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타결에 따른 정국움직임

계층별, 이해관계별로 표심 나뉠 전망
노대통령 지지도급등에 각 당 갈팡질팡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한미 FTA가 타결됐지만 각 분야별로 후폭풍이 거세다. 그 중에서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해관계에 따라 분야별, 지역별, 계층별로 한미 FTA를 반기는 쪽과 거부하는 쪽이 극명하게 나뉘면서 각 정당과 후보자가 FTA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표심이 엇갈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더 신명이 날지 빠르게 계산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예상대로 이번 FTA타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만만찮다. 특히 한미 FTA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농민들은 총기난사까지 불사하며 온몸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어 이들의 표심을 인식해야 하는 정치권을 더욱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반면 기존 보수세력이나 도시계층 등 FTA에 비교적 긍정적인 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찬성입장에 무게를 둬야 한다.

따라서 한미 FTA는 ‘개방을 통한 국익 극대화’라는 본래 목적은 뒤로 한 채 각 당의 복잡한 셈법이 어우러지면서 한동안 대선정국을 뒤흔들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한미 FTA 타결이 향후 대선정국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FTA 타결이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클 것이다 13.1%,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50.3%로 집계됐다. 한미 FTA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볼 것으로 생각되는 대선 예비주자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9.7%로 가장 앞섰고 이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10.5),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3.9), 손학규 전 경기지사(2.2) 순이었다.

당장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1월 13.4%에서 FTA 타결 직후인 지난 3일엔 29.8%로 수직상승했다. 레임덕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던 노대통령이 화끈한 막판뒤집기 한판을 선보이고 있는 것.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고 추진한 한미 FTA가 되려 노대통령의 인기를 상승시키는 개인기가 되고 있다.

갑작스런 한나라당의 노 띄우기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하듯 한나라당은 이번 FTA 타결에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연일 유례없이 노무현대통령을 추켜세우며 이번 타결에 찬사를 보냈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 3일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할지 답답하다”면서 “다행인 것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타결됐다는 사실로, 국회에서 통과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하며 국회비준 통과를 촉구했다. 이 전 시장은 또 “한ㆍ미 FTA를 계기로 한나라당의 목표점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며 FTA를 당의 이익과 연관시키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전시장의 대권 라이벌 박근혜 전 대표 역시 “국익차원에서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 꼬집었던 노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또 “진정한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큰 나라와의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국익차원에서 FTA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두 명의 대선주자는 한미 FTA 협상 타결을 환영하면서도 농업 등 피해 분야에 대한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전통적 지지층인 농민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범여권은 한미 FTA에 대한 제 정파의 입장차 때문에 범여권 대통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노대통령의 지지율상승으로 인해 대선구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엇갈린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찬성파와 반대파로 극명히 갈린 양상이다. 타결 전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간 김근태 전 우리당 의장과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타결 후 연일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특히 FTA를 타결하려면 자신을 밟고 가라는 극단적인 언행까지 불사한 김 전의장은 이번 타결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김 전의장은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미국의 요구대로 졸속 타결을 선언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미국의 시한 연장 놀음에 휘둘려 국가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고 미국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로 협상이 끝난 데 대해 분노가 치민다”고 비난했다. 김 전의장은 타결 이후 노대통령과 기존 노대통령의 반대세력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하고 “한미 FTA 타결로 노무현 대통령과 일부 보수 언론, 한나라당의 대연정 삼각동맹이 강력히 이뤄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단식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참여정부가 ‘4·2 조공협상’으로 경제주권을 넘겨주고 민생을 포기했다.”면서 “범국민적 항쟁을 통해 협상을 무효화시킬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반발했다.

김 전의장과 천 의원은 한·미 FTA 타결에 대한 반대의지를 분명히 하며 노대통령과 확실히 차별화의 길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흐트러진 진보·개혁세력의 지지를 다시 모으고 현재의 수세 국면을 반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조건부 찬성입장인 정동영 전 의장도 합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범여권 안에서 다시 한번 진보세력의 결집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들 FTA 반대파 의원들은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를 추진하고 있어 범여권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범여권 속 극명한 찬반
반면 범여권안의 찬성파 의원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박수를 치는 사람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손 전 지사는 “한미 FTA 체결로 맞게 되는 기회와 도전을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며 “국회는 깊이 있는 토론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비준 절차를 마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그는 “한미 FTA는 새로운 성장 동력원이 될 것이며, 제2의 경제 도약을 이루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한미FTA의 최종 협상결과가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균형 외교와 실리 외교의 결실이라고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뚜렷하게 찬반의견이 나뉜 범여권에서 두 갈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한미 FTA를 이용하려는 눈빛이 여기저기서 번득이지만 아직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 FTA가 타결 됐다고 해서 곧 발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협정문 작성(6월 말까지)과 서명식(6월30일 이후), 국회 비준동의안 제출(9∼10월 예상)과 표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반대파 의원을 중심으로 비준 반대 운동이 구체화 되고 있어 FTA 발효까지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표면적으로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원칙적 찬성 입장을 보여 통과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 한나라당에서 농어촌 출신 의원들이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농민층의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따져본다면 한미 FTA와 관련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비준동의안 처리가 진통을 겪을 것이 불 보듯 뻔해 한미 FTA는 연말 대선정국의 최대 정책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판 노리개 된 FTA
이런 가운데 각 정당은 FTA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는 국민들을 진정시킬 후속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일 김형오 원내대표 주재로 ‘한미 FTA 피해조사 및 대책특위’를 열고 FTA 협상타결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적 파장을 점검하고 피해부문 등에 대한 지원대책을 논의했다. 열린우리당 역시 이날 한ㆍ미 FTA 평가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위원회의 구성 방식과 향후 일정, 주요 의제 등을 논의했다.

온갖 장애물을 넘으며 결국 타결까지 온 한미 FTA가 본질은 퇴색된 채 정치게임에 놀아나고 있다. 이 FTA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눈앞엔 낭떠러지가, 누군가의 눈앞엔 꽃길이 펼쳐지게 됐으니 지켜볼 만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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