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계, ‘정병국 혁신위’ 주장하며 국면 전환 시도했지만 지도부 반응은 ‘냉랭’

27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27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당초 오신환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사실상 퇴진은 시간문제일 듯 보였던 손학규 대표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장기전에 돌입함에 따라 앞서 원내지도부 교체를 계기로 잠시라도 컨벤션 효과를 얻나 싶었던 바른미래당이 다시금 길고 긴 계파 갈등이란 늪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이 같은 국면을 타파하기 위해 바른정당계와 손을 잡았던 안철수계에선 구 바른정당 출신인 정병국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원회 구성을 전격 제안하기도 했지만 손 대표 뿐 아니라 바른정당계인 오 원내대표마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인데, 하태경 최고위원이 28일 TBS라디오에서 “여름 내로, 아무리 늦어도 추석 전까지 끝내야 한다”고 내홍을 매듭지을 시한은 제시한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한 달짜리 ‘전권 혁신위’, 갈등 봉합책 될 수 있나

최고위원회의 공개발언에서조차 내분 노출 부담을 아랑곳 않은 채 지도부끼리 설전을 벌이며 노골적으로 기 싸움을 벌여오던 바른미래당에서 갈등 봉합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정병국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시적 운영되는 전권 혁신위원회 구성 제안이 나왔다.

이 같은 제안은 국민의당 출신 안철수계 의원들인 김삼화·김수민·김중로·이동섭·이태규 등 5명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발표하면서 주목 받았었는데, 당 혁신과 관련된 모든 의제와 사안을 제한 없이 다루고 최고위 역시 혁신위 결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록 활동기간을 6월말까지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현재 꼬이고 꼬인 당내 상황을 단번에 신속히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특히 이번 제안을 내놓은 이들 중엔 바른정당계인 오 원내대표가 원내수석과 원내대변인으로 임명한 국민의당 출신 이동섭·김수민 의원도 포함된 데다 손 대표도 이미 4·3 재보선 참패 직후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을 당시 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를 중재안으로 제시한 적이 있어 평행선을 달리는 손 대표와 바른정당계 양측에서 모두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현 시점에서 나온 혁신위 제안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선이 끝내 ‘불신’의 골을 넘지 못하면서 논란만 한층 가열된 상황이다.

안철수계의 혁신위 제안 회견 직후 열린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손 대표는 작심한 듯 “대표의 퇴진을 전제로 한 혁신위 구성은 애초에 없다”고 배수진을 친 데 이어 혁신위원장 인선에 대해서도 “미래를 열어가고 당 화합을 이끌 중립적 인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손 대표는 이날 회의 직후 전권 혁신위에 대해 “거부한다, 안 한다 말한 적 없고 검토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위원장직에 대해선 “정 의원과는 열흘 전 미국 가기 전 말했는데 부정적 얘기를 했다. 당내 인사로 하기보다 당 내외로 넓게 살펴볼 것”이라고 부연해 바른정당 출신인 정 의원보다는 일단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와 무관한 인사에 힘을 실어주려는 뜻을 내비쳤다.

더구나 혁신위가 출범하면 손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하는 시나리오도 이날 손 대표가 직접 “2선 후퇴는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은 물론 “(혁신위의) 전권이 당 대표 퇴진이나 진퇴 문제 이런 것을 포함하면 안 된다”고 거듭 역설함에 따라 결국 혁신위 입장과는 별개로 최소한 손 대표가 공언했던 임기 시한인 추석까지는 대표-혁신위의 이중 체제로라도 당권을 쥐고 있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 바른정당계, 혁신위 수용 어려워도 실질적 대안 없어 고민

안철수계 의원 6명은 정병국 의원(사진)을 위원장으로 전권이 부여된 혁신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지도부에 제안했다. ⓒ시사포커스DB
안철수계 의원 6명은 정병국 의원(사진)을 위원장으로 전권이 부여된 혁신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지도부에 제안했다. ⓒ시사포커스DB

그래선지 오 원내대표는 자칫 혁신위 출범을 구실로 손 대표 퇴진론이 무마될까 우려한 듯 26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손 대표의 혁신위는) 본인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들러리 혁신위다. 손 대표가 퇴진하지 않는 이상 혁신위는 꼼수에 불과하고 차라리 그럴 바엔 갈라지는 게 낫다”고까지 밝혔는데, 이 ‘갈라지자’는 표현이 분당을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되자 27일 “최고위가 정상 운영이 안 되면 최고위원이 회의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혁신위에 회의적인 시각은 여전히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김수민 의원이 “손 대표는 기성 정당에선 최고의 리더십을 보여줬지만 새로운 것을 고민해 혁신을 쏟아내야 하는 제3당 리더십에 과연 적합한지 청년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혁신위 설치는 손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용단이 있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전권 혁신위를 제안한 안철수계 의원들이 이미 손 대표 퇴진엔 동의하는 기류여서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 사이에서도 혁신위 수용 여부를 놓고 일부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여주듯 바른정당계인 하태경 최고위원은 2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안철수계 쪽에서는 ‘손 대표의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열어 주겠다’ 이런 제안이었던 거고, 저희 쪽에서는 이 안에 대해서 찬반이 있는데 반대 의견은 원래 입장이 선 퇴진 후 혁신위, 이런 입장”이라며 “(혁신위 수용해도) 손 대표 체제가 유지되는 기간, 혁신위와 서로 공존하는 기간이 있는 것이고 그 기간 동안 결과적으로 시간 끌기 그렇게 될 우려도 있지 않느냐는 그런 우려를 표명한 것”고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같은 날 오전 손 대표 퇴진에 찬성하는 선출직 최고위원(하태경·이준석·권은희·김수민)과 오 원내대표는 혁신위 제안과 관련한 회의까지 열고 논의를 이어갔지만 오 원내대표는 “여전히 이견이 있어 결론을 못 내고 헤어졌다. 손 대표의 들러리를 서는 혁신위가 될 가능성이 있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면서도 “우리가 계속 요구하고 싸워왔지만 손 대표가 지금 계속 저렇게 버티는 한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의논을 계속해 보겠다”고 진퇴양난의 복잡한 속내를 은연중 드러냈다.

이처럼 바른정당계에서 혁신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견해가 있는 이유는 안철수계에서 이 같은 제안을 내놓기 전에 오 원내대표 등 바른정당계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보니 불신이 생긴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간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묵묵히 듣기만 할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던 손 대표가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공세 전환할 만큼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버티면 이긴다? 재판 결과 등 속속 孫에 유리한 전개

하태경 최고위원은 자신이 법원에 냈던 손학규 대표의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데 이어 '정신 퇴락' 발언으로 노인 폄하 논란에 휩싸이자 손 대표에 공개 사과하면서 오히려 수세로 몰려버렸다. 사진 / 오훈 기자
하태경 최고위원은 자신이 법원에 냈던 손학규 대표의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데 이어 '정신 퇴락' 발언으로 노인 폄하 논란에 휩싸이자 손 대표에 공개 사과하면서 오히려 수세로 몰려버렸다. 사진 / 오훈 기자

늘 당내 소수였던 바른정당계가 이례적으로 당내 선거에서 승리하며 오 원내대표를 당선시킨 지난 15일만 해도 당장 당권마저 바른정당계로 넘어가는 모습이었지만 온갖 공세에도 버티던 손 대표에게 하태경 최고위원이 지난 22일 ‘나이 들면 정신 퇴락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변곡점이 형성됐고, 24일엔 손 대표에 대한 하 최고위원의 ‘90도 사과’와 함께 법원에서 손 대표의 지명직 최고위원(주승용·문병호) 임명 절차에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며 효력정지가처분신청 기각 결정마저 내놓으면서 손 대표에게 다시 무게추가 기운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손 대표가 바른정당계에서 임시 최고위 개최를 요구하면서 올린 8개의 안건을 모두 상정 거부한 이래 24일엔 바른미래당 일부 지역위원장 및 당원들이 하 최고위원 사퇴 촉구 및 당 윤리위 제소를 표명한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27일엔 바른정당계인 이준석 최고위원까지 손 대표 측근인 임헌경 바른미래당 전 사무부총장에게 “이 최고위원이 4·3보궐선거 당시 창원시청 광장 앞 마지막 유세에서 음주 상태로 지원유세를 해 최고위원으로서의 품위유지 및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당 윤리위에 제소당하는 등 손 대표 측 반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이미 26일 손 대표가 과거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급의 강력한 권한을 가진 원외 인사를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를 추진하려 한다는 보도까지 일부 나오던 와중에 27일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이 전격적으로 전권 혁신위를 제안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니 이를 논의한 적 없는 바른정당계로선 완전한 국면 전환을 노린 손 대표의 반전 카드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설령 전권 혁신위를 바른정당계에서 수용한다 해도 여기서 손 대표 유임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앞서 원내대표 선거 승리를 계기로 자신들이 잡는 듯했던 당 주도권이 사실상 혁신위 쪽으로 넘어가게 돼 향후 정계개편 등 여러 구상이 손 대표 측과 다른 바른정당계로선 총선이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데 대해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한층 불안해지는 건 공석이던 사무부총장에 27일 손 대표의 최측근이자 오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관악구에서 구의회 의원도 맡은 바 있는 이행자 당 대표 당무특보 겸 당무감사위원회 위원이 임명되는 등 당직자들도 점점 손 대표 인사로 채워진다는 건데, 이런 흐름은 손 대표 퇴진을 점점 어렵게 만들게 되기에 손 대표 퇴진 압박 외에 실질적인 별도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되는 게 아닌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법원 판결로 지도부인 최고위 구성도 손 대표 측과 안철수·유승민계가 4대5로 반쪽이 되어 있는 가운데 안철수계의 혁신위 제안을 무시한 채 손 대표가 받아들일 리 없는 사퇴론만 내세우기엔 장기적으론 정치적 부담도 없지 않고 자칫 ‘혁신위 제안’ 문제로 손 대표 측에게만 좋을 안철수계와 유승민계의 분열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보니 일단 논의는 거듭하고 있는데, 바른미래당의 전·현직 원외지역위원장 112명도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를 향해 안철수계의 ‘정병국 혁신위’ 제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하고 있어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