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lame-duck) 현상’은 정치지도자의 통치력 부재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통치권자의 임기 말경에 찾아온다. 한국에서는 레임덕이 이와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잃을 때 본격적으로 이뤄지거나, 혹은 대통령의 손발이 될 권력기관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면서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출범 2년 만에 레임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시점이니 참 빠르다는 느낌이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처럼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 자초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불은 국회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검경 수사권 조정,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총대를 메고, 선거법 개정안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이 합세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일단 통과되고 나니 후폭풍이 일고 여기저기 불이 옮아 붙었다. 먼저 문무일 검찰총장이 대통령을 들이 받았다. ‘검경 수사권 조정방안’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현직 부장판사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에 대해 “이 기관은 누가 견제하고 통제하느냐. 검찰 경찰 법원이 공수처에 무릎 꿇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방안에 대해 “경찰 수사권의 비대화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데도 ‘마이웨이’을 선언하고 나섰다. 2일 사회계 원로와의 간담회에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을 ‘헌법 파괴적 행위’로 규정하고 “타협하기 쉽지 않다”며 직진 신호를 보냈다.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다”며 유체이탈식 화법도 구사했다. 정치권은 여야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국민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권력기관들끼리 상대방을 향해 핏대를 올리는 상황에서 ‘화합과 조정의 대명사’가 돼야 할 대통령이 자신의 소임을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다. ‘권력’을 쥔 대통령이 앞으로도 ‘권력의 그립’을 더욱 강하게 잡겠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게 가능한 얘기일까.

권력을 칼, 모래, 양파에 비유하는 말이 있다.

권력은 상대방을 베고 찌를 수 있는 칼이라는 얘기는 쉽게 이해가 된다. 여기서 핵심은 ‘손잡이가 없는 칼’이라는 부분이다. 권력이 상대방을 더 강하게 옥죌수록 손잡이가 자신을 찌르고 손과 몸에 치명적인 상처가 남는다. 부동산 투기를 범죄자 취급하다가 자신의 참모가 날아가고, 낙하산 인사를 무리하게 내려 보내다가 장관 출신이 법정에 서는 게 대표적이다. 정권이 말기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강해지는데, 벌써부터 임기가 지나면 법정에 설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부지기수라는 얘기가 시중에 널리 퍼져 있다.

권력의 기반은 모래와 같다. 지지기반이 탄탄한 정치인들은 ‘콘크리트 지지율’을 가졌다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나 튼튼한 지지율을 갖고 있다는 정치인이 지지율 4%의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는데,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 권력의 행사도 모래와 같아서 손으로 모래를 쥘 때 너무 세게 쥐어도 빠져 나가고 너무 느슨하게 쥐어도 빠져 나간다. 권력 행사에서 ‘적당함과 중용의 미덕’이 중요한 이유다.

권력의 본질은 양파와 같다. 예전에 어떤 정치인이 상대방의 비리 의혹을 비난하며 “다마네기(양파의 일본처럼) 후보냐. 까도 까도 또 나오게”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웃긴 적이 있는데, 양파를 계속 벗기면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정치권력도 임기가 끝나면 양파의 속살처럼 남는 게 없고, 그렇게나 많던 참모들과 지지자들도 흩어진다.

정치권력의 속성이 그러함에도 실제로 권력의 그룹에 들어가면 이러한 사실을 잊는다. 권력자는 더욱 큰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며,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자기편을 챙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편을 배척하는 ‘뺄셈의 정치’를 펼친다. 더불어민주당의 금태섭 조응천 의원도 벌써 여당 내 아웃사이더(줄여서 아싸. 외부인)가 됐다. 금태섭 의원은 공수처에 대해 “대통령이 양손에 검찰과 공수처를 들고 전횡을 일삼을 우려가 있다.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고”고 페이스북에 썼다. 조응천 의원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랬더니 친문 지지자들이 “동네 양아치들처럼 자기 패거리만 옹호한다.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는 폭언을 내뱉었다. 조응천 의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고, 금태섭 의원이 안철수 전 의원의 측근 활동을 한 과거전력을 문제 삼았다.

문재인 정부가 멈추지 않겠다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의 개혁’과 각종 정책실험을 보고 있노라니 20여 년 전 어느 교수가 썼던 ‘광대의 줄타기’라는 글이 생각난다. 내용의 요지는 대략 이렇다. “시골 장터에 외줄타기 광대가 있었는데 1미터 높이에서 묘기를 선보이고 박수를 받았다. 몇 차례 공연을 했더니 박수 소리가 약해졌다. 이번에 2미터 높이로 올렸더니 박수가 매우 커졌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더니 다시 관중들의 열기가 시들해졌다. 광대는 다시 3미터 높이로 올렸다. 그 후 4미터, 5미터 ... 광대가 줄타기를 하다가 바람에 흔들려 실수를 했을 때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권력을 잡은 세력은 철옹성을 지으려고 한다. 높은 언덕 위에 담을 쌓고 철망을 친다.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좁은 통로를 만들다가 그것도 불안한지 사다리를 놓는다. 어느 날 사다리를 통해 올라오는 사람이 생길까봐 사다리를 치운다. 그러다가 권력을 잃고 철옹성에서 나와야 할 처지에 몰리면 그들은 어떻게 안전을 지키며 내려올 수 있을까? (지난 정부에서 위세를 부리던 친박, 진박들의 운명을 보라.)

검찰 경찰 법원까지 달려들어 목소리를 내는 ‘분열과 갈등의 증폭 현상’에서 권력의 큰 흔들림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정확히 2년이 되는 날까지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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