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한일 대치 장기화에 부담↑…靑, 18일 오후 5당 대표와 회동 갖기로

1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진행된 국무회의 모습. ⓒ청와대
1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진행된 국무회의 모습.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일본의 수출제한조치 이후 그간 표면화되지 않았던 한일 양국 간 갈등이 점점 격화되면서 이제는 어느 쪽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먼저 물러서기 어려운 ‘치킨 게임’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그러자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그간의 청와대 1대1 회동 주장을 접고 지난 15일 어떤 형태의 회담이든 전격 수용하겠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실상 5당 대표 회동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는데,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웠던 청와대가 지난해 3월 이후 1년 4개월 만에 열린 5당 대표 회동을 통해 적절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일본 문제로 데드크로스 위기 처한 文에 마침 손 내민 黃, 이유는?

일본의 수출규제 여파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한 달도 되지 않아 거의 데드크로스 위기를 맞고 있는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8~12일 전국 성인 2503명에게 조사해 15일 발표한 문 대통령 7월 2주차 지지도(95%신뢰수준±2.0%P, 응답률 4.3%)에 따르면 일본의 대한수출규제 이후 9일까지 연일 하락했다가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한다는 일본의 의혹 제기에 적극 대응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대미특사도 파견한 10~11일엔 일부 회복세를 보였지만 긍·부정 격차는 47.8%대 47.3%로 한 주 만에 7.5%P에서 불과 0.5%P로 좁혀졌다.

여기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도 동 조사기관이 동일 기준으로 집계한 7월 2주차 정당 지지도 집계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1.8%P 하락하며 47.8%로 떨어지고 제1야당인 한국당은 오히려 2.4%P 반등해 30.3%로 30%대 지지율을 회복했는데, 이처럼 당청이 대일관계 악화로 어려워진 와중에 도리어 황 대표가 청와대 회동을 제안하는 형태로 손을 내밀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황 대표가 청와대 회담 수용 의사를 밝힌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작 문 대통령을 겨냥해 같은 당 정미경 최고위원이 “문 정권은 임진왜란 때 무능하고 비겁했던 왕, 개인만 생각한 선조와 측근 아닌가”라며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꼬집어 “문 대통령은 세월호 한 척 갖고 이겼다”고 논란의 발언을 내놓고 황 대표도 이를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문 대통령을 압박하는 모양새이기에 청와대 회동 제의 역시 단순 협조 차원이라기보다 정치적 계산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황 대표는 이번 회담 의제를 한일관계로만 한정했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들이 처한 경제 위기 상황이 많다. 만나는 기회에 광범위하게 민생을 보듬기 위한 논의자리가 돼야 한다”며 경제 문제까지 파고들 의사를 내비쳤고, 15일 최고위 회의에서도 “일본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경제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 데 이어 16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제살리기 대토론회에서 역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우리 경제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문 대통령과 만나 서민들의 아픔 등 민심을 잘 전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 당 공식 논평에서도 16일 전희경 대변인이 “일본의 경제보복이 우리에게 미칠 타격은 그 범주를 가늠하기 어렵다. 오직 경제위기 극복을 바라는 국민에게 화답해야 하고, 어렵게 마련된 자리가 결실을 거두려면 이번 회동이 경제 살리는 대화여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있어선 안 된다”고 밝힌 데 이어 이만희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에서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 삼겠단 말이 진심이면, 감정적 발언이 아니라 경제정책 기조 변경이란 결단을 내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여야 대표 청와대 회동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여야 대표 청와대 회동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 박상민 기자

한 발 더 나아가 경제적 측면에서의 정권 압박 뿐 아니라 이번 일본의 무역보복 사태를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 외교라인 전반에 대한 인사교체를 직접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이런 속내를 보여주듯 황 대표는 15일 기자회견 직후 인사교체 요구 범위와 관련해 “장관을 포함 청와대와 정부의 모든 외교라인”이라며 사실상 전면 교체란 입장을 내놨다.

◆ 카드 없어도 물러설 순 없는 文, 5당 회동으로 국내 여론 결집 노리나

하지만 설령 이번 달 말에서 내달 초 사이 개각을 단행하려 한다고 해도 한국당의 이 같은 요구에 따르는 듯한 자세는 취하고 싶지 않은 정부여당으로선 당장 수용키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시각을 보여주듯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6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나와 “최근 한일관계 문제가 정부의 외교 실패에 따른 것이라 보는 야당 시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강제징용 문제가 최근 대법원 판결에 의해 이뤄진 문제고 이걸 일본 정부가 수용하지 않고 보복하면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적극 항변했다.

그러면서도 모처럼 조성된 여야 5당 대표 회동이 한국당의 양보로 이뤄진 만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일본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는 면에서 16일 청와대는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여야가 함께 모여 지혜를 모으는 모습으로도 국민에게는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이렇게 초당적인 협력을 한 데 대해 환영의 말씀을 드린다”며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놨는데, 오는 18일 오후에 열기로 여야 5당 사무총장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일단 회동 의제에 제한을 두진 않은 것으로 전해져 야당과 격론이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회동을 ‘실보다 득’이라 여기기에 민주당에서도 곧바로 이해찬 대표가 15일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을 수락한 것으로 보여 환영한다”고 황 대표에 호평을 보낸 것으로 해석되는데, 일본이 제대로 된 회담을 거부하며 강경한 자세로 나오는 데 맞서 이미 미국에 호소하고 WTO에 주요 의제로 올리는 등 일본에 내놓을 만한 압박수단은 거의 다 써버린 상황이라 더는 여론의 지지를 얻어낼 마땅한 새 카드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앞서 문 대통령이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이 이번에 전례 없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것은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며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고 3번째 경고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선 16일 경제산업상이 “대항조치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설명한 만큼 문 대통령의 지적은 맞지 않다”고 반박한 데 이어 스가 관방장관도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한 수출관리를 위해 운용을 수정한 것”이라고 응수하는 등 여전히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비록 일본기업에 피해가 갈 수 있더라도 장기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그간의 상당수 대일의존 분야를 당장 대체하기 힘든 한국경제 쪽이 더 타격을 입을 것이란 계산도 있는데다 지난 13~14일 아사히신문이 조사해 15일 발표한 일본 아베 내각 지지율은 이전 조사 때보다 3%P 하락했음에도 한국으로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한 아베 내각의 조치에 대해선 56%가 타당하다고 답할 만큼 찬성 의견이 우세하다는 점도 강경 대응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더구나 일본 주요언론들은 오는 21일 실시될 참의원 선거도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압승할 것이라 관측하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속속 내놓고 있다 보니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선거 이후 완화하기는커녕 향후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고 내부 여론을 결집할 수단으로써 한층 강화해나갈 것이란 전망도 높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쪽이 굽히면 정치적 치명상이 불가피한 국면이다 보니 문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고 국내 여론 결집에 집중하려는 모양새인데, 산업통상자원부 실무자가 일본과의 양자 협의에서 홀대 받은 뒤 열린 지난 12일 전남에서 열린 블루이코노미 경제비전 선포식에서 이른바 ‘이순신 발언’을 했던 데 이어 16일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측이 오는 18일을 시한으로 보고 제안했던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 문제에 대해서도 수용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하는 등 ‘강 대 강’ 충돌로 가는 상황이다.

◆ 日 경제보복 후폭풍, 반일감정과 총리 분담으로 靑 충격 분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일본 경제보복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일본 경제보복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급기야 미쓰비시중공업이 지난 15일까지 화해 요구에 불응한 이후 일제에 강제 동원됐던 피해자들까지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압류 재산 매각 절차에 돌입하려 하면서 일본 역시 16일 고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열고 “만에 하나 일본 기업에 피해가 미치는 일이 있으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뜻을 분명히 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 우선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돼 당정청은 16일 일본 경제보복대책 당청연석회의까지 열고 논의에 들어갔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의 분위기는 “외교적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면서도 일본의 경제보복을 “어차피 건너야 할 강”이라고 평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줄곧 강경한 논조였는데, 여당 뿐 아니라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도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철회할 때까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김상조 정책실장마저 “정부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고하며 우리 경제는 튼튼한 능력이 있다”고 낙관하는 등 야당이 주문하는 타협적 자세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일관했다.

아예 이인영 원내대표는 “우리 국민은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아가라, 싸움은 우리가 한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반일감정에 기댄 여론전으로 확대시키려는 의지까지 드러냈는데, 추경과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 소재·부품 국산화를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내놓기는 했으나 장기적 차원의 접근법이고 성공 가능성도 확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저 현 정부 2년 간 누적되어온 경제 부진 문제까지 이번 한일 갈등을 이유로 내세우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정상외교 수요가 폭증하면서 대통령 혼자 다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대부분 나라는 정상 외교를 투톱 체제로 분담한다”며 “우리 총리도 정상급 외교를 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발언 전체를 이례적으로 총리의 정상급 외교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웠는데, 일본의 경제 보복 사태 와중에 총리가 방글라데시 등 순방에 나선 게 부적절하단 지적에 대응한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지만 ‘일본통’으로 꼽히는 이 총리에게 한일 갈등 관련 중책을 맡기려는 의도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 15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모든 것에 우선해 일본 관계를 푸는 게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이낙연 총리는 대표적인 지일파”라며 이 총리 역할론에 힘을 싣기도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경제적 여파 뿐 아니라 결과에 따라 정치적 후폭풍도 큰 이번 사안에 있어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대일특사로 이 총리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결과가 좋다면 범여권 차기 대선구도와 관련해 ‘이낙연 대망론’이 한층 더 힘을 받게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아도 대통령에게 돌아올 책임은 일부나마 분산될 수 있어 5당 대표 회동과 마찬가지로 ‘책임 분산’ 차원에서 이 총리를 대일특사로 보낼 것인지도 하나의 선택지로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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