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고 있다.”(원로와의 만남)“ “평범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정의로운 국가의 책임과 보호 아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독일 언론 기고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소회와 지향점을 밝혔다. 원로와의 대화에서는 솔직함을 드러냈고, 언론 기고문에서는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본인의 충실한 지지자들에게 나름 공감대를 얻을만한 좋은 표현이다. 다만 한발 물러서서 보면 준비 안 된 대통령이 여전히 신기루와 무지개를 좇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년이 ‘성과는 빈약했고 거짓 약속은 풍성한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2년의 세월을 돌이켜보건대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잘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시작이 반이다’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가족이나 기업, 나라 등 크고 작은 조직은 모두 성과를 내야 한다. 가족의 가장, 기업의 최고경영자, 나라의 국정책임자가 이뤄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성과의 실현’이다. 가장은 돈을 벌어야 하고, 최고경영자는 이익을 내야하며, 국정책임자는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성과를 내야 조직 내 모든 구성원들의 식탁이 풍성해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미국의 한 유명 경영자는 “성과가 현실이다. 꿈과 현실을 헷갈리지 말라. 경영자는 어떤 구실을 찾아내더라도 결국 경영자는 손익계산서를 통해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국정책임자는 가장이나 기업 최고경영자와 달리 성과 이외에 추가로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민의 신임을 얻어 국정최고책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뢰의 신(信)이라는 한자가 보여주듯이 신뢰는 말을 통해 얻어진다. 말에 참됨이 있고 거짓말이 적어야 국민 사이에 신뢰감이 높아지고, 다툼과 싸움이 줄어든다. 문재인 정부의 2년 성적표는 어땠을까?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실망스럽고 형편없다’는 기사는 여기저기서 장마철 폭우처럼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한국갤럽은 취임 1주년과 2주년 사이 즉 지난 1년 동안 주요 국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긍정평가를 놓고 보니 경제는 47%에서 23%로, 인사는 48%에서 26%로, 대북정책은 83%에서 45%로 반토막이 났다. 올해 1분기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3%를 기록한데서 보듯이 수출 투자 소비 모두 부진하다. 한겨레신문은 7일 여론조사 보도에서 “일자리정책 못했다는 평가가 57.7%”라고 전했다. 일자리를 국정의 최고 목표로 세우고 청와대에 처음 한 일이 ‘일자리 상황판 만들기’였는데 그게 엉망진창이라고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한겨레신문조차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은 경제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경제정책 평가와 경제전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D학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성적표가 이렇게 된 원인으로 수만 가지를 제기할 수 있지만 단 하나만 꼽으라면 ‘이념과 편 가르기에 따른 B급, C급 인재등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기업은 늘 A급 인재를 찾는다. 엄청난 도덕적 결함이 없는 한 돈을 더 주고서라도 채용하고, 경쟁 기업에서 잘 한 인재는 더욱 우대해서 뽑는다. ‘A-특공대(The A-Team)’라는 영화도 있듯이 성과는 A팀이 내는 것이지 B급, C급 인재들이 모인 팀이 쉽게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재등용은 기업과 많이 달랐다. 과거 정권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외면했다. 그들도 우리 국민이고 진짜 인재인데 배척하고 나섰다. 박찬주 예비역 육군 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이 아니라 주류 청산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춘천지법원장 출신으로 대법관을 안 거쳤다. 외교부 장관은 과거에 통역사였고, 민정수석도 검찰 출신이 아니다.” 송복 연세대 교수는 “본디 ‘적폐청산’이란 잘못된 제도나 법령, 기구 등을 바꾸는 것인데 현 정부는 제도와 법령은 그대로 두고 구성원만 쫓아내 자기 코드에 맞는 인사만 넣고 있다. 우리 진영에 속한 사람은 '충신', 반대 진영에 속한 사람은 '역신'이라 부르며 ‘붕당정치’를 하던 조선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적폐(積弊)를 얘기하면서 적패(적 패거리) 청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팀도 A팀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국경제신문이 경제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경제팀에서 10점 만점에 5점을 넘긴 인물이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2명 밖에 없다. 그나마 둘 다 5점대 점수를 받았다. 전현직 경제관료들에게 물어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였던 김동연, 홍남기 두 명에 대한 실력과 평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대부분 답변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아낀 사람은 절대 내칠 수 없는 전형적인 연고주의, 그리고 내가 했던 공약과 내가 만든 정책은 뒤집을 수 없는 이념주의와 단선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 사람은 부동산 투기를 해도, 아들딸을 외고 자사고에 보내도, 주식 투자를 해도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보는 식이다. 그랬으니 부동산 투기 논란을 일으킨 청와대 대변인과 오찬을 하며 “어디 살 건가”라고 물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17년5월 노량진 학원가를 찾아가 “사법시험을 존치해 줄 수는 없느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로스쿨을 만들었던 참여정부 사람으로서 정책을 뒤집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한 외곬수 생각이 오늘날 “아무리 잘못됐더라도 소득주도성장은 꼭 지킨다”는 모습으로 나왔을 것이다.

대통령은 말로 국정을 이끈다. 그러다보니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2년 전 취임사를 다시 찾아 읽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당시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풍성했던 연설문이었다. 워낙 좋은 문장이 많으니 몇 가지만 보자.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 대원칙으로 삼겠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겠다.”

“거듭 말씀드린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대목이다. 이 문장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는 표현을 연상시켰다. 지금 와서 그 문장을 보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조지 오웰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게 동물농장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오웰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재인 대통령의 평등 공정 정의는 ‘더 평등한 동물’에게만 해당된다는 느낌을 준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도 동물농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평등하기는 한데 그들 가운데도 핵심세력, 주변세력, 기타세력이 있고 신라의 골품제처럼 성골 진골 육두품 등이 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더 평등한 동물’ 즉 핵심 세력으로 청와대 보직을 받은 사람, 장관이나 공기업 사장으로 발탁된 정치인과 교수, 공기업 곳곳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을 꼽을 수 있겠다. 주변 세력으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활개를 치고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민노총 소속 대기업 노조, 전교조, 탈원전과 4대강 보 해체 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실상은 이익단체) 등이 해당될 수 있다. 기타 세력으로 문재인 정부의 호위세력이 되어 잘 나가는 방송인, 문화예술인 등을 꼽을 수 있다.

눈여겨봐야 할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평등한 동물들’이다. 이들은 소득주도성장이 마냥 좋을 것으로 여겨 표를 찍어준 자영업자, 중소기업 비정규직, 학비를 벌어야하는 알바 학생 등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 잔뜩 기대를 걸었는데 희망고문만 당했을 뿐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자영업자 3곳 중 한 곳이 휴업과 폐업을 생각하고, 자영업자의 82%가 2년 전보다 살림이 나빠졌다는 여론 조사가 이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20대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의사를 철회한 것을 보면 이들도 상당히 현실에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계층은 30~40대들이다. 이들은 아직 직장을 다니니 문재인 정부의 엉터리 정책이 가져오는 폐해를 절실히 못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도 조금만 있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실정의 부메랑이 곧바로 폭풍처럼 자신들의 삶을 덮친다는 것을.

경제의 핵심 주축은 기업이다.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를 만드는 데 올해 1분기에 민간설비투자 마이너스 10.8%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지난해 100억 달러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에 비해 31.5%나 늘었다. 올해 기업들의 투자 의향서를 보면 중견기업은 전년대비 마이너스 31.3%, 중소기업은 마이너스 24.6%라는 수치가 나왔다. 미리 확정된 투자가 설비 보수 등을 제외하면 거의 투자를 않겠다는 의미다. 그렇게 투자를 안 하니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기업들의 수익도 크게 줄고 있다. 기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30~40대 직장인들의 월급이 오를 일이 없다. 경제가 나빠지니 벌써 원 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 선에 육박했다. 환율이 이렇게 오르면 수입물가도 오른다. 당장 생활물가가 올라 시장 보기가 힘들어지고,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해외여행 경비도 크게 높아질 수 있다. 그게 엉터리 경제정책의 부메랑이다.

피해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세력은 고액 연봉을 받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반면, 별로 가진 게 없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거 피해자가 되고 삶이 팍팍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고 대출을 죄니 서민들은 좋은 아파트를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민노총이 마구 설치니 대기업들이 공채를 줄이면서 젊은이들의 일자리 관문은 더욱 좁아졌다. (최근 나라꼴이 엉망진창인 남미 베네수엘라를 보고 “국민들이 불쌍하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언론들은 그 불쌍한(?) 국민들이 포퓰리즘 지지자들이었고 자승자박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과도 없고 거짓 약속만 풍성했던’ 지난 2년의 세월에 대해 크게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도 없고 이겨서도 안 된다”는 원칙을 어기고 오로지 국민 세금만 쏟아 붓는 엉터리 재정정책만 펼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치사회적으로는 “국정 농단이나 사법 농단이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하게 반(反)헌법적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타협하기 쉽지 않다”며 적폐 청산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구덩이에 빠졌는데 구덩이를 더 깊이 파는 모습이다.

정치적으로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고, 경제적으로 국민의 삶이 나날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좋은 뉴스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희망 고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이제는 ‘희망 상실’을 말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졌다.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뉴스는 죄다 과거 소식이다. 그러다보니 뉴스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최근 들었던 얘기 중에 “미래 소식이라곤 일기예보 밖에 없다.”는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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