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왜 민노총의 불법 파업과 폭주에 말이 없는가
19세기형 '러다이트 운동'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말라간다

올해 1분기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4%를 기록했다. 성장률이 0.4%가량 뒷걸음질했다는 것은 국민소득이 약 1.8조원(연간 기준 약 7조원)가량 줄었다는 의미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1분기에 약 11만 원 가량(연간 44만원) 소득이 감소했음을 뜻한다.

경제성장률이 줄어든 최대 요인은 투자 감소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전 분기 대비 9.1%, 0.8% 감소했다. 설비투자의 경우 금융위기 시절이던 2008년 4분기(-12.1%)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두 항목의 GDP 성장기여도는 각각 –0.8%포인트, -0.1%포인트였다

투자는 기업의 몫이다. 기업들은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투자를 한다. 정치적 혼란이나 불안정성, 각종 법과 제도의 경직성, 그리고 각종 이익집단의 발호는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대한민국도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닐까 여겨진다.

많은 정치세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도움을 강조한다. 새로운 혁신은 흔히 사회적 약자를 (단기간 시점으로)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치세력들은 이를 두려워한다. 급격한 경제구조의 변동이 정치세력의 구조 변동으로 이어져 기존 질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배려와 따뜻함을 강조하는 온정주의가 혁신을 가로막은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그 결과는 사회와 국가의 쇠망이다. 온정주의로 점철된 착한 일들을 소선(小善)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소선들이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교세라의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를 두고 “소선(小善)은 대악(大惡)을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을 닮아 있다”고 정리했다.

창조적 파괴 즉 혁신은 고통을 수반하는데 자연에서 그걸 잘 보여주는 게 바닷가재다. 바닷가재는 연하고 흐물흐물한 동물인데 아주 딱딱한 껍질 안에서 산다. 딱딱한 껍질은 절대 늘어나지 않으므로, 바닷가재가 자랄수록 껍데기가 조여 온다. 당연히 압박은 점점 커지고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 바닷가재는 껍질이 자신의 몸을 괴롭히면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바위 밑으로 숨는다. 거기서 자신의 기존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든다. 바닷가재는 껍질을 벗는 불편함과 고통의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하며 성장한다. 껍질 안에서 안주하면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함을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역사에는 바닷가재와 같은 창조적 파괴가 번번이 좌절되는 사례로 점철돼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보면 로마 작가인 플리니우스가 전한 이야기가 나온다.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에서 깨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엄청난 보상을 기대하고 황제를 찾았다. 황제는 발명품을 보더니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하자 황제는 이 사내를 죽이도록 명령했다. ‘황금(유리)이 진흙의 가치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게 사형의 이유였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깨지지 않는 유리’라는 창조적 파괴가 가져올 경제 효과를 두려워한 것이다.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윌리엄 리’라는 사제가 있었다. 당시 여왕은 백성들이 뜨개모자를 늘 착용해야한다고 명령했는데, 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뜨개질 밖에 없었다. 윌리엄 리는 노력 끝에 1589년 ‘양말 짜는 틀’ 즉 편물기계를 만들었다. 그는 갖은 노력 끝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찾아가 특허를 부탁했다. 여왕은 죽이지는 않았지만 다음처럼 대답하면서 리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대의 발명품이 나의 가엾은 백성에게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해보시오. 이런 기계를 만들면 백성이 일거리를 모조리 빼앗기고 거지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소.”

엘리자베스 여왕은 백성이 일자리를 잃어 실업자가 늘고 정치 불안으로 이어지면 왕의 권력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걱정한 것이다. 이처럼 창조적 파괴 즉 혁신을 부르는 새로운 기계는 늘 기존질서를 위협하므로 환영받지 못했다. 여기에는 기존 체제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 강력한 지원군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계 파괴 운동’으로 불린 러다이트 운동(1811~1817년)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으로 인하여 기계 생산이 우위를 점하자 경쟁에서 패배한 수공업자들은 몰락하였다. 이들이 대거 공장시설의 파괴에 나선 것이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이러한 ‘러다이트 운동’식의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게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타다’의 이재웅 대표와의 논쟁이다. 최종구 위원장은 ‘타다’가 기존 택시업계를 위협하자 “(혁신 서비스) 지원은 지원대로 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소외당하고 피해를 보는 계층을 돌보는 일이 정부의 중요한 책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 법과 사회 질서 안에서 자기의 소박한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분들”이란 표현을 썼다. 택시업계 종사자를 지칭하는 말로서 나름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최종구 위원장의 이런 발언이야말로 새롭고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타다’는 혁신이라기보다 신개념 택시에 가깝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인데, 최종구 위원장의 발언은 이러한 개선조차 막기 때문이다.

최종구 위원장의 발언보다 더 공감을 느끼는 게 SNS에 나도는 ‘택시가 타다를 퇴출시키는 법’이다. 여기에는 목적지 묻지 않고 태우기, 승객이 말 걸기 전에 말 걸지 않기, 실시간 내비게이션만 보고 달리기, 트로트 음악 틀지 않기, 택시 내부 깨끗이 하기 등이 포함돼 있다.

‘러다이트 운동’의 본질은 민노총과 한노총이 보여주고 있다. 양대 노총은 전국의 고층건물 공사현장에서 깔린 타워크레인 3천대 가운데 2500대을 멈추게 하는 ‘타워크레인 운전기사의 파업’에 나섰다. 타워크레인이 멈춰서면 건설 공사는 중단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사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양대 노총의 핵심 요구 사항 중 하나가 최근 건설현장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소형 타워크레인(적재 중량 3톤 미만)의 사용금지’다. 소형크레인은 지상에서 원격 조종이 가능해 국가공인 자격증이 없어도 안전교육 20시간 등 기초 교육만 받으면 조종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부분이 노조원인 반면, 소형 크레인 조종사 상당수는 비노조원이라는 점이다. 결국 양대노총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선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 국가’를 외친다. 이건 ‘따뜻한 얼음’이나 ‘뒤로 전진’과 비슷한 표현이다. 혁신과 포용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서로 상반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득권 세력의 편에 서서 새로운 변화와 시도 움직임을 막아서는 곤란하다. 시장경제를 놓고 볼 때 공급 측면에서는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 쪽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폭을 넓혀주는 게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 택시와 타다의 충돌, 민노총과 한노총의 파업에 따른 타워크레인 대란에서 보면 그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경쟁에 꼭 필요한 진입의 자유, 소비에 꼭 필요한 선택의 자유가 없으니 기업인들이 ‘사회주의나라 같다’며 절망하고 투자를 꺼려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택시업계 종사자가 많아서인지 ‘타다’에 대해 적대적이다. 조합원 수 100만 명을 돌파한 민노총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하지 않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과정에서 발생한 노조의 불법시위에 논평 한줄 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에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려는 시장경제 DNA가 없는 것 같다. 지각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대한민국이 길을 잃었다”며 걱정하고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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