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보복’에 중·러 ‘도발’…文 대통령 ‘위기 관리’ 주목

문재인 대통령./ⓒ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예상보다 냉혹한 시험대 위에 올랐다.

나라 안으로는 야당이 요구하는 북한 목선 국정조사나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의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국회가 파행하면서 91일째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민생법안들이 ‘올스톱’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로 한국 경제에 급소를 찔러 경제·외교적으로 엄중한 상황이고 최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 심지어 러시아는 우리 영공까지 침범하는 일마저도 벌어졌다. 그렇잖아도 미중 무역전쟁의 심화로 불안정하던 동북아 안보 지형이 이번 사건으로 요동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의 균열 위기를 불러온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와 한·일 관계의 갈등과 악화 이를 둘러싼 미·중간 갈등 그리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중국·러시아의 협력, 동북아 패권경쟁 등은 우리의 국익을 크게 위협할 수 있는 안보 변수다.

문 대통령은 임기 3년 동안 내치 보다는 외교·안보 분야 등 외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내세워서 집권 전후에 불거진 북핵 위기를 ‘한반도 평화’ 분위기로 급반전 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사드 배치 문제로 이어진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 등의 과정에 대처하면서 외교·안보에 능동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고 여기에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시에 KADIZ에 무단 진입하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침범한 것에 대해 일본이 오히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한일 갈등이 경제 분야에서 또 안보 문제까지 확장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일 관계와 안보 현안 등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든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 상태다.

그렇기에 미국이 일본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4일 방한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일 간 추가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다는 기본 인식 하에 미국 측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포함, 향후 더욱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본격적으로 한일 갈등 중재에 나설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문제는 한일 갈등으로 등판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번 사태를 해결 없이 봉합 수준에서 마무릴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합참 관계자에 따르면 23일 오전 7시 전후 중국 군용기는 H-6 폭격기 2대, 러시아 군용기는 TU-95 폭격기 2대와 A-50 조기경보통제기로 1대가 KADIZ를 무단 진입했다./ⓒ뉴시스.

이번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인근 영공 침해에 대해서도 미 국방부가 어느 나라 영공인지 적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얼버무렸다. 일본의 자위대 군용기 긴급 발진에 대해서도 묵인하는 태도다. 이는 미측이 한미일 공조를 위해 일본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혹은 기업 피해 보상 등 명백한 조치 없이 사태만을 봉합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해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의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미국 측이 중립적 자세를 취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선택지도 많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의 경우에 단 시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고 승소를 장담하지 못한다. 후쿠시마 해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된 소송도 2015년에 일본이 한국을 WTO에 제소한 지 4년 만에 나왔기 때문에 WTO에서 재판 결과가 나오는 사이 동안 우리 경제와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는 24일 특위 차원에서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전면 개정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 제재에 ‘소재 국산화’로 맞서는 격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부품·소재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는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간담회 이후 이어진 오찬 자리에서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겠지만 이번이 우리에게 소중한 기회”라며 “우리 역량을 총동원하면 지금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국산화 추진을 독려했다.

우리 정부가 이처럼 부품·소재에 있어 국산화 추진을 강조하는 것도 미국의 중재나, 외교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하기 힘들다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날 “새로 부활하는 지정학은 우리에게 자강의 길을 촉구하는 준엄한 메시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우리가 자강의 길을, 당당한 외교를 못하면 이번에는 슬쩍 들어왔지만 나중에 떼거지로 들어온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김 의원은 다자주의 안보를 강조했다. 김 의원은 “700만밖에 안 되는 인구를 가진 싱가포르가 인근의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그 큰 나라들 다 주변에 있는데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 할 말 다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제대로 극복하면 우리가 주변국의 중견국가로서 제대로 국가의 품격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진단했다.

일본 경제보복 문제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의 도발이 겹친 불안한 동북아시아 정세에서 우리 정부가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