈을 내비친 것인가”라고 안타까워해 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고 양정철 원장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며 “한일 갈등을 국내 선거용으로 검토하고 있는 정부 여당에 실망스럽고 충격적인 행태에 대해 우리는 심각한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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