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일관된 시각 ‘불편한 과거 청산’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이후 국론분열이 온 것처럼 다시 과거를 헤집으며 좌익 활동을 하고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반대한 분까지 (독립유공자에) 포함하는 건 다시 분란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5일 의원총회에서 한 발언-

“북핵 위기가 가시화되고, 민생이 파탄 나는 가운데 동남아 순방을 다녀와 첫 일정이 결국 야당 대표 죽이기로 가는 그러한 검·경 수사에 대한 지시라니. 국민들이 아연할 따름이다. 잘못된 부분, 궁금한 부분은 밝혀야 되지만 지금 민생파탄, 북핵 문제로 어려워진 안보파탄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해야 될 일인지 묻고 싶다. 이러한 수사는 검찰과 경찰에 맡기는 것이 맞지 않나”-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버닝썬·장자연·김학의 사건의 진실규명 지시에 대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비판하고 있다-

보수정당 첫 여성 원내사령탑이 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100일 동안 논란이 된 발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위의 발언들을 따로 떼어서만 보자. 반민특위 폄하 발언으로 ‘나베’(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경원 원내대표 이름의 합성어)라고 조롱받지만 일각에서는 나 원내대표가 ‘극우세력 결집’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를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민적 의혹이 일고 있는 버닝썬·장자연·김학의 사건의 진실규명을 지시한 것에 대해 나 원내대표가 ‘정치보복’, ‘야당 대표 죽이기’라고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도 자당 대표와 의원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해당 발언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나 원내대표는 ‘일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과거를 헤집는다는 것이 자해’라는 시각이다.

버닝썬·장자연·김학의 사건 모두 사회 고위층의 성범죄 의혹·마약·폭력·권력기관 유착 등 부정부패가 총체적으로 결합한 문제다. 여야가 각기 다른 셈법으로 해당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문 대통령이 세 사건 모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이 행사되는 구조 ▲특권층과 공권력의 유착 구조를 바꾸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가치를 세우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지시를 ‘적폐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의 경우 김 전 차관의 당시 직속 상관이던 황교안 대표와 인사 검증을 맡은 민정수석인 곽상도 의원이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해당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할 때마다 한국당이 아플 수 밖에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렇기에 ‘적폐청산 프레임’, ‘안보위기’, ‘민생문제’를 끄집어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학의·장자연 사건 수사에 독립적 특별검사 도입에 대해서도 찬성 여론이 10명 중 7명을 상회하는 조사도 나오기도 했다. 국민 전반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발언은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법·질서 위반 행위는 법치주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자유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보수정당이라면 해당 사건을 ‘야당 대표 죽이기’로만 보아서는 안되지 않을까.

반민특위 문제도 같은 문제다. 반민특위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다. 그러나 반민특위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는 등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특위는 좌초됐다.

문제는 한국당은 이승만 정권이 아닌 반민특위를 지적한다. 한국당이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정부 국정과제 1호인 ‘적폐청산’을 ‘과거를 헤집는 일’, ‘국민 분열’로 보고 있기에 ‘친일파 청산’도 ‘국민 분열’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계는 19일 나 원내대표를 향해 “반민특위가 좌초되고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무산된 것을 국민 대다수는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친일 부역자들이 오래도록 권력자로 군림하며 우리 사회를 민주적 공동체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욕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하는 자가 속한 나라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반민특위를 부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 했다.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더 국민을 분열하는 길이지 않을까. 한국당이 ‘적폐청산’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역사적인 문제에서도 사회적인 문제에서도 국민 분열이 이뤄질까 우려스럽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