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통영·고성 당선에 창원 성산 선전…정의당, 교섭단체 구성 변수로

4일 국회 최고위 회의에서 발언 중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좌)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우) 사진 / 오훈 기자
4일 국회 최고위 회의에서 발언 중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좌)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우)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2명의 국회의원과 3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4·3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통영·고성 지역 국회의원과 경북 문경시 기초의원 등에 당선되며 일찌감치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권 심판론’의 불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범여권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후보 단일화했던 정의당이 창원 성산에서 한국당 후보를 상대로 뒷심을 발휘한 끝에 당선되면서 결과적으로는 1대 1의 무승부를 이뤄냈기에 아직 어느 한 편이 꺾이기보다 이전 같은 팽팽한 대치 정국이 장기화될 거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 한국당 선전으로 힘 받는 황교안 체제와 정권 심판론

이번 선거의 백미인 창원 성산과 통영·고성은 당초 정의당과 한국당이 각각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다 보니 단지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두 지역 모두 기존 정당이 수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본전’을 찾은 정도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통영·고성에서 2위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큰 격차로 압도한 점이나 창원 성산에선 범여권이 단일화했음에도 한국당 후보에 504표차로 겨우 신승하는 등 그 과정 면면을 살펴봤을 경우 한국당이 선전했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투표율까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2000년 이후 치러진 재보궐 선거 중 2017년 4·12재보선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높은 51.2%를 기록해 한국당의 선전에 그 의미를 더했는데, 여기에 민주당은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기초의원 포함 단 한 곳에서조차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당과 더욱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물론 개표율 99.98% 시점에 돌연 역전돼 끝내 패배한 창원 성산 지역에서 가장 큰 표차가 발생한 곳은 창원축구센터가 있는 사파동이었단 점에 비추어 황교안 대표 등의 축구장 유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도 일부 있지만 상대적으로 한국당에 불리한 지역구에서 초박빙의 접전을 벌였다는 자체만으로도 한국당에선 황 대표 책임론보다는 ‘문 정부 심판론’ 쪽에 확실하게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여당을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했는데 황 대표는 3일 개표 방송 시청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지금 정부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한 것”이라며 “이 정부의 폭정을 막아내고 반드시 경제를 살려 탈원전 정책 등 잘못된 정책을 막아 미래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겠다”고 밝힌 데 이어 4일 최고위에서도 “5곳에서 벌어진 이번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한 사람의 당선자도 내지 못한 것은 이 정권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정책을 당장 수정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역설했다.

이 뿐 아니라 나경원 원내대표까지 3일 개표 방송 시청 직후 “창원 성산은 굉장히 어려운 지역으로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민심을 알게 된 선거”라고 자평한 데 이어 4일 최고위 회의에서도 “이번 재보선은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고 황 대표와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석패일지언정 그간 공들여왔던 창원 성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걸 의식했는지 황 대표는 4일 “‘한국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씀 많이 하셨다. 우리가 대안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더 큰 지지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얘기”라며 “국민들께서 우리에게 준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당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고 강조했고, 뒤이어 나 원내대표도 “국민들께선 한국당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낮고 겸손하게 전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다소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4일 4.3보궐선거를 "낮고 겸손하게 전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평했다. 사진 / 오훈 기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4일 4.3보궐선거를 "낮고 겸손하게 전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평했다. 사진 / 오훈 기자

심지어 59.47%의 득표율로 통영·고성에서 민주당 양문석 후보(39.6%)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친황파’ 정점식 후보조차 4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창원 성산 지역 패배에 대해선 “저희 당이 좀 부족했다고 평가하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국당이 더 나은 정치를 해야 된다”고 입장을 내놨다.

비록 내년 총선 전까지 1년 남짓한 임기에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두 곳에 불과했지만 한국당에 대한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의미가 깊은데, 내년 총선으로 ‘판 뒤집기’에 나서려는 한국당으로선 창원 성산 패배로 범여권을 지지하는 여론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을 일부 확인했다는 점에서 다소 신중해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확실하게 압도한 통영·고성 지역에서도 정점식 당선자 측 인사가 지난달 23일 돈 봉투로 기자를 매수하려고 시도했다는 녹취록이 선거를 이틀 앞두고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만큼 조심스러워 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데, 일단 정 당선자는 4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제가 매듭지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고 당사자께서 잘 대처할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 한국당 완승 저지에 안도하는 민주당…‘당선자 0’에 한편으론 착잡

이런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당선자를 하나도 내지 못한 민주당은 짐짓 불모지에서 분투했다든지 창원 성산 단일화를 강조하는 식으로 자평했는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창원 성산에서의 정의당 후보 당선에 대해 “이번 결과는 민주당과 정의당 공동의 승리”라고 주장했고 통영고성 지역에 대해선 “민주당의 불모지에 가까운 지역에서 큰 성과를 남겼다”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다.

마찬가지로 홍영표 원내대표도 자당이 유일하게 국회의원 후보를 낸 통영·고성과 관련해 4일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비록 이기지 못했지만 19대 총선의 두 배 가까운 득표율을 얻은 것은 성과”라고 밝혔지만 회의 뒤 기자들이 당선자를 전혀 내지 못한 데 대한 입장을 묻자 “할 얘기 없다”며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앞서 언급했듯 ‘기자 매수 의혹’ 등 선거 직전 한국당에 돌발 악재가 터졌고, 창원 성산과 달리 표심을 분산시킬 정도로 후보가 많이 출마한 것도 아닌데도 민주당 후보가 ‘큰 격차’로 패한데다 기초의원 선거마저 당선에 기대를 품을 만한 전북 전주 라 선거구(서신동)에서 민주평화당 후보에 패배하는 등 여러모로 민심의 경고를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창원 성산의 여영국 정의당 당선자는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통영·고성 선거에 대해 “(기자 매수) 의혹들도 제기됐어도 선거 결과에 영향 못 미쳤다. 작년 지방선거 때보다 경남 유권자들의 마음이 많이 돌아섰다”며 “집권여당은 물론이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후에 민심을 어떻게 잡아갈 건지 그 점을 뒤돌아보는 선거”라고 논평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당선자가 없는 점을 꼬집어 “몇 개월 전부터 북경노적사(북핵·경제·노동·적폐·사법) 쓰나미가 오고 있으며 문재인 저수지에 쥐구멍이 뚫렸다고 경고했다. 호남에서도 미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골프와 선거는 고개 쳐들면 그 순간 진다. 민주당은 승리를 낙관했고 오만했다”고 여당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에서 나온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진 / 오훈 기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에서 나온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진 / 오훈 기자

그래선지 홍 원내대표도 정책조정회의에서 “우리 당은 이번 선거에서 나온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고개를 숙였을 뿐 아니라 이해찬 대표도 ‘신문의 날’ 기념행사 참석 외엔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이번 보궐선거 책임최고위원을 맡았던 김해영 최고위원과 비공개 오찬회동을 하며 선거 결과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이 머지않았는데 이런 결과를 받게 돼 일부에선 최근 김의겸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이나 내정된 장관 후보자들 관련 문제점들, 이에 대응하는 국민소통수석의 태도 등 청와대발 악재가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며 청와대가 나서기보다 당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자칫 이번 선거가 당청 갈등을 촉발시키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이번 선거 결과 중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이라면 창원 성산에서 정의당 후보를 통해서라도 한국당의 완승만은 저지해냈다는 부분인데, 범여권 참패는 막아 정국 주도권이 한국당으로 완전 넘어가는 지경엔 이르지 않은데다 정의당 의원이 1명 늘어 이전처럼 평화당과 함께 제4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됐기에 범여권 성향의 교섭단체가 늘어난다는 데 있어선 개혁입법을 처리하려는 민주당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대 부푼 정의당, 평화당과 교섭단체 다시 이룰까

한편 기초의원까지 포함해 고작 5개 지역을 대상으로 치러진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씩 차지한 일부 소수정당들은 결과만으로도 한껏 들뜬 분위기인데, 故노회찬 전 의원의 뒤를 이어 창원 성산을 수성한 여영국 당선자는 4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편 가르기하고 좌파 정권이 어쩌니 하면서 이념정치, 색깔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특히 우리 창원 시민들의 우려가 컸던 게 아닌가”라며 “창원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선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교섭 단체를 구성해서 좀 민생개혁을 주도하고 정치 개혁을 주도하는 그런 역할을 가장 먼저 하고 싶다”고 제4교섭단체 추진 의사를 밝혔는데, 같은 당 김종대 의원도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평화당하고 즉시 교섭단체협상에 착수할 것이다. 일부 반대하는 의원이 있긴 있는데 지금 이 분위기에서 반대했다가는 아마 뼈도 못추리지 않을까”라고 공동교섭단체 복원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에 평화당 측에선 이날 김정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뼈도 못 추릴 것이라 발언한 것은 선을 넘은 것이다. 가까스로 이겼으면 자세를 낮춰야지 의기양양해서 될 일인가”라며 “공동교섭단체 구성문제에 대해 논의하려면 공식채널을 통하는 게 순서고 공동교섭단체에는 명분과 실리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가 필요한 것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일갈했으나 일단 정동영 평화당 대표가 이날 4·3선거 기자회견에서 “교섭단체 구성이 우선돼야 한다”며 오는 5일 의총을 통해 토론하겠다고 밝힌 만큼 성사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또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공동교섭단체 구성 시 우선 추진 사안과 관련해 “패스트트랙에 얹혀있는 게 선거법 개정뿐만 아니라 공수처법도 있고 사법제도 개혁도 있어 그동안 민주당이 혼자 버텨왔는데 이런 부분들이 속도를 붙일 수 있도록 저희가 응원해서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민주당에게 상당한 힘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를 치르고도 범여권 성향의 제4교섭단체까지 등판해 여야 간 대치는 한층 첨예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무승부로 끝난 선거와 달리 새로 열릴 4월 임시국회에선 쟁점 현안을 놓고 어느 쪽이 과연 승기를 잡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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