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뇌피셜과 근자감'은 DJ의 실사구시를 정면으로 무시
집권여당의 '한미FTA반대와 의병 발언'은 구한말 쇄국주의 연상
한미일 자유민주진영 균열에 중국 러시아 북한이 대놓고 협박

‘친일파(親日派) 딱지’는 일단 정치적으로 성공작품이다. 선봉장인 조국 전 민정수석이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이분법 주장에 많은 국민의 이성이 마비됐다. 서울대 교수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준 낮은 감성 팔이 문장에 일반 대중이 열광하면서 생각 있는 사람들은 논쟁을 피하는 모습이다. 전 조국 수석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자.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비난·왜곡·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7월20일)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비방ㆍ매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일지 몰라도, 무도(無道)하다”(7월22일)

“한국 정당과 언론은 일본 주장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한국 정부와 대법원 입장에 동의하는지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야한다.”(7월27일)

조국 전 민정수석을 끔찍이 아끼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의 12척의 배’로 결의를 다지고 “일본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수석을 발언을 들을 때마다 요즘 유행하는 ‘뇌피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뇌(腦)와 오피셜(official, 공식입장)의 합성어인 뇌피셜은 객관적 근거 없이 자신의 생각을 공인된 사실이나 검증된 진실인 것처럼 주장함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다. 팩트(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이견도 듣지 않는다. 여기에 역시 팩트를 잘 모르거나 왜곡된 사실에만 주목하는 지지자들이 열광한다.

여기서 궁금한 대목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민정수석이 친일파를 그렇게 미워하는데, 그렇다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정신세계는 어떻게 구축되었을까.

함재봉 전 아산정책연구원장이 쓴 <한국 사람 만들기>라는 책이 있다.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얘기하면서 다섯 부류로 나눴다. 친중 위정척사파,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 친소 공산주의파, 그리고 인종적 민족주의파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 핵심인사들은 이 가운데 ‘친중 위정척사파와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혼합체라고 보는 게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친중 위정척사파는 중국에서 유래한 주자학(성리학)적 세계관을 신봉한다. 위정(衛正)이란 바름 즉 성리학과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자는 것이고, 척사(斥邪)란 사악함 즉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배척하자는 것이다. 위정척사 세력들은 전통 사회를 고수하는 데 앞장서면서 개화사상에도 반대했으므로 수구당이라고 불렸다. 통상 반대와 개항 반대를 외치며 쇄국주의와 개화망국론을 주장하는데 나중에 의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한미FTA를 격렬히 반대하고, 최재성 의원이 “의병을 일으킬 만한 일”이라고 한 대목에서 위정척사의 정신이 현 집권세력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여기저기에 활용되는 요술방망이 같은 존재다.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존중하고, 환단고기와 산해경 등을 받들고 나서기 때문에 쉽게 환영받는다. ‘우리 민족은 선(善)이고, 다른 민족은 악(惡)이다’는 말로 반대파를 무너뜨린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겪은 아픈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는 맹위를 떨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정확히 ‘위정척사와 민족주의의 결합’에 나섰다. 지금까지 지지율을 끌어 올린걸 보면서 나름 미소를 짓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지금 집권세력들은 그들의 지도자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과연 결별한 것인지 궁금하다. DJ는 늘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며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외쳤다. 한일 협정에 대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며 찬성했다. DJ가 1998년 일본 국회에서 행한 연설의 요지는 간단하다. ‘한일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임진왜란 7년과 일제강점기 35년간이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DJ는 우리 민족이 소중하면 다른 민족도 소중하다고 여겼기에 “그 나라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게 외교”라고 말했다. DJ는 외교가 우리의 명줄이나 다름없고, 그런 상황에서 4대국 정상외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혜안 덕분에 한국은 2004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화이트리스트 대상국가로 지정됐다. 일본 문화의 개방을 두려워하지 않은 열린 생각 덕분에 오늘날 한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DJ의 유지는 ‘위정척사로 무장한 수구주의’ 문재인 정부에 의해서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과거 DJ를 열렬히 지지했던 호남인들과 진보 세력들은 깨닫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이 멀어지면서 한국 미국 일본 3국이 하나가 된 동북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균열이 생겼다. 그러자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산주의(혹은 전체주의) 진영’이 한국을 즉각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한국 영공을 침범했는데,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첨단 공격 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연습을 강행하는 ‘남측을 향한 경고’라고 아예 협박했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대해 제대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일 경제전쟁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나가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해결책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순신 정신을 얘기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거북선 횟집’을 찾았고, 조국은 민정수석을 마치면서 “법과 원칙을 따라 직진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말 폭탄과 보여주기 쇼만 요란하다. 이러한 모습에 많은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 안가기’ 등으로 화답한다. 선진국 사람들이 보면 정말 ‘후진국적 사고와 값싼 민족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이러한 모습에 지각 있는 사람들은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이제 촛불로 밥을 지으려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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