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주로 말과 글로 자신을 증명하는 존재다. 그들은 머리와 두뇌를 자랑하면서 몸으로 부딪히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한다. ‘겸양하다’의 반대말인 ‘젠체하다(잘난 체하다)’가 몸에 배였다. (‘겸양하다’는 삼성직무적성평가에 나와 유명해졌다)

지식인들은 교언영색의 말과 글을 활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정치 선명성과 사회적 올바름 등을 잣대로 삼아 특정 상대를 모욕적인 표현으로 규정하고 단죄하기를 좋아한다. 비판의 경계선을 넘어 비난하기 일쑤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사이다 발언, 개념 있는 인물’로 평가를 얻으면 박수를 받고 돈까지 번다.

지식인에 대해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뛰어드는 자다.”라고 규정했다. 타인만 바라보니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사르트르도 프랑스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리며 “소련에는 자본주의의 비인간화 현상이 없다”는 말로 자신이 현실을 모르는 ‘헛똑똑이’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지식인은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사회의 찌꺼기’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지식인들 가운데는 인간 본능에 호소하는 좌파들이 훨씬 많다. 세상을 물어뜯는 좌파 지식인들의 대표적인 먹잇감이 자본주의다. 고난의 시대, 질곡의 시간, 개발독재의 망령, 어둠의 시절, 탐욕의 계절 등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멋있는(?) 개념을 잘도 개발해낸다.

그들의 대표적인 표현이 “시장의 탐욕은 사회의 보편적 부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켜, 세계를 1대 99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강연과 책은 순진한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돈을 번다. 용돈을 털어가며 책을 사고 강연료를 낸 20~30대들의 지원에 힘입어 그들은 자본가의 대열에 들어간다. 상위 1%에 당당히 포함되는 것이다. (우파는 원래 이성과 현실에 기반하는 경향이 강해서 시쳇말로 공자님 말씀 같은 우파 지식인의 책과 강연은 별로 인기가 없다. 그나마 무지와 분노에 호소하는 극우 성향을 띈 인물이어야 소수의 추종자를 모을 수 있다)

자본주의를 공격해 자본가로 우뚝 선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77세) 상원의원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빈부격차를 비난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다. 다음은 국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의 요약이다.

‘샌더스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자신은 백만장자가 맞다. 책이 잘 팔려서다. 기자 양반도 베스트셀러 책을 쓰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샌더스는 2015년 의원 재산공개 당시 75만 달러(약 8억5000만원)에 그쳤으나 이듬해부터 연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씩 벌어들여 현재 총자산이 300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원 연봉 17만 달러와 연금 3만 달러 등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 출판 인세·저작권료만 연 80만~9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다. 샌더스는 버몬트와 워싱턴 DC에 별장 등 단독주택 3채를 사들였고, 아내 명의로 25개 펀드에 수천~수만 달러씩 예치했다. (부동산과 주식 부자가 된 것이다) 샌더스는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진후 ‘우리의 혁명'(2016), '샌더스의 정치 혁명 가이드'(2017),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2018)를 연달아 냈다. 부익부 빈익빈을 용인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주요 산업 국유화와 부유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 사회주의식 복지 등을 주장한 책이다. 미국 젊은 층이 사회주의에 우호적이 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샌더스는 입만 열면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를 비난하며 "왜 그들은 자동차를 몇 대씩, 요트를 몇 척씩 가지나. 그만 좀 해먹으라"는 식으로 공격해왔다. 예전에는 "어떻게 벌든 백만장자라는 건 존재해선 안 된다.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 세율 100%를 부과하자“고 했었다. 당연히 ‘자본주의를 활용한 사회주의 재테크, 평소 소신대로면 전부 사회 환원 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베네수엘라는 ‘폭망의 나라, 희망의 빛이 꺼진 나라’로 국민의 10% 이상이 고국을 등졌고 국민의 90% 이상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우고 차베스는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베네수엘라의 비극을 불러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차베스가 2006년 9월20일 UN(국제연합) 총회 연설에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미국의 좌파 지식인으로 MIT교수인 노엄 촘스키가 쓴 <패권인가 생존인가, 까치 출판사(Hegemony or Survival: The Imperialist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란 책이었다.

차베스는 “노엄 촘스키는 미국 및 세계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20세기 내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지구에 닥쳐오는 가장 큰 위협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미국 제국의 패권적이며 가식적인 모습은 인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위험에 대해 계속 경고하며 미국과 세계의 사람들에게 이 위협을 멈추라고 호소한다. 나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한다.” 차베스가 세계를 상대로 책 선전을 한 덕분에 노엄 촘스키의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노엄 촘스키는 차베스를 만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돼 기쁩니다.”며 적극 화답했다. 촘스키는 미국 학계에서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어쩐 일인지 가장 잘 팔리는 좌파 지식인이 되었다. 검색을 해보면 알겠지만 촘스키의 책 수십 권이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다. 촘스키의 반자본주의적 가르침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지만, 촘스키에게는 크게 득이 되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가 엉망진창이 되자 차베스를 칭송하던 무리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다만 촘스키는 이상야릇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내가 차베스를 칭송했던 시절에는 베네수엘라에서 가난이 크게 줄었다“라고 변명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린다’라고 말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나는 차베스의 ‘국가 자본주의 정부’를 가리켜 ‘사회주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사적인 자본주의가 유지됐다. 자본주의자들이 자본을 대규모로 국외로 유출하기도 하는 등 온갖 방식으로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었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와 멍청함도 모르는 분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적 석학’ 운운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분노’를 팔아먹은 좌파 지식인들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프랑스의 스테판 에셀이 쓴 <분노하라>는 책은 전 세계에서 3500만 부나 팔리며 ‘분노 신드롬’을 야기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권력의 무책임, 불의 등에 무관심하지 말고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호소했다. 젊은이들이 정작 분노할 대상은 경제를 망가뜨리는 좌파 사회주의와 자신들의 노후를 위협하는 정치권력의 ‘무책임한 포퓰리즘’인데도 그는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날렸다. 토마 피게티는 아무런 해법도 담지 못한 채 불평등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찬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책으로 당대 석학이 됐다. 그는 고액의 강연료와 비행기의 최고급 좌석을 제공받는 명사로 변신했다.

지식인은 아니지만 차베스를 찬양한 소위 ‘개념 있는 연예인’들도 많다. 미국 영화배우인 숀 펜은 “국민의 80%가 가난한데 차베스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말했으며, 대니 글로버는 “차베스가 인류를 위한 비전을 지녔다”고 칭송했다. 미국의 개념 있는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차베스가 극심한 빈곤을 75%나 줄였다”고 주장했으며 모델인 나오미 캠벨은 “복지정책으로 사랑하는 모습에 감탄했어요.”라고 외쳐댔다. (국내에도 개념 있는(?) 연예인들이 많지만 여기서는 언급을 삼간다)

국내 지식인 가운데 대표적인 ‘위선 좌파 지식인’으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한국대사. 여기서는 교수로 통칭)을 꼽을 수 있다. 그는 2015년 고려대 교수 시절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출간했다. 책의 요지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이며 그렇게 된 원인은 대기업이 이익을 너무 많이 갖고 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분노하고 혁명적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 그는 대기업이 자신의 이익 일부를 하청 중소기업에게 임금인상이나 대금인상의 방식으로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강자와 약사를 넘어 주인과 노예의 상태가 용인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불평등은 이제는 혁명적 개혁을 하지 않고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청년세대에게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한국의 현실이 노력 부족과 같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면,… 청년세대의 분노는 정의롭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바꾸는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점이다. … 불평등한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까지 노예가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짜 무지개’인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장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불평등 구조의 최상위 꼭짓점 즉 상위 0.01%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올해 2월 장하성 교수의 재산 신고액은 총 104억1000만원으로 2017년 5월 취임 당시 93억1000만원과 비교하면 18개월 만에 10억9000만원이 늘었다. 장 교수의 재산은 부문별로 토지 2억7000만원, 건물 17억9000만원, 예금 82억5000만원, 유가증권 1,471만원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장 교수에게 현혹돼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청년들의 지갑은 홀쭉해졌고, 장 교수는 누구도 넘보기 힘든 부유층의 철옹성을 더 높이 쌓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부유층의 철옹성인)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비슷한 인물로 조국 민정수석(53억2800만원),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50억9400만원) 등이 있다)

문재인 정권의 ‘어용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유시민 전 장관은 2012년 재산신고액이 4억2100만원이었다. 그는 ‘썰전 출연료’와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 파는 책으로 상당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현재 그의 재산이 궁금할 뿐이다. 그는 ‘60대가 되면 뇌가 썩는다’는 말을 했고, 지금 60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지식인으로 행세한다.

국내에서 강연으로 먹고 사는 ‘지식노동자’가운데 노골적으로 ‘자본주의는 망해라’고 가르치는 분들도 많다. 강신주 철학자(?)는 한 강연에서 ‘자본주의에 맞서라,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데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매우 괴이하다. (필자의 책 <이기적 국민> 참조)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노예로 전락한다. 모두가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냉장고가 재래시장을 붕괴하게 한다.(냉장고가 없으면 가정주부들은 어찌 하라고?)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첫 번째 방법은 취업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그들이 만들어 파는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면 됩니다.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공식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지켜나가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강신주 같은 분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기업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에게 강연료를 지불하는 것인지 창으로 궁금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좌파 지식인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조직 중에 행동주의 펀드가 있다. 국내에서 장하성 대사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교수 시절 소액주주운동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행동주의 펀드의 대표적인 전술은 소외된 소액 주주들의 마음 흔들기다. 그들은 어떤 기업에 주주 불만이 치솟을 때 깜짝 등장해 공분을 자아내거나 달콤한 이익을 제시해서 이사회 장악 같은 것을 시도한다. 주주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사이다 발언’에 호응하는데 반(反)기업 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에 대해 행동주의 펀드의 ‘진짜 목적’ 즉 뒷모습을 볼 것을 주문했다. 그들은 단기적인 이익 챙기기의 명수로 투자를 할 때도 파생상품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할 근거를 마련해 놓는다. 이익을 챙기면 언제든지 떠나고, 입지가 불안하면 바로 후퇴한다.

좌파와 진보는 엄연히 개념이 다르다. 좌파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갈등을 기반으로 삼았다. 반면 진보주의는 계급이나 계층의 갈등을 중재하고, 적대감을 없애는 것을 추구했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진보 대통령으로 불리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나는 노동자 편이다 혹은 나는 자본가 편이다’같은 말이 정의라는 불변의 법칙을 밀어내고 있다. 누구든 자기가 노동자 혹은 자본가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노동자나 자본가 편을 들면 공화국(미국)의 중심은 아주 빠르게 파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보의 가치가 ‘화합과 통합, 미래를 향한 대안 모색’에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한국에서 진보(실상은 좌파)라고 자칭하는 지식인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염려와 달리 오늘도 분노를 부추기는 데 여념이 없다. 스위스의 반(反)자본주의자인 장 지글러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든지 최소한 자본주의에 분노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대체하게 될 사회경제체제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 하나의 확신이 있다. 개개인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그렇다. 우리는 진정한 혁명의 전야를 맞이하고 있으며, 나는 의식의 봉기를 믿는다.”라고 주장했다.

장 지글러의 책이 국내에 떡 하니 번역되어 나왔는데 한 사회학자는 “자본주의를 세련되게 가꾸는 수준이 아닌 ‘과격하게 파괴하자’는 그의 주장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쩔 수 없다’면서 눈앞의 불평등을 외면한 채, 무소불위의 사유재산 개념이 만들어 놓은 나쁜 덫에 갇혀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필독서다”라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장 지글러와 비슷하게 무책임한 주장을 펴는 좌파 지식인들은 책 출간, 일반 강연,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정의의 사도, 시대의 양심’으로 자리 잡고 젊은이들의 분노를 부추긴다. 그들에게 책값과 강연료를 내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한 진실이다.

‘젊은이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지갑이 홀쭉해질 때, 좌파지식인들은 자본가로 변신하고 통장이 두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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