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반일 부추기기’에 편승한 김명수 대법원의 무책임과 단순함이 문제 만들었다
강경화의 무능, 홍남기의 근자감, 청와대와 방조와 침묵이 사태 악화시켜
현실 모른 채 아Q처럼 ‘정신승리법’만 외쳐서는 절대 '극일' 못한다

루쉰의 대표작인 <아Q정전>은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날품팔이 인생의 아Q는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실력이 없다. 글자도 모르는 아Q는 무지와 무능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늘 머릿속으로 ‘정신승리법’을 구사한다. 루쉰은 아Q를 이렇게 묘사했다.

“아큐는 이름과 본적은 물론이고 그가 살아온 내력조차 분명치 않다. 웨이좡 사람들에게 아큐는 그저 일을 시키거나 놀려먹는 대상이었을 뿐이니 무슨 내력 따위에 유념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아큐 역시 다른 말이 없었다. 단지 다른 사람과 말다툼할 때 간혹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왕년에는 너보다 훨씬 잘 나갔어! 네까짓 게 뭐라고?”“

세상을 좁게 보거나 얕게 보는 사람은 생각이 짧기 마련이다. 생각이란 어떤 현상을 세밀하게 인식하고 여기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인식과 대응의 조합’이 가능한 사람, 즉 제대로 인식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 법을 알 때 ‘진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반도체 소재 3종을 상대로 일본이 무역 보복에 나섰다. 대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국산화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한국의 급소’라고 할 만한 품목들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통으로 권위가 높은 후카가와 유키코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 정부의 카드 중 딱 1장을 꺼낸 것이다. 국제법상 문제가 없는 ‘그레이 존, grey zone, 회색지대’을 공략한 건데 이제 시작일 뿐이다”고 분석했다.

한국 산업의 급소가 찔리면서 한일 경제 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데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과 청와대의 대응이 참으로 가관이다. 외교사령탑인 강경화 장관은 2일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3일에는 국회에 출석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 제안을 했는데 일본이 무시한다”며 모든 사태의 책임을 일본 탓으로 돌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일본의 명백한 경제 보복인데 상응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관들의 격앙된 목소리와 달리 ‘대응카드가 거의 없다’는 게 한일 통상 전문가와 피해 당사자인 국내 업계의 분석이다. 장관들의 얘기는 한 마디로 마땅한 대응책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는 ‘뻥카드’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측 조치는 한국에게 주었던 기존 특혜를 거두는 방식이어서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인지 경제를 아는 사람들은 장관들의 목소리에서 아Q가 즐겨 쓴 정신승리법 혹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엿보인다고 말한다.

한일 경제 분쟁이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침묵의 연속이다.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왜 몸만 사리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지 알려면 이번 사태의 단초부터 차근차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아베 일본 총리도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다. 강제징용 문제는 역사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상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해당 판결이 나왔을 때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은 환호했지만, 막상 한일 경제 분쟁으로 비화되니 해당 판결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느낌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청와대의 침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는 사법부의 판결이므로 한국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도 한일기본협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청와대가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은 가운데 청와대의 입장을 통역(?)한다고 할 수 있는 통역사 출신 강경화 외교장관은 “청구권 협정은 재산상 민사상 청구권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법부의 판결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강 장관은 그러면서도 정신적 피해의 적용 범위와 한계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핵심 내용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 일본 정부와 협의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경제 전쟁이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다’고 판단하면 대법원 판결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정치적 이득을 위해 줄곧 밀어붙인 ‘친일 프레임’이 깨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뢰해서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정부에게 ‘진퇴양난의 엄청난 폭탄’을 안겨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프레임을 사용하면서 ‘강제징용 소송 재판거래’를 대표적 사례로 부각시켜왔다. ‘친일이라는 식민지 잔재 청산과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한일 양국간 외교협정을 파기시키는 성격을 지니는 대법원 판결을 오히려 부추긴 측면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과도 연결된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원고 승소 그대로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반발 할 것”이라는 의견을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말했고, 그게 재판에 관여한 죄가 된다고 봤다. 또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함께 김앤장 소속 한상호 변호사를 만나 강제징용 문제를 논의한 게 ‘재판 거래’라고 낙인을 찍었다.

지금 와서 한일 경제 분쟁이 일어나니, 국익 차원에서 한일관계 악화를 사전에 방지하려고 노력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야말로 참 현명했다는 느낌이다. 종합 사고를 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비교할 때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는 얘기다. 강민구 현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양승태 사법부는 강제징용의 외교적 해법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사법부 판단은 어쩔 수 없다는 대응도 국제 외교에서는 통하지 않으며, 감정적 민족주의 선동을 피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다른 국가와의 외교는 대화와 타협을 근간으로 국익이 제일 앞에 놓여야 한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외교의 최고 우선순위는 국익이며, 감성팔이 외교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익이란 우리 국민과 기업에게 손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데, 문재인 정부는 그저 ‘반일 부추기기’를 통한 정치적 이득만 생각하면서 오로지 국내 시각으로 외교 현안을 해결하려는 ‘외교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특히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일수록 본인의 직관을 따른다. 내용은 들여다보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반박에만 주력하며 다른 정보나 성찰은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금 SNS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 하자. 일본과 타협하는 것은 아베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토착왜구나 하는 짓이다”라는 글이 넘쳐난다. 일본 입장을 고려하면 무조건 매국노라고 주장하고, 반일하는 게 애국이라고 여긴다. 아Q처럼 무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것인데, 지금 한국에서 그런 경향을 지닌 생각없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진 느낌이다.

19세기 말 조선은 ‘내부 혼란과 주변 강대국에 시달리는 위기’를 겪었다. 21세기 한국이 지금 19세기 말과 비슷하다는 불안감이 제기되고, 나라가 망할 때 무능했던 고종이 현재 대통령과 닮은 것 아니냐는 글도 나왔다. 청와대는 해당 기사에 ‘토착왜구’ 운운하며 펄펄 뛰었지만.

19세기에 한국은 세계 정세를 너무 몰랐고 일본 실력도 몰랐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표현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이 말은 잘 알아도 현실에서 적용하지 않는다. 19세기말 일본이 근대화의 길을 걸을 때 산증인 같은 인물이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인데 한국인 가운데 그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의 초대 총리로서 네 차례 총리를 지냈고, 일본의 최초 헌법을 만든 사람이며 청일전쟁의 주역이란 걸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국가의 자존심과 국가의 품격은 힘에서 나온다. 21세기를 넘어오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지만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700억 달러이며 대한민국의 1조6550억 달러와 비교해 3배 이상 많다.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에 세계 최고수준의 생산력과 기술력을 지녔다. 일본을 비하하고 ‘왜구’라는 표현을 쓰는 등 아Q의 ‘정신승리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알지 못할 때 혹은 충분히 알지 못할 때 항상 생각을 감정으로 대체한다. 감정이 개입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생각을 대체하고 감정이 생각을 대신한다는 게 진짜 문제다. “화를 내면 판단력이 흐려 진다”는 표현이 있듯이 감정이 먼저 내달리면 모든 게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일 경제분쟁에 접근하는 문재인 정부와 그의 참모들,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의 모습에서 ‘감정 우선과 일본에 대한 맹목적 반감’만 느껴진다. 참 답답하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