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모독죄 사라지니 명예훼손 찾는 정부·여당
‘대통령의 5시간 밝히라’ 명예훼손?
박성중, “민주당, 충성경쟁 하고 있어”
한국당, “선거 전략으로 고소·고발”
송기헌, “정치 문화 바꾸는 계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3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서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박성중 의원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구시대의 유물이 된 국가모독죄(國家冒瀆罪)는 유신 시절 당시인 1975년 도입됐다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인 1988년 12월 폐지됐다.

국가모독죄 폐지법률안에 대해 당시 홍세기 의원은 “국가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의 자유를 억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 운영돼 반정부인사를 탄압하는 기능을 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민의 건전한 비판을 통한 민주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형법 제104조의2 국가모독 등 죄 조항을 삭제 개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5년 10월 21일 헌법 재판소에서도 국가모독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국가와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헌법 재판소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가가 국민의 비판을 형사처분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국가 모독죄는 사라졌지만 비판 여론을 압박하고 대통령·정부기관과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수사기관에 넘기는 수단은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명예훼손죄라는 이름으로.

최근에는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게시물을 최초 게시하거나 유포한 총 75명이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고발당한 75명에는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진성호 전 의원 등도 포함돼 있다.

노 비서실장과 이 대표는 지난 4월12일 해당 네티즌들이 ‘강원도 산불 화재가 있었던 4월4일 저녁 문 대통령이 언론사 사장들과 술을 마시느라 화재 대응이 늦었다’라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 허위의 내용으로 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청와대·민주당, 과거 정부 답습했나?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 / 시사포커스 DB]

이러한 행태는 과거 박근혜 정부 때와 비슷하다. 2014년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루머를 유포한 네티즌을 서울중앙지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수사팀이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명예훼손사건에서 이례적인 구속 수사였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사이버상에서도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식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면서 법무부와 검찰의 강경 대응 방침을 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해당 네티즌은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가 사전에 계획한 학살극이고 해경 123정이 세월호를 끌어 승객들을 수장시켰다’, ‘최태민 때문에 박근혜가 박정희를 살해 후 비자금 수첩과 금고 열쇠를 챙겼다’ 등의 글을 게시한 바 있다.

특히 명예훼손죄는 당사자가 가만 있어도 처벌가능한 ‘반의사불벌죄’이다. 때문에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보수단체 등 시민단체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이한 점은 보수단체가 고발을 하면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반 고소고발의 경우 검찰에서 처리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당시에도 검찰의 수사 진행 속도에 대해 ‘빠르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2015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경우가 이러한 대표적 사례다. 2014년 8월3일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시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칼럼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보수단체인 ‘자유청년연합’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가토 전 지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사이버상에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는다’는 지적이 나오자마자 검찰이 서울중앙지검에 명예훼손 전담팀을 만든 후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근절을 위한 전담수사팀까지 신설했다. 그리고 얼마 안되서 자유청년연합이 가토 전 지국장을 고발, 3일만에 당사자를 출국 금지까지 했다. 청와대도 “민형사상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건도 청와대 작품인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8월7일자 메모에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리스트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경찰 국정원을 팀 구성토록’ 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청와대가 고소고발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온라인에 퍼지는 정부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했던 과거 정부의 극단적인 행보들을 문재인 정부와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4월 강원 속초·고성 산불 사고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자를 처벌해 달라고 75명을 고발한 것 외에 2018년 3월5일 기준 민주당이 밝힌 것에 의하면 총449건의 고소 고발을 진행했다.

과도한 명예훼손 고소전이 사회 전반의 표현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강경한 대응을 보면 결국 대통령과 정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함인데 이는 결국 권위주의 정권하에 진행됐던 ‘국가모독죄’, 명예훼손 남발한 박근혜 정부의 구습을 답습하는 꼴이다.

◆여당·청와대, ‘의혹·비판’ 명예훼손으로 왜 맞서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6일 세종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이낙연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뉴시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이는 2011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광우병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실제로 ‘태극기 집회’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정신없는 인간’, ‘미친 XX’, ‘북한에 200조원을 약속했다’라는 등의 막말을 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은 지난 2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려면 ▲해당 사실이 허위라는 인식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고의성이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조 의원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북한에 약속했다는 200조원 발언 역시 의견 진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욕설에 대해서는 모욕죄에 해당하지만 모욕죄는 피해자가 고소 해야 기소할 수 있는 친고죄다. 피해자인 문 대통령이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 의원을 고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당과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에 대한 의혹과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왜 맞서는 것일까?

자유한국당에서는 총선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 강지연 미디어국장은 “총선을 노리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라며 “검경 수사권에 눈이 먼 경찰이 장단을 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국장은 “경찰이 (강원 고성·속초 산불 관련 문 대통령 음주 의혹 제기한 이들에게) 약식기소를 내릴 것”이라며 “정식 재판이 아니기에 당사자가 불복하지 않으면 벌금이 나오게 되는데 ‘대통령 욕하면 벌금 나온다’고 하면 누가 총선에서 대통령 욕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불복하면 재판이 진행되는데 변호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그러니깐 정식재판을 청구하느니 차라리 벌금 내고 말겠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자유한국당 박성중 미디어기획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당이 전면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충성경쟁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비서실장이나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나서야지 민주당이 어째서 나서느냐”며 “민주당은 당이 아니라 청와대 하수인 밖에 안된다는 차원에서 대표를 고발한 것”이라고 했다.

◆입장 나뉘는 민주당…“증폭될 것” VS “권위주의적”

더불어민주당 양정숙(왼쪽부터) 법률부위원장, 송기헌 법률위원장, 권칠승 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강원 산불 재난 관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허위조작정보 고발장 접수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해당 안되지만 기관에 있는 개인에게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대통령은 안 되지만 문재인은 된다”고 밝혔다.

그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그냥 묵과하게 되면 너무 증폭되는 경우가 있다. 정치 문화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특히 네티즌 중에서 정말 악성 네티즌들이 너무 많다”며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혀 없는 사실을 뉴스에 나온 것처럼 만들어 유튜브로 공유하는 등 자체가 조작인 류가 굉장히 많아졌다”며 “이런 명백한 허위의 경우에 대해 고소고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적 표현 정도에 대해서는 (고소·고발을) 안하는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의 경우 도저히 정치적 의사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9년 ‘쥐코’ 동영상(이명박 전 대통령의 토지소유 현황)을 개인 블로그에 올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김종익씨도 결국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공직자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표현도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즉 공직자 사생활에 관한 것이라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직자 사생활에 대한 의혹제기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강원 고성·속초 산불 당일은 대통령의 근무시간 중이었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었기에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로 볼 수 있다.

사실 여부 확인 대신 법리적인 차원의 대응은 국가권력에 대한 정당한 감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고발이 접수, 경찰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는 순간부터 위축될 수밖에 없고 벌금을 받기라도 한다면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심리적 위축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여당 내에서도 입장이 나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 한 의원은 민주당에서 고소·고발한 449건과 관련해서 “고발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해당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고발이 권위주의적 퇴행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영역에서 정치를 해야지 자꾸 고발하려고 하면 안 좋다”며 “외국 같은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없는 곳도 있다. 법리적으로 깊이 고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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