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한센병·정신퇴락 등 與野 막론하고 쏟아지는 막말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24일 손학규 대표에게 했었던 '정신 퇴락' 발언을 공개 사과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24일 손학규 대표에게 했었던 '정신 퇴락' 발언을 공개 사과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정치권 곳곳에서 거친 설전이 오갈 정도로 극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면서 발언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자칫 여론의 역풍이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이 같은 막말이 횡행하는 데에는 나름의 계산도 없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뒤늦게 사과를 할망정 막말 공세를 자제하지 않고 있는 이유와 최근 불거졌던 몇몇 막말 논란들을 반추하면서 막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여파를 살펴본다.

◆ 靑·與에서 나온 ‘독재자의 후예’·‘도둑놈’·‘미친 것 아닌가’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패스트트랙 문제로 자유한국당과 한창 충돌 중이던 지난달 29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나는 이번 국회로 정치를 마무리하려고 마음을 먹고 천명한 사람이지만, 국회를 이대로 두고는 못 나가겠다. 반드시 청산할 사람 청산하고 정치를 마무리하겠다”며 “독재 통치자들의 후예가 독재 타도를 외치고, 헌법을 유린한 사람들의 후예가 헌법 수호를 외치는 국회를 어떻게 그냥 두고 떠나냐. 도둑놈들한테 이 국회를 맡길 수 있겠냐”라고 이른바 ‘도둑놈’ 발언을 한 바 있다.

비록 이 대표가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의미의 적반하장이란 고사성어를 거론하면서 꺼낸 발언이라지만 선을 넘은 비유에 한국당은 당시 격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24일에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집권여당 대표가 한 말처럼 야당을 도둑놈 대하듯 박멸집단으로 생각한다면 국회도, 민생도 후순위로 두는 것 아닌가”라며 “오직 제1야당을 적대하는 모습만 보였다. 국회 정상화의 가장 큰 적은 집권당 내 이념 강화와 선명성 투쟁”이라고 비판했을 만큼 당시 발언의 충격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같은 날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우상호 민주당 의원까지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원내 투쟁 중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겨냥 “제가 볼 때 나 원내대표가 지금 좀 미친 것 같다”고 한 발 더 나아간 발언까지 내놓는 등 극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당으로선 독재 통치자들의 후예, 도둑, 미친 것과 같은 부정적 인상을 주는 발언으로 상대 당을 지칭함으로써 대여투쟁 중인 야당을 좋지 않게 비쳐지도록 ‘프레임 공세’에 나선 셈인데, 이런 연장선상에서 청와대 역시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며 5·18 폄훼 의원 징계가 지연되고 있던 한국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당시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광주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5·18 기념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려던 의도를 저지하겠다는 계산도 일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YTN의 의뢰를 받아 5·18 직전인 지난 13~1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2512명에게 조사한 문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95%신뢰수준±2.0%p)에 따르면 호남지역에서 크게 상승(▲12.4%)한 데 힘입어 긍·부정 격차를 한층 벌렸었던 만큼 이를 확대시키기 위해 야당을 몰아붙이는 발언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한국당도 연일 포문…수위·빈도에 비해 성과는 의문

21일 자유공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대변인하고 있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가 '대변인 짓'이라고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사포커스DB
21일 자유공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대변인하고 있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가 '대변인 짓'이라고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사포커스DB

하지만 한국당 역시 절대 물러서지 않고 이보다 더한 발언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막말 공방은 한층 가열됐는데, 황교안 대표는 ‘독재자의 후예’란 문 대통령 발언이 나온지 사흘 뒤인 2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서 “제가 왜 독재자의 후예인가.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겐 말 한마디 못하니까 여기서 지금 (김정은의) 대변인하고 있지 않나”라고 응수했다.

문제는 당시 발언 중 “대변인 ‘짓’하고 있지 않나”로 들려 일각에서 ‘짓’이라고 칭했다는 논란이 일자 황 대표가 같은 날 “내가? 내가 무슨 대변인 짓이라니. 대변인 하고 있다는 말이었지 다른 사람이 얘기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때 아닌 진실공방으로 비화됐다는 것인데, 전희경 대변인까지 “대변인 짓 발언은 사실관계가 다르다. 현장에서 앞쪽에 있던 청중 발언을 황 대표가 옮기는 과정에서 오해가 불거진 것”이라고 황 대표 발언에 대해 재차 해명하면서 공세 차원에서 발언했다가 ‘득’은 없이 오히려 수세로 전환되어버린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심지어 이 발언은 청와대와 여당에 역공 구실까지 주게 돼 청와대에선 21일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연일 편가르기 발언이 난무하고 있는데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하나의 막말은 또 다른 막말을 낳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으며 22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제1야당 대표로 그런 강경발언이 능사는 아니라 생각한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대행까지 지낸 분이 국민들이 걱정스러워 할 발언은 어제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황 대표를 직격했다.

사실 문 대통령의 ‘독재자 후예’ 발언에 자극받아 이에 대응한 차원임에도 그보다 더 수위 높은 ‘도둑놈’ 발언까지 한 바 있는 이 대표까지 황 대표를 비판할 만큼 한국당으로선 ‘본전도 못 찾은’ 셈이 됐는데, 그간 ‘달창·문노스’ 등 강경 발언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주로 내놨던 반면 대선을 위해 중도확장이 필요하다보니 발언 수위를 다소 낮춰왔던 황 대표가 갑자기 이전과 다른 이런 강경 발언까지 내놓은 데에는 외연 확장을 노려 감행했던 5·18 기념식 참석이 별 효과를 못 거뒀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7일 YTN 의뢰를 받아 전국 성인 504명에게 조사한 황 대표의 5·18 기념식 참석에 대한 국민의식 여론조사에서 잘한 결정이란 비율은 38.9%에 그친 반면 잘못한 결정이란 답변이 54.3%를 기록한데다 무당층과 중도층, 충청권과 수도권, 20·30·40대에서도 부정적 응답이 대다수거나 우세하게 나왔었는데, 이 결과가 공개 발표(20일)된 바로 다음 날 황 대표가 자유공원을 찾아 보수색채가 짙은 강경 발언을 내놨다는 데에서 ‘집토끼 결집’ 쪽에 보다 방점을 두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박원석 전 의원도 22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짓이든 질이든 의도를 갖고 저 얘기를 했다는 건 분명하고 결국 이념을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라며 “당내 경쟁자 없는 독보적인 (대선후보) 지위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년에 닥친 총선 그리고 그 이후의 정치 과정에서 탄핵으로 쪼그라들었던 한국당의 정치적 외연을 넓히기에는 불가능한 행보”라고 평하기도 했다.

다만 황 대표가 외연 확장을 포기한 듯 강성 이미지로 탈바꿈한 게 대선엔 불리할 수 있지만 당장 내년 총선을 생각하면 달리 볼 수도 있단 지적도 없지 않은데, 현재 다당제 구도라 해도 보수정당에 비해 진보정당이 다수여서 진보진영은 지지층 분산 가능성이 높은 반면 한국당은 바른미래당이란 변수를 제외하곤 기존 지지층 결집만으로도 거의 보수결집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불분명한 중도층 표심에 구애하기보다 총선까지 극단적 이념대결로 몰고 가 18대 대선처럼 중도층 존재감 자체를 축소시키려는 전략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당에선 총공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의원들이 경쟁하듯 나서서 청와대와 여당에 맹공을 퍼붓고 있는데, 이주영 의원은 22일 ‘독재자의 후예’라고 지적한 문 대통령에 거꾸로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천안함 폭침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되돌려줘야 한다는 비아냥 소리를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다”고 일침을 가했으며 유기준 의원은 5·18기념식에서 황 대표에만 ‘악수 패싱’했던 김정숙 여사 태도를 들어 “최고지도자 부부가 이렇게 협량해선 안 되고 이게 국가 망신”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 이목은 끌지만 발언 내용·대상 따라 역풍 맞기도

한센병 발언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사과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 ⓒ시사포커스DB
한센병 발언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사과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 ⓒ시사포커스DB

그러면서도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다’는 식의 이 의원 발언에서 보듯 인용하는 형태로 에둘러 공격하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자당 소속 김현아 의원의 ‘한센병’ 발언 파문 등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앞서 5·18 폄훼 의원 징계 마무리도 없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려 한다면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황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지칭한 발언을 놓고 김 의원이 16일 YTN ‘더뉴스-더정치’에서 이를 의학적 용어일 뿐이란 표창원 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가 마찬가지로 의학적 용어인 한센병을 문 대통령에 비유해 역풍을 맞았는데, 정작 사이코패스 발언에 대해 이 대표는 공식 사과한 바 없었던 반면 김 의원은 여론의 거센 비판 끝에 한센병 환우들을 배려하지 못한 잘못된 발언이었다면서 발언한 지 하루 만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처럼 강경 발언이 득보다 ‘실’로 되어버린 경우는 한국당 외에도 또 있는데, 최근 바른미래당 내홍 과정에서 손학규 대표에 사퇴 압박을 가하던 하태경 최고위원의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는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22일 하 최고위원은 임시 최고위에서 한사코 물러나길 거부하는 손 대표의 면전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민주주의가 개인 내면의 민주주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그 정신이 퇴락하기 때문”이라고 공개 비난했었는데, 민주당에서 23일 “역대급 노인 비하 발언”이란 논평을 내놓는 등 자칫 노인 폄하 논란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표현 하나 하나가 평소보다 더 정제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힌 데 이어 24일 임시 최고위원회의에선 손 대표에게 90도 인사까지 하며 공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노인 폄하 발언 논란에 휩싸여 17대 대선 당시 홍역을 치른 끝에 참패한 정동영 의원의 전례도 있다 보니 그보다 더 노년층 표심에 민감한 보수 성향 의원으로서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당초 손 대표를 더욱 압박하고자 임시 최고위 개최를 요구했던 하 최고위원이 정작 이날 회의에서 손 대표에게 ‘90도 인사’를 하면서 바른미래당의 당권투쟁마저 거꾸로 손 대표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버린 분위기가 됐다.

이를 보여주듯 손 대표는 이날 상정되려던 8개 안건을 모두 거부하면서 “하 최고위원이 어제 늦게 저희집까지 찾아와 사과했지만 정치인으로서 책임져야 하고 당인으로서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고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고, 손 대표에 사퇴 촉구하던 오 원내대표도 “용퇴를 거부했다면 당 운영이라도 민주적으로 해 더 이상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손 대표의 사퇴 거부에 대해선 일견 수용한 듯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듯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의 중요성이 확실히 느껴지는 게 최근 정치권 모습인데, 경우에 따라 ‘양날의 칼’도 될 수 있는 막말 공방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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