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임 강행 카드’로 기로에 선 바른미래당 지도부…‘지도부 퇴진론’

패스트트랙 국면 속에 극과 극으로 대치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좌)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우)의 모습. ⓒ시사포커스DB
패스트트랙 국면 속에 극과 극으로 대치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좌)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우)의 모습.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선거제·공수처 패스트트랙을 놓고 여야 대치 국면이 절정으로 치달은 가운데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바른미래당 역시 그간 불거져온 불협화음이 임계점에 다다르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내 ‘힘의 구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 ‘연속 사보임’ 김관영, 패스트트랙 가속하다 무리수 뒀나

지난해 1월 호남계를 중심으로 한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 이래 ‘한 지붕 두 가족’의 형태로 불안한 동거를 이어왔던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 정국을 계기로 그간 애써 외면해온 내부 갈등이 폭발하면서 완전히 갈라진 모양새인데, 패스트트랙을 어떻게든 강행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 속에 이뤄진 연이은 사보임 조치로 인해 12대11로 패스트트랙을 추인했던 지난 23일 의총 당시와는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여야 4당 간 잠정 합의안 추인 여부를 놓고 충돌했던 앞서 의원총회에선 당원권 징계로 이언주 의원이 참석할 수 없게 되면서 반대표는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 8명과 국민의당 출신 의원 3명 등 11명에 그쳐 간신히 단 한 표차로 패스트트랙 열차를 출발시키는 신호탄을 올렸다.

이미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만장일치 추인했던 만큼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던 지난 23일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결과는 실질적으로 패스트트랙 열차를 저지할 방도가 없어진 자유한국당이 본격 물리적 저지까지 불사하게 된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부담을 안고 내린 결정이다 보니 25일 김관영 원내대표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한 오신환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한 데 이어 급기야 같은 날 오후엔 일부 이견을 내비친 권은희 의원까지 임재훈 의원으로 사보임 조치했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소속 사개특위 위원 모두를 사보임 조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그 충격파는 23일 의총에서 지도부에 손을 들어줬던 의원들 중 일부의 이탈까지 초래한 것으로 관측되는데, 사실상 한국당을 배제한 채 강행되는 만큼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단 판단 속에 내려진 결단이라지만 바른정당 출신인 오 의원 뿐 아니라 호남이 지역구이고 국민의당 출신인 권 의원마저 사보임한 데 대해선 무리수란 지적이 적지 않다.

이를 보여주듯 오 의원 사보임만으로도 김삼화 의원이 25일 “당이 살자고 나선 길이 오히려 당을 분열시키고 무너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수석대변인직에서 사퇴한 데 이어 권 의원까지 사보임 조치된 하루 뒤인 26일엔 안철수계 김수민 의원도 “한쪽 편을 들어 당의 입장을 적어내는 것이 양심에 버거운 일”이라며 원내대변인직에서 사퇴했다.

여기에 이미 오 의원에 대한 사보임 신청서 접수를 막기 위해 25일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 의원이 공개했던 사보임 반대 의원 명부를 통해 드러났듯 현재 실질적으로 당 활동에 참여 중인 24명 중 과반인 13명이 지도부에 반기를 들고 있어 불과 이틀 전 있었던 의총과는 상황이 반전돼버렸다는 점도 지도부 반대세력에 본격 힘이 실렸다는 근거로 꼽히고 있다.

이 같은 기류 변화를 감지했는지 김 원내대표는 25일 YTN라디오 ‘이동형의 정면승부’에 출연해 권 의원을 사보임한 데 대해선 “본인이 법안 내용에 대해 다소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임 의사를 말씀하시고 그래서 절차를 단행한 것”이라며 권 의원의 자진 사임이었던 것처럼 설명했지만 26일 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직 검토 중인 법안을 그냥 합의안으로 발의하겠다고 했고 저에 대한 일방적인 사보임이 진행됐다”고 밝히면서 김 원내대표의 해명은 궁색해졌다.

결국 김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당 의원들과 함께 있는 SNS 대화방에 “합의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제 두 의원을 사보임 조치했다”며 “두 분 마음에 상처를 드려 죄송하고 당내 다른 의원들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 원내대표로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후 “당내 선거제도 개혁과 사법제도 개혁의지를 실천한 여러분과 좀 더 소통하겠다.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한 발 물러난 자세를 취했다.

◆ 기선 잡은 유승민계, ‘지도부 사퇴론’ 탄력 받나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 김철근 구로갑 지역위원장 및 현직 원외위원장들이 지도부 총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 김철근 구로갑 지역위원장 및 현직 원외위원장들이 지도부 총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상황은 이제 ‘사과’ 정도로 매듭지어지기는 어려운 지경인데,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중심인 유승민 전 대표가 지난 25일 “김 원내대표가 오신환 의원에 이어 (권 의원까지) 불법적으로 사보임했다. 이런 식으로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김 원내대표와 채이배, 임재훈 의원 모두 정치할 자격 없는 사람들”이라며 “끝까지 그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 몸으로 막겠다”고 천명한 데 이어 26일 현 지도부 중 바른정당 출신인 하태경 최고위원은 김 원내대표를 향해 “정치인이 되기 전에 사람이 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4·3보궐선거 참패 이후 줄곧 지도부 사퇴 필요성을 주장해온 이들 바른정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국면 속에 김중로, 이태규 의원 뿐 아니라 이동섭, 김삼화, 신용현 의원 등 안철수계 의원들이 점점 힘을 실어주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그래선지 현 지도부를 지지하는 이찬열 의원이 25일 성명서를 내고 “꼭두각시를 데리고 한국당으로 돌아가라”고 유 의원을 거세게 비난했음에도 유승민계인 권성주 바른미래당 전 대변인이 이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와 폭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당 윤리위에 제소하는 등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급기야 바른미래당 현직 원외위원장 81명 중 과반인 49명까지 26일 국회 정론관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패스트트랙 처리과정에서 손학규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당론에 이르지 못한 의원총회 결과를 마치 당론인양 호도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명예롭고 질서 있게 퇴진하라”며 “우리 당의 한 축인 바른정당계에게 당을 나라가고 등을 떠미는 주객전도된 상식 밖 행태와 반목을 조장하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바른정당계 쪽에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들은 “안 전 대표에게 당의 간판으로 전면에 나서 헌신해줄 것을 요청한다. 당의 창업자인 (안철수·유승민) 두 사람이 당 대표로서 손잡고 창당정신을 구현할 기회가 없었기에 두 분에게 막중한 역할을 부여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며 “한국당이나 민주평화당과 통합하거나 제3지대 신당 모두 반대한다. ‘안·유 공동체제’를 출범할 것”이라고 주장해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계개편에 나섰다기보다 새 지도부를 통한 자강 정도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바른정당계 의원들도 그동안 탈당 가능성에 대해선 거듭 일축해왔기에 유 의원 역시 26일 ‘보수란 무엇인가’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 일각에서 제기한 ‘안철수·유승민 역할론’과 관련 “원외위원장들이 답답한 마음에 그런 말을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도 “지금 해외에 계신 안 전 대표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중지를 모아 당이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저도 그런 책임을 다하겠다.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안 전 대표와 제가 초심으로 돌아가 당을 살리는 길을 찾는 것이 저의 당연한 의무”라고 적극 수용 의사를 밝혔다.

◆ 분당 위기라지만 탈당 기미 없어…결국 밀려나는 건 어느 쪽?

김관영 원내대표에 반발한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26일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김관영 원내대표에 반발한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26일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총선까지 1년도 안 남은 가운데 이렇듯 극심한 충돌을 불사하면서도 한자리수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을 어느 누구도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데에는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갖춘 정당이어서 정부보조금도 상당한 데다 50억원 안팎의 자산도 남아있다는 현실적 이유 뿐 아니라 ‘자체기반’조차 없이 단지 총선 공천을 받고자 거대정당의 문을 두드려봐야 이미 몇몇 무소속 의원들의 사례에 비추어 받아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이미 지난 18일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이숙이입니다’에 나와 “정당법상 당에 남아있는 쪽이 (현금을) 다 갖게 된다. 그래서 남아서 버티면 자기가 갖기 때문에 서로 ‘네가 나가라’ 싸우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비단 이런 부분 외에도 이번 사태의 원인인 패스트트랙의 경우 당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당과 약속한 사안이어서 김 원내대표가 독단으로 물리기 어려운데다 설령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번복한다고 해도 앞서 ‘1년 당원권 징계’를 통해 사실상 탈당 권고를 받았던 이언주 의원처럼 ‘안철수·유승민’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당에서 완전 밀려날 수 있기에 불신임 압박에 떠밀려 사과 표명만 내놨을 뿐 사퇴 가능성엔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원내대표 불신임에 대해선 당헌당규에 딱히 명시된 바 없다보니 이대로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는데, 당초 불신임 표결 가능성 때문에 주목받았던 26일 의원총회도 유승민·유의동·정병국·지상욱·오신환·하태경·이혜훈 의원과 국민의당 출신 이태규 의원, 이동섭 의원 등 재적의원 절반에도 못 미치는 9명만 참석했다는 점 역시 김 원내대표의 자진사퇴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날 의총 직후 참석자였던 이태규 의원은 “김 원내대표도 당의 구성원이고 동지이기 때문에 불신임 추진은 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일단 김 원내대표가 당의 통합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할 어떠한 명분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끝까지 김 원내대표 회유에 나섰으나 저녁 20시 직전 사상 최초로 전자입법발의시스템을 통해 패스트트랙 법안이 발의되어버려 어느 쪽이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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