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과 전북의 경계선에 있는 대둔산은 절경이고 명물이다. 멋진 기암괴석과 수목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하늘에 걸린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은 아찔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대둔산 입구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동학농민혁명 대둔산항쟁전적비’는 동학 농민군이 최후까지 항전을 벌인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비석 밑에 새겨진 ‘척양척왜(斥洋斥倭)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표현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들의 우국충정과 함성이 대둔산 골짜기에 지금도 울려 퍼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불행한 운명과 무지를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왠지 스산하다. 동학농민군은 과연 ‘척양척왜’의 진짜 의미를 알았을까.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조선 팔도 곳곳에 세워진 척화비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척양척왜를 곧 애국으로 알았다. 비석을 세우고 서양인 일본인을 몰아내는 게 나라를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양인 일본인과 교류하고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친일이자 매국이었으며,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외국인을 미워하는 게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인줄도 몰랐을 터이니.

조선 말기를 수놓은 ‘위정척사(衛正斥邪)’ 즉 성리학 체계를 지키고 외국 문물과 개화를 반대하는 정신은 나라 힘을 약화시켰다. 동학혁명 이후 16년 만에 일본은 한국을 삼켰다. ‘척양척왜’라는 봉건적인 생각이 궁극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도운 셈이다. 일본을 이롭게 하는 ‘진짜 친일(親日)’은 척양척왜를 외친 사람들일까 아니면 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일까.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에 따르면 조선 말기 위정척사 정신은 1980년대 반미·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학생 운동권으로 이어진다. 386 세대로 불리는 한국 좌파의 이념적 기저가 되는 셈이다. 이들 운동권 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주축이기도 하다.

척화비와 척양척왜의 정신을 이어받은 탓인지 한국 사회에 다시 ‘친일(親日)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일본을 알고 일본과 친해지려는 사람은 모조리 친일세력으로 모는 형국인데, 그러다보니 집권세력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 자기 조상을 욕되게 하는 못된 인물들도 줄줄이 나타났다. 그들은 지극히 좁은 소견머리로 적을 알고 적을 극복하는 노력 즉 지일(知日)과 극일(克日)을 매국으로 몰아붙인다. 국제정세와 한국의 처지도 모르면서 ‘친일 프레임’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대한민국을 멍들게 하고 일본을 이롭게 하는 ‘진짜 친일’임을 모르는 듯하다. 이들의 바보짓에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한국은 스스로 국제적인 외톨이가 되고 있다. ‘화를 내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했는데 그런 아둔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첫째, 일본은 프레너미(frenemy)다. 프레너미란 ‘friend(친구)’와 ‘enemy(적)’의 합성어로 이해관계로 인한 전략적 협력관계인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음을 뜻한다. 가까이 할 수도 그렇다고 멀리 할 수도 없는 뜨뜻미지근한 관계이자 애증의 관계라는 의미다.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옆에 붙어있다 보니 역사적으로 상호 교류와 갈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임나일본부’라는 묘한 얘기를 꺼내 한반도를 자신들이 점령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에게는 임진왜란과 한일합병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반면에 일본인 DNA의 구성 중 한국인 DNA가 23%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것을 보면 한일 양국은 핏줄로도 연결돼 있다. 언어 음식 사고방식 등도 매우 비슷하다. 국제회의나 토론장에서 세계 각국 사람들끼리 어울리다보면 가장 가까워지는 게 일본 사람들이다.

둘째, 한국과 일본 간에 벌어진 일들은 문제(problem)가 아니라 딜레마(dilemma)로 봐야 한다. 문제를 보면 어느 정도 정답을 찾을 수 있지만 딜레마에는 정답이 없다. ‘적절한 관리’만 있을 뿐이다. 예컨대, 대법원 징용 판결이나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의 경우 어떤 식으로 판결이 나더라도 후폭풍이 생긴다. 우리가 승리하면 일본이 수용하기 어렵고, 일본이 승리하면 우리 내부의 반발이 엄청나게 생긴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국가 간 문제는 ‘해결은 없고 관리만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한일 관계의 딜레마도 모른 채 ‘친일과 반일 프레임’으로 접근하다보니 아무런 실익도 챙기지 못하면서 양국 관계만 엉망으로 만들었다.

셋째, 한일 양국은 상호 의존관계다. 일본은 한때 우리의 최대 무역국이었다가 지금은 비중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5대 교역국에 포함된다. 특히 ‘제조장비 없이는 첨단제품도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은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소재와 부품, 제조장비의 주요 공급처이다. 한 일본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휴대폰 공장을 가본 사람은 안다. 설비의 대부분이 일본 제품이다. 반도체 장비의 자급률이 20% 남짓에 불과한데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누가 손해인지 경제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회장은 “한일관계가 좋을 때 우리 경제도 좋았다”라고 잘라 말할 정도다.

넷째,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 체제다.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386 운동권들도 같은 민족이 사는 북녘 땅을 마음대로 밟지 못한다. 일본 땅은 마음대로 간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754만 명이고,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295만 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권력층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도 도쿄 시내에서 어깨동무를 했다. 그렇게 오고가도 아무런 탈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지 일본이 아니다.

다섯째,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다. 국제관계를 얘기할 때 “친구는 바꿀 수 있어도 이웃은 바꿀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개인 간 관계에서 이웃이 싫으면 이사를 갈 수 있지만, 국가는 이사를 갈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싫든 좋든 나라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터전을 잡고 이웃 국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싸우면서 지내는 게 좋을까.

“억울하면 출세하라. 최대의 복수는 상대방보다 더 성공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보다 더 힘을 키워 부강하고 수준 높은 나라를 만드는 게 진정한 극일(克日)이라는 얘기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 검사 앞에서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런 도산선생도 나라의 패망을 일본과 이완용 책임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라고 했다. 힘을 키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광을 만드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수양과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도산 안창호의 말씀을 실천한 인물로 누가 있을까.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던 1964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100달러도 되지 않았다. 1965년 한일협정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반대 데모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국교를 맺고 일본에 손을 벌려야 했다. 먹고 사는 게 워낙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산업의 거목들이 태어났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은 일본을 스승처럼 여기고 매년 새해면 도쿄로 날아가 경영 구상을 했다. 그는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TV와 반도체를 만들었고. 결국 소니를 앞서며 일본 메모리 반도체업계를 궤멸시켰다. 현대차는 전범기업의 대명사인 미쓰비시의 엔진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세계에 수출했다. 박태준은 일본에 통사정을 해 제철기술을 들여왔고, 오늘날 포스코를 일본 철강업계보다 더 뛰어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웠다.

반면에 말초적인 언어로 국민감정에 호소해 국익을 망친 인물들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말했다가 외환위기 당시 일본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천황은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호기를 부려 일본에서 혐한 물결이 일도록 만들었다. 2012년 45억 달러이던 일본의 대한국 직접투자 규모는 다음 해 26억 달러로 줄었다. 양국 간 협력의 상징이던 한일 통화스와프도 2015년 2월 종료 이후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다.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일본 때리기’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한국 스포일러(spoiler)’가 될 수 있음을 가장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이 세계 3위의 경제력, 세계 6위의 군사력으로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을 한국인들만 잘 모르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도 최근 “정부와 대통령이 앞장서서 반일 감정을 불러내고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바보 멍청이짓”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일 관계에 대해 전문가는 3무(無) 정권이라고 지칭한다. 양국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전략도 없고, 그렇다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도 없으며, 전문가들을 찾아 물어보는 자문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은 5월1일을 기해 새 국왕인 나루히토가 즉위식을 갖는다. ‘레이와(令和) 시대의 개막’이라며 대대적으로 축포를 쏘고 미래로의 도약을 다짐한다. 일본은 이를 위한 사전 준비로 미국과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중국과도 교류를 크게 늘렸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면서 혼자서 멀뚱멀뚱 새로워지는 일본을 쳐다보고 있다. 정치적 이득을 노린 ‘친일 프레임’의 자업자득이자 자승자박이다. 단세포적 세계관을 가진 그들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오늘날 적지 않은 우리 젊은이들은 유니클로를 입고, ABC마트에서 신발을 사고, 라멘을 먹으며 일본을 찾거나 일본 여행을 계획한다. 그들의 삶에 정치적 편가르기나 일방적인 쇼비니즘(국수주의)은 없다. 그들은 ‘진짜 친일과 진짜 극일’ ‘진짜 애국과 진짜 매국’의 차이를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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