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서’ 꽉 막힌 북미협상에 동력 되나
또 톱 다운 방식으로 비핵화 프로세스 '시동'?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북미 간 이른바 ‘친서 외교’가 재개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그동안 북미 협상 교착 국면 때마다 협상을 진전시키는 ‘발판’의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이번 김 위원장의 친서가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멈춰버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이오와주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으로부터 방금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의 구체적 내용과 전달 경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우리) 관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어제(10일) 받은 친서로 인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최근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인해 북미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일축하는 모습이다.

이어 “그리고 나는 매우 긍정적인 무엇인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가능하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좀 더 진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나는 추후 어느 시점에 하길 원한다”고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 비핵화에 대해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입지를 거론하며 북한이 엄청난 경제력을 가질 수 있고 김 위원장이 매우 좋은 지도자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북한이 김정은의 리더십 아래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위치도 훌륭하다. 그는 그걸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취임했을 때와 달리 핵실험도 없었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없었다”며 “그가 유일하게 발사한 것은 매우 단거리, 단거리의 실험이었다”고 북한이 약속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재확인 했다.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때문에 김 위원장의 친서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에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도 친서를 공개하면서 두 정상이 대화 재개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은?

김 위원장이 최근 잇따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 간 신뢰를 재확인하고 협상 국면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친서를 발송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에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12일 친서에 대해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동안 전혀 대화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미 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외교부와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평화를 창출하는 한미동맹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핀란드 순방 중 남북·북미 대화가 곧 열릴 것이라고 낙관한 만큼 금명간 한미와 남북, 북미 사이에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말했다.

◆또 톱다운 방식 진행하나

27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지난해 6월 12일 북미 1차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첫 일정인 단독회담과 만찬에 앞서 악수를 나눈 후 밝게 웃고 있다./ⓒ백악관 트위터.

북미는 하노이 회담 이후 실무협상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4월10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이끄는 미국 협상팀이 북한과 아무런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했다. 북한이 대화를 중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먼저 친서를 전달한 것을 보면 북미 간 톱다운(Top-Down) 방식의 비핵화 협상을 원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상들이 주도하는 톱다운 방식은 교착 상태에 빠져들 때마다 정상 간 신뢰 확인을 통해 대화 재개에 속도를 내거나 협상을 진전시켜 왔다. 실제로 그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끌어온 동력은 ‘톱다운’ 방식이었다. 정상 간의 핵 담판을 통해서 비핵화 협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왔다.

하지만 실무회담에서 의제를 충분히 조율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실무선에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못한 단계에서 톱다운 방식이 진행 되면 정상 간 통 큰 결단을 통해 성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서로 양보를 하지 않게 되면 하노이 회담처럼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로 끝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톱다운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제기 되고 있다. 그렇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추후 어떤 시점에 하길 원한다’고 말한 것도 ‘실무협상 선행’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미국이 여전히 제재 완화 등 북한이 원하는 조치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미국이 북한이 선호하는 톱다운 방식보다 실무협상을 우선시하게 된다면 북미 간 후속 협상도 순탄치 않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미국이 전과 같이 '선(先) 핵포기·후(後) 보상'이라는 일괄타결식 핵폐기 요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서의 갈등 지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NSC)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최고재무책임자(CFO) 네트워크 행사에 참석해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였다.

다만 볼턴 보좌관은 “김정은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본다”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앞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3월15일 오히려 미국의 입장 변화를 주문한 바 있다.

조선신보는 “영변+α','핵과 탄도미사일 포기'의 일방적 요구를 내걸고 '일괄타결', '빅딜'을 제창한다면 생산적인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 측은 최고 영도자의 결심에 따라 평화와 비핵화를 향해 미국이 움직인 것만큼 상응 조치를 취해나갈 각오와 준비가 돼 있다”며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듯이 불공정한 요구를 내려 먹이고 굴종을 강제하는 오만과 독선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단계적·동시적 방식을 고수했다.

문 특보는 이날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 “미국의 '빅 딜'과 북한의 '스몰 딜' 사이의 미스매치”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의 입장은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며 “제재 만능주의가 북한의 핵 문제를 푸는데 유일한 길은 아니다”라고 오히려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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