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 태워…한국당, ‘장외투쟁 지속’ 돌파구 될까

29일 더불어민주당과 30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지도부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29일 더불어민주당과 30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지도부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정치권을 극한 대치 상태로 몰아갔던 패스트트랙 정국이 자유한국당의 줄기찬 저지 투쟁에도 불구하고 막판 바른미래당에서 내놨던 ‘권은희 안’까지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에서 결국 받아들여지면서 4박5일 만에 일단 여야 4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비록 표면상으론 당장 여당이 본래 관철했던 바를 이룬 듯 보이지만 최장 330일에 이르는 패스트트랙 열차가 이제 막 출발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만큼 장차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행보는 물론 이번에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바른미래당의 향방 역시 정국을 뒤흔들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공수처 우선이나 ‘타이밍’이 더 중했던 민주당, 일단 통과시키고 보자?

일단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편할 경우 상대적으로 지역구 의석수가 줄면서 손해를 보는 부분이 없지 않기에 당내 일부 반발의 목소리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번 패스트트랙에 적극 나서게 된 데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그래선지 당초 이전보다 소수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선거제 개편 때문에 여당과 손을 잡았던 일부 야당 내에서도 선거제를 공수처 법안과 함께 연계하는 자체가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육탄전을 불사한 한국당의 격렬한 반대 투쟁과 더불어 여야 4당이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었던 약속날짜(25일)도 수일 지나면서 패스트트랙 국면을 다음 달로 넘길 수는 없다는 촉박한 분위기까지 작용해 일일이 법안에 대한 세부적인 조정 논의보다는 의제 자체를 패스트트랙 태우는 자체에 우선하게 됐다.

이미 청와대에서 주문하는 추경 처리가 시급한데다 내달 8일 차기 원내대표 선거까지 잡혀 있어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홍영표 원내대표로선 패스트트랙 문제를 최대한 빨리 매듭지어야 된다는 압박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 속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당내 반발을 완화시킬 카드로 내놓고 배수진을 친 권은희 의원의 공수처안 역시 공수처가 여당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부득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선 공수처의 수사범위를 부패범죄로 축소하고 기소 전 기소심의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게 하는 권 의원의 공수처안에 대해 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공수처안보다 적잖이 후퇴된 안이라며 공수처의 인사권한도 대통령이 아닌 수사처장에게 부여해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런 것들은 쉽게 구멍가게에서 물건 바꿔치기하듯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고, 이재정 대변인은 “권은희 명예회복법이란 말까지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보임 무리수’ 때문에 당내에서 궁지에 몰린 김관영 원내대표가 권은희 공수처안도 패스트트랙에 태워주지 않는다면 협조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친 바람에 법안의 적시 처리를 더 중시했던 민주당으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는데, 이런 복잡한 속내를 보여주듯 기존 공수처 설치안을 대표 발의했던 백혜련 민주당 의원조차 “권은희안과 우리 안은 큰 차이가 있어 받을 수 없는 안”이라면서도 “그런데도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본회의에 부치면 우리 안을 우선 표결할 수 있게 협상해 달라”고 호소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돌연 민주평화당이 권은희안까지 패스트트랙으로 병행 지정한 것은 4당 간 합의를 위반한 셈이라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한시가 급했던 민주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오늘 중 처리하겠다”고 데드라인을 분명히 한 홍 원내대표의 뜻은 결국 관철돼 먼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당초 공지된 국회 본청 445호(행정안전위원회)가 아니라 604호(정무위원회)로 회의장 변경까지 하고 뒤늦게 들어와 항의하는 한국당 의원들을 겨냥해 질서유지권도 발동하면서 공언한 대로 자정 전에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신속처리안건 지정했다.

내년 총선부터 이번에 개편될 선거제를 적용하려면 더 이상 미루기 어렵고 이번 한국당의 반대를 넘지 못하면 기회를 얻기도 어려워져 먼저 패스트트랙에 올려놓고 논란이 될 세부사항들은 나중에 논의하면서 풀어가려는 계산이었는데, 이 같은 속도전 전략은 ‘국가보안법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던 홍 원내대표의 의지가 적잖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향후 협상 과정에서 결국 권은희안보다 자당 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거대정당’으로서의 자신감도 일부 작용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를 간파했는지 이미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3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김관영 원내대표가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고자 여당에 요구했었던 권은희안과 관련 “권 의원 법안하고 민주당 법안은 서로 대립하는 조항들이 여러 개 있어 서로 양립하지 못한다”며 “이게 다른 합의가 없으면 바로 본회의에 상정되는데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둘 다 과반 넘을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정당인 민주당 외에도 호남 지역정당 색채가 강한 평화당 내에서조차 지역구 감소에 따라 일부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다 보니 패스트트랙으로 올린 선거제와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 등 3가지 법안 중 설령 소수정당들이 우선하던 선거제가 무산되더라도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 취지엔 공감하는 정의당, 평화당 등 일부 정당과 연대하는 정도로 본회의 과반을 이뤄 선거제 무산에 따른 후폭풍과 별개로 본래 목적한 ‘공수처 설치’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깔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한국당, 대치 장기화로 보수 결집 효과 ‘톡톡’…대선후보 존재감도 ‘과시’

30일 오후 의원총회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우)와 나경원 원내대표(좌)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30일 오후 의원총회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우)와 나경원 원내대표(좌)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이렇듯 민주당으로선 향후 최장 330일간 이어질 패스트트랙 논의 과정이 어찌 되든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이를 총력 저지해온 한국당 역시 4박5일에 걸친 이번 대치 정국 속에 보수 결집이란 부수적 효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마냥 잃기만 한 셈은 아니다.

특히 패스트트랙 투쟁 과정에서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길고 긴 내홍이 언제였냐는 듯 계파를 막론하고 강력하게 결속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유승민계인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사보임 조치된 데 대해 자당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바른정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한 목소리로 여당에 저항해 이번 사태가 자연스럽게 보수통합을 위한 밑바탕을 만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참석했던 한국당 내 의원들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 집행정지 청원에 함께 하는 등 이러한 ‘통합’ 분위기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금 범진보 대 범보수의 양자대결 구도가 강해지면서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데, 이런 대결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당 지지율도 리얼미터가 지난 22~26일까지 전국 성인 2518명을 상대로 조사한 4월4주차 정당 지지도 집계 결과(95%신뢰수준±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한국당은 2주 연속 상승해 31.5%를 기록했다.

심지어 같은 기관이 조사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동일 대상·기준, 동 기관 참조)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22.2%로 야권서 홀로 독주하며 보수 유일후보에 가까울 만큼 지지세가 집중되고 있고 후보가 난립한 듯한 범진보 진영에서도 점차 이낙연 국무총리로 집결되면서 급격히 황 대표를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 간 대결구도로 굳어지면서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에도 보수 결집을 위한 투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데, 나경원 원내대표는 30일 의원총회에서 “이번 투쟁을 통해 한국당이 우파의 중심 세력으로, 우파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세력으로 거듭났다”며 “한국당을 넘어 보수우파를 모두 아우르는 빅텐트 안에서 하나되게 해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사실상 보수통합론을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우리의 헌법수호 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아야 한다. 국회에서 결사항전하고 전방위적 투쟁도 이어가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황 대표의 경우 천막당사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선후보로서의 확장성 때문에 그간 중도층의 향배를 의식해 보수색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엔 주저하는 듯 비쳐졌던 황 대표마저 이렇게 선회한 데에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로 치닫게 되면 결국 중도층은 진영 논리 속에 축소될 것이란 계산도 깔린 행보로 보인다.

다만 이미 패스트트랙이 태워진 상황에서 한국당의 장외투쟁이 이어져도 실질적으로 뒤집을 방법은 없는 만큼 무작정 반대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없진 않은데,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30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달 내로 돌아온다. 주말 몇 번하고 아무래도 실제로 들어와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심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지적처럼 한국당이 논의의 장 밖에서 실효성 없는 반대만 외치기보다 이들 안으로 뛰어들어 단일안이 나오는 데에 실질적으로 ‘훼방’을 놓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패스트트랙에 올린 법안은 여야 4당 사이에도 입장차가 있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충돌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고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에 제1야당을 완전 배제한 점도 다른 정당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패스트트랙으로 분당 앞당겨진 바른미래, 勢 싸움만 남아

패스트트랙 이후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좌)와 김관영 원내대표(우). 사진 / 오훈 기자
패스트트랙 이후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좌)와 김관영 원내대표(우). 사진 / 오훈 기자

이런 가운데 이번 사태를 어떤 방향으로 결론 낼 것인지 중요한 ‘무게추’ 역할을 했으면서도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견해차 때문에 정작 내부적으로는 가장 위기에 처한 곳은 바른미래당인데, 여당과 선거제·공수처법 패스트트랙에 나서기로 했었던 당 의총에서의 결정과 패스트트랙을 이뤄내기 위한 사보임 강행으로 수차례 파열음을 냈던 만큼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분당 수순으로 접어들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이 단순히 탈당하기보다는 몸값을 높이기 위해 지도부 장악을 우선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미 이런 움직임은 나타나 유승민 전 대표는 “패스트트랙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당이 불법과 거짓으로 통과시킨 측면이 있어 그 책임을 당내에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으며 김관영 원내대표에 의해 사개특위 위원직에서 사임됐던 오신환 의원 역시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이 사태를 만든 사람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여기에 하태경 의원까지 같은 날 T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김관영 원내대표는 국회를 비이성적으로 만든 책임이 있다. 정상적 판단을 하면 오늘 중 자진사퇴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 데 이어 “이번 패스트트랙 통과는 강제 사보임을 통해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정할 수 없고 본회의 가면 다 반대표 찍을 수밖에 없다”고 압박수위를 높였는데, 그럼에도 현 지도부의 손학규 대표는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제 당이 단합해 정치 새 판을 짜고 한국 정치구도를 바꿔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며 사실상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원내대표의 경우 자신이 사개특위 위원 등을 사보임 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는 바른정당 출신 자당 의원들의 주장과 관련해 오히려 “약속했다는 발언은 하태경 의원이 했다”고 반박하며 “이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사퇴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이들이 사보임을 강행하면서까지 선거제 개혁 사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1차 목적을 달성하고도 아직 물러나지 않는 데에는 지도부가 바뀔 경우 이번에 간신히 올려놓은 패스트트랙을 최장 330일에 걸친 논의 과정에서 다음 지도부가 무산시켜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손 대표가 이전부터 단식투쟁까지 감행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 개혁 필요성을 내세워온 만큼 이번 내홍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반대 세력을 뚫고 선거제 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 지정한 것은 사실상 당권투쟁에 승리한 셈이어서 물러날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이 때문에 패스트트랙 정국이 끝나더라도 당 내홍은 잦아들기보다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구나 패스트트랙으로 인한 대치 과정에서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도 분열돼 안철수계 의원들이 유승민 전 대표 측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함께 현 지도부에 맞섰다는 점도 이번 사태가 단순히 패스트트랙 사안 하나 때문에 벌어진 내홍이 아니란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철수·유승민’ 역할론에 힘입은 창업세력과 현 지도부의 충돌이 분당을 조기 촉발시킬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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