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기색 보이는 靑·與…“檢, 우리 쪽 인사에 더 엄정”

장관 재직 당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구속 갈림길에 선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만일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문재인 정부 출신 장관이 처음으로 구속되는 사례가 되는 것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 전체의 도덕성이 결정타를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로 인해 임기 후반기에 찾아오는 레임덕 현상을 크게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구속 영장 발부는 재판부가 해당 혐의를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검찰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청와대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걱정을 키운다. 그야말로 검찰의 칼날이 살아있는 권력인 청와대를 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청와대의 곤혹스러움도 클 수 밖에 없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살얼음판에 선 듯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환경부 블랙리스트…'前 정부 인사 사퇴 종용→현 정권 인사 앉히기'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이 지난1월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김수사관의 자택 압수수색 등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 오훈 기자]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인사를 ‘찍어내기’ 위해 표적 감사가 진행됐다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이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11월14일 비위 의혹을 받고 청와대 특감반에서 일하다 검찰로 복귀 조처된 뒤 “청와대 윗선에서 민간인 사찰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인걸 특감반장 지시로 특감반원들이 전국 330개 공공 기관장 및 감사 660명의 임기 및 정치 성향 등이 골자인 리스트를 작성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캠프 출신 혹은 친 야권 성향 인사 100여명을 먼저 추려 특별감찰을 했다고 밝힌바 있다.

환경부도 지난해 12월27일 이같은 내용의 ‘산하 기관장 동향 파악 문건’ 작성을 시인하기도 했다.

당초 환경부는 해당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 ‘보고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으로부터 1월 중순쯤 환경부 감사담당관실에 환경부 및 산하기관의 현재 동향을 파악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요청에 따라 대구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관련 직무감찰결과, 환경부출신 지방선거 출마예정자,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의 동향 등 3건의 자료를 정보제공차원에서 윗선에 보고 없이 1월18일 김태우 수사관이 환경부 방문시 제공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산하기관 임원 사퇴 동향 등이 장·차관님까지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청와대는 “조국 민정수석, 4명의 민정수석실 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까지 누구도 이 자료를 보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면서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1월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삭제된 ‘장관 보고용 폴더’를 발견 ‘산하기관 임원 조치 사항’ 문건을 찾아냈다. 해당 문건은 사표를 거부하는 산하기관 임원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등을 감사해 표적감사를 벌인다는 내용의 문건이다.

더욱이 검찰이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의 사표 제출 여부를 보고받은 정황이 담긴 문건을 확보하면서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환경부가 조율을 통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김 전 장관은 환경부 산하 환경공단의 채용 특혜 개입 혐의를 받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15일 검찰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채용에서 특혜를 받고 합격한 다수의 현직 임원들이 채용 공모 전 청와대가 내정한 지원자라는 사실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지원자의 이름 등에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임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특정 표식 등이 적혀 있었고 김 전 장관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환경부와 산하기관 관계자들은 내정자에게 면접질문, 모범답안을 미리 전달하고 서류심사에서도 다른 지원자보다 높은 점수를 준 정황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검찰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환경 특보로 활동한 유성찬 전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의 상임감사 임명 과정과 환경공단 노무현 정부 비서관 출신의 장준영 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등도 이와 유사한 특혜를 받은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 상임감사의 임명 과정에서는 청와대가 염두에 둔 인사가 떨어지자 환경부가 서류합격자 7명 전원을 불분명한 이유로 탈락, 재공모를 통해 유 상임감사를 임명 시켰다. 석연치 않은 점은 조선일보에 따르면 1차 공모에서 서류 심사 1등을 한 지원자가 2차 공모 때도 탈락했다.

김 전 장관은 2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청와대로부터 산하 기관 인사 관련 요청을 받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만 김 전 장관은 “최선을 다해 설명 드리고 재판부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했다.

◆불편한 기색 靑·與

문재인 대통령./ⓒ뉴시스

청와대는 이날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를 나온 자연인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청와대가 해당 사건에 대해 불편해 한다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윤 전 수석은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검찰은 과거에는 왜 권력기관을 동원한 노골적인 임기제 공무원 축출이 불법이 아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배경을 지닌 수사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윤 전 수석은 “만일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면 간섭하지 않고 자율권을 주는 정권에게 검찰이 더 가혹한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국무회의 석상에서 ‘앞으로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가 많을 텐데 새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며 “경찰청장 교체에 이어 법률도 아니고 헌법에 임기가 명시된 감사원장도 국정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곧 옷을 벗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 시절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2008년 3월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국정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는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들은 정권을 교체시킨 국민의 뜻을 받들어 그 자리에서 사퇴하는 것이 옳다.’(국회 주요당직자 회의)고 했고 같은 시기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 전 수석은 “정연주 KBS 사장 퇴출때는 감사원 뿐만 아니라 배임죄 명목으로 검찰 수사까지 동원됐다. (정 전 사장은 결국 무죄를 받는다). 사퇴를 거부한 일부 공공기관장은 차량 네비게이션까지 뒤졌다”며 “이 시기에 정권의 ‘전 정권 인사 몰아내기’를 ‘직권 남용’으로 수사하겠다는 검찰발 뉴스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때는 왜 검찰이 그냥 넘어갔을까”라며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을지라도 공공기관장의 임면권은 대통령과 장관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윤 전 수석은 “적어도 대통령과 장관의 인사권이 공공기관장의 임기라는 법리적 잣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과거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에서 임기중 사퇴한 공공기관장은 소수에 불과한데도 갑자기 기준이 바뀌어 비판이나 논란의 대상을 넘어 법리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적법한 감독권 행사’이자 인사권 행사를 위한 통상적 업무의 일환이라는 청와대 주장과 맥이 같다.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22일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즉 과거 정부에서 이어진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청와대의 입장과 맥을 같이 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대통령과 장관의 인사권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일축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환경부 문건을 합법적 체크리스트라고 보는 것은 아직도 유효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보고 이야기하겠다”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이날 “박근혜 정권이 산하기관장을 교체하기 위해서 압력을 넣은 건 원래 늘 있었고 우리는 그걸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며 “법적인 잣대로 보면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그동안 관례를 보면 박근혜·이명박 정권 때 웬만한 장관 다 걸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 의원은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임기 다 찬 사람 임기 더 연장하지 말라고 한 게 무슨 불이익을 준 것인가. 그리고 사실 정권 바뀌면 알아서 전 정권하에서 임명돼서 충성을 다 했던 사람들이 알아서 그만두는게 도리”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공수처에 대한 불만 혹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불만인가’라는 진행자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구속영장까지 청구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김경수 경남지사 같은 사람 그냥 법정구속 시키고, 김은경 전 장관한테 구속영장 청구하고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이 법을 다루는 분들이 엄정한 건 좋은데 특히 우리 쪽 인사들에 대해서 더 엄정하신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서도 “몇 개월 전까지 장관 하시던 분을 도주의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조금 저는 과한 게 아닌가 싶다”며 “김학의처럼 공항에서 튀려다 잡혔다고 하면 이해하는데 김학의 씨는 구속영장 청구 안 하고 왜 김은경 같은 분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반부패의 기준은 국민 눈높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18일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이 용납하지 않으면 그동안 관행으로 여겼던 것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제2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반부패의 기준은 국민 눈높이”라며 “제도와 관행의 혁신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 인식과 행동의 기준을 만들어 사회 각 분야에 뿌리내리는 것이 적폐청산이고 반부패 개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20일 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사립유치원 비리파동 등과 관련 “국민 눈높이는 높아졌는데도 과거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눈 감고 있었던 게 아닌지도 반성해야 한다”며 “공공부문과 공적 영역, 재정보조금이 지원되는 분야의 부정 부패부터 먼저 없애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행과의 이별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였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 인식과 행동의 기준을 만들어 사회 각 분야에 뿌리내리는 것이 적폐청산이고 반부패 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청와대가 '춘풍추상(春風秋霜·남에게는 관대하되 자신에게는 엄하게 대한다)'을 말만 아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할 때로 보여진다.

한편,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발부여부는 이르면 이날 늦은 밤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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