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바지한 이승만 전(前) 대통령

지난 해 53주기 추모식 당시 / ⓒ뉴시스DB
지난 해 53주기 추모식 당시 / ⓒ뉴시스DB

[시사포커스 / 이청원 기자] 이승만 전(前) 대통령 서거 54주기 추모식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다.

18일 국가보훈처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바지한 이승만 전(前) 대통령을 기리는 ‘서거 54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며 추모기도, 추모사, 특별찬송, 추모의노래, 유족 인사 등의 식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우남 이승만 박사는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해 지난 1896년 서울에서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를 조직해 ‘협셩회회보’라는 주간신문을 발간하고, 논설위원으로 러시아의 절영도조차에 대해 국민이 합심해 국권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하여 조차요구를 철회시켰다. ‘

협셩회회보’를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으로 전환시킨 뒤 협성회 회장 겸 매일신문 사장으로 외국의 이권침탈을 저지하는데 앞장섰다. 1898년 ‘뎨국신문’창간에 참여하여 민중계몽에 힘쓰는 한편 독립협회 총대위원으로 선출되어 개혁운동에 가담키도 했다.

또 1899년 1월 만민공동회 활동과 관련된 쿠데타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만 5년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 때 그의 정치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독립정신’을 저술해 자주독립의식 고취, 한국의 정치변혁의 필요성, 개화와 외교의 중요성 등을 한국의 독립보전방책으로 내세웠다. 

이후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 간 박사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10년 귀국해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에 한국 평신도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하며 독립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웠다.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귀국하여 “뭉치고 엉키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 같이 하나로 뭉치자”고 역설했고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정부에서는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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