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 서훈 문제로까지 비화…여야 간 정쟁으로 격화돼

김원봉에 대한 독립 유공자 서훈 여부를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김원봉에 대한 독립 유공자 서훈 여부를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언급한 이후 좀처럼 정치권 내 논란이 잦아들지 않은 채 세간에선 아예 서훈 논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뒤늦게 청와대에선 지난 10일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장심사 조항상 서훈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번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박주민 최고위원이 1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박근혜 정부 때 국정화를 추진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의열단을 독립운동 중 하나로 소개하며 김원봉 주도의 결성을 강조했다”고 다시 불을 지피고 있어 정쟁이 계속되고 있다.

◆ 독립운동가지만 北 정권 기여한 김원봉, 거론 순간 논란 ‘필연’

정치권 화두로까지 떠오른 ‘김원봉 논란’을 이해하려면 김원봉의 일생을 일단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먼저 이번 논란을 촉발시킨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나온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던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한 역사적 진위 여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선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김원봉을 굳이 사례로 인용한 이유와 관련해 지난 7일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념을 뛰어넘어 노력한 점 등을 강조한 것”이라며 “정파와 이념을 뛰어 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김원봉은 조선의용대 주력에 배신당하고 장개석까지 지원을 끊자 어쩔 수 없이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에 합류한 상황이었으며 임시정부 요인들과도 계속 충돌하며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청와대 측 취지와 달리 실상 ‘통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심지어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합류하는데 반발해 김원봉 휘하의 일부 대원들은 이를 거부하고 아예 연안으로 이탈했으며 김원봉 역시 과거 임시정부 해체를 주장했었을 만큼 진정 임정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진 않았는데, 정작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언급한 광복군의 여러 주요 작전에 대해서도 김원봉은 자신의 병력을 거의 참여시키지 않는 등 오히려 보이콧 행태를 보이면서 지청천 광복군 사령관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물론 그가 20대의 나이에 의열단장으로 일본에 맞서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투탄 사건,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등 1920년대 무장독립투쟁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 대통령이 그를 언급한 장소가 광복절이 아니라 6·25전쟁 등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야권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해방 이후 김원봉의 행적인데, 1946년 2월 14일 남한 내 사회주의 계열 단체들이 연합해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남로당 당수인 박헌영 등과 함께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 추대되기도 했고 1948년 4월엔 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가하고자 평양으로 갔다가 아예 북한에서 활동하며 더 이상 남한으로 내려오지 않았고 같은 해 8월엔 북조선인민위원회 최고인민회의에서 제1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북한 정권 수립에도 핵심 인사로 참여하게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공화국 남반부 해방지역 군면리 인민위원회 선거 중앙선거지도부’를 구성했는데, 김원봉은 이 기구의 지도부로 참여했으며 전쟁 중 남파간첩을 훈련하고 파견하는 것도 직접 지휘했고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로서 평안북도에서 북한군의 군량미 생산을 책임지기도 하는 등 6·25전쟁 과정에 일조해 52년 3월 19일엔 북한이 6·25전쟁 공훈자에게 수여하고자 마든 ‘노력훈장’을 가장 먼저 수상하기도 했다.

◆ ‘득보다 실’에 靑 수습 나섰으나 ‘반격 기회’인 野 비판 거세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백선엽 장군을 예방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쟁기념관 군사 편찬연구 자문위원장실에서 백선엽 장군을 예방했다. ⓒ자유한국당

비록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그조차 6·25 전쟁 휴전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연안파 숙청 여파 속에서 1958년 ‘중국 국민당 장제스의 사주를 받은 국제간첩’이란 죄목으로 숙청당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김일성과의 대립 끝에 나온 결과일 뿐 대한민국에서 재평가할 만한 이유가 되진 않기에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이 급기야 서훈 논란으로 비화됐음에도 지난 10일 청와대마저 “국가유공자 심사 기준상 김원봉은 아예 서훈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같은 발표까지 나오게 된 데에는 김원봉 논란이 문 대통령 지지율을 소폭 하락시켰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보여주듯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3~5일, 7일 전국 성인 2002명에게 조사한 6월 1주차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 집계 결과(95%신뢰수준±2.2%P)에 따르면 지난 5일만 해도 49.7%를 기록하며 50%선에 육박했던 지지율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해 논란이 일어난 이후인 7일엔 48.1%로 다시 떨어지면서 긍·부정율 격차도 1.5%P로 바짝 좁혀졌다.

이 뿐 아니라 동 조사기관이 CBS 의뢰로 지난 7일 전국 성인 501명에게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해 조사한 결과(95%신뢰수준±4.4%P) 역시 지난 4월 12일 조사에선 찬성 49.9%, 반대 32.6%였던 데 비해 찬성 여론은 그때보다 7.3%P 줄어든 42.6%, 반대라 답변한 비율은 7.3%P 늘어난 39.9%로 집계돼 찬반양론이 오차범위 내인 2.7%P로 좁혀지는 등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은 ‘득보다 실’이 된 모양새가 됐다.

그래선지 야권에선 김원봉 논란을 계기로 나날이 공세수위를 높여가고 있는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문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뒤인 지난 7일 나경원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충일에 김원봉을 치켜세우는 발언을 한 건 일부러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우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으로 야당의 비난을 유도해 분열을 만들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꼬집은 데 이어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이대로 가다간 공산주의 정권 수립한 자에게까지 훈장 주는 게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깊은데 한국당이 반드시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나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호국영령 앞에서 북한 정권 요직인사를 추켜세웠다. 국민 분열시키는 잘못된 일로 이 부분에 대해 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며 “김원봉 서훈이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고 슬쩍 물러선다고 상처가 아물지 않고 분열도 봉합되지 않는다”고 청와대를 압박했고, 황교안 대표도 10일 6·25전쟁 영웅으로 꼽히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예방해 “북한군 창설에 기여했고 6·25남침 주범 중 한 사람인 김원봉이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말이 안 되는 얘기가 있어 안타깝다”고 문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했다.

여기에 바른미래당에서도 이혜훈 의원이 국방부가 군 연혁에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결성과 광복군 제1지대장 임명 사실 등을 추가할 수 있다고 시사한 데 대해 11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군을 궤멸시키려 한 전범을 국군 창군의 공적자로 기입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을 능멸하는 행위”라고 비판한 데 이어 같은 당 지상욱 의원은 “피우진 보훈처장은 정무위에서 김원봉 서훈 가능성이 있다고 이실직고했고 ‘대다수 국민이 원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대통령은 당장 피 처장을 해고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궁지 몰리자 靑 대신 나선 민주당, 맞불 놓으며 논란 재점화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원봉 서훈 문제로 비화되는 데 대해 청와대가 분명하게 선을 그었는데도 이처럼 야권의 비판은 잦아들지 않고 도리어 거세지자 결국 여당인 민주당이 대신 역공에 나섰는데, 이미 지난 6일 당 차원에서 이해식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김원봉 언급을 두고 야당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념적 공격을 해대는 것은 진중치 못하다. 월북 이후 행적을 끌어들여 광복군 운동 자체를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왜곡”이라고 반박한 데 이어 12일엔 박주민 최고위원이 “한국당은 대통령 발언에 대한 정치공세를 중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박 최고위원은 “한국당과 박근혜 정부가 강력히 추진했고 황 대표가 총리로서 고시확정 발표한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최종결재본을 보면 의열단을 독립운동 중 하나로 소개하며 김원봉의 주도로 결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은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조차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국당에 맞불을 놨다.

또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황 대표를 겨냥 “황 대표가 찾아간 백선엽 장군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대표적 친일파로, 윤봉길 의사가 목숨 바쳐 폭사시킨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側) 일본군 대장의 이름으로 백천 시라카와라고 창씨개명까지 했다. 황 대표는 일본군 대장을 흠모한 백천 시라카와의 친일행각을 알기나 할까”라고 일침을 가했는데, ‘김원봉’에 대한 대척점 차원에서 백 장군을 만나 문 대통령 발언을 비판한 황 대표에 청와대 대신 응수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렇듯 여당이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선 가운데 이제 김원봉 논란은 정치권 밖으로까지 번져가는 양상인데, 김원웅 광복회장은 12일 CP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보훈처 심사 기준에 따라 김원봉 서훈이 어렵다는 청와대 반응과 관련 “냉전적·민족분열적인 의식을 제도화시킨 것이라 잘못된 법이고 개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독립유공자였으면 독립운동 기간의 활동을 평가하면 되지 그 이후까지 설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해 이번 논란이 자칫 정쟁 수준을 넘어 보훈심사기준 개정 문제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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