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 이어 평화당도 ‘내부 이견’…한국당, ‘패스트트랙 저지’ 총공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종언을 상징하고자 검은 색 정장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채 여야4당의 선거법 패스트트랙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종언을 상징하고자 검은 색 정장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채 여야4당의 선거법 패스트트랙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추진해 온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이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안 제출 법정시한인 15일까지도 일부 당내 이견이 정리되지 못하면서 당초 약속했던 바와 달리 성사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최근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당을 압박할 만한 몇 안 되는 수단일 ‘선거법 패스트트랙 공조’마저 차질이 빚어지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속내는 점점 초조해지는 데 반해 한국당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공조체제 흔들기’에 한층 열을 올리고 있어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제 개혁안 처리 문제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한 지붕 두 가족’ 바른미래, 선거법 공조도 ‘균열’ 시발점 돼

패스트트랙 추진과 관련한 심상치 않은 이상기류는 이미 지난 12일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먼저 감지됐었는데, 당시 구 바른정당 출신 정병국 의원은 민주당 주도로 선거제 개혁안과 각종 개혁 법안을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데 대해 “지금 정부여당이 내놓은 선거제 개편안을 보면 반쪽짜리 연동형비례대표제”라며 “우리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쟁취하는 것이 목표지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특히 정 의원은 “선거 직전에 자기 지역 선거구가 줄어드는데 거기 동의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여타 법과 연계해서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은 받아선 안 된다”며 “누더기형 선거제도를 쟁취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당이 이렇게 싸워왔는가. 소수정당으로서 한계는 있지만 바른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바른미래당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손학규 대표조차 이 자리에서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면서 이것저것 가져다 한꺼번에 얹혀놓는 것은 잘못됐다. 국회에서 여러모로 어려우니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것인데 이러면 의도를 왜곡하게 된다”며 비록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개혁입법 처리를 최대한 연계하려는 여당 태도에 반감을 드러내 사실상 공조 균열을 예고했다.

급기야 하루 뒤인 13일엔 이언주 의원이 자신의 SNS에 “패스트트랙은 다른 말로 날치기”라고 반대의 뜻을 밝힌 데 이어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해서조차 “대통령 권한은 막강하고 폭주하는데, 당이 여러 개면 제1야당 외 나머지는 예산 등 현실적 이유로 여당의 이중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의원은 15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선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이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우선 우리 당에선 합의한 적이 없고 원내대표가 일방적으로 합의했는지 모르겠는데 당내에서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지금 민주당에서 패스트트랙 통해 연동형 비례제 하겠다고 얘기는 하지만 결국엔 다른 법들을 통과시키기 위한 꼼수”라고 같은 당 김 원내대표에게까지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반대 의견을 내는 의원들로 인해 지난 14일 저녁 9시 열렸던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선 4시간 가까이 진행된 격론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는데, 소속의원 29명 중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 권은희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정병국·김동철·이혜훈·유의동·하태경·지상욱 의원 등 총 20명이 참석한 이날 의총 직후 김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에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있었다”며 확연히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김 원내대표는 “지금 상태에선 패스트트랙이 불가피하다”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는데, 패스트트랙이 추인되지 않을 경우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수도 있다는 배수진마저 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그러면서도 그는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 방안을 담보하는 우리당의 요구내용을 전달해 그 부분이 관철되지 않으면 더 이상 패스트트랙 자체도 진행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고 부연한 데 이어 15일 최고위 회의 직후엔 “어제 의총에서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고정시켜 놓는 한 100% 연동형은 불가능하다는 것에 공감해 비례성을 제대로 보장할 방법이 뭔지 협상할 것”이라며 “오늘은 처리되기 어렵고 협상이 제대로 안 돼 의견 일치가 안 되면 지연될 수도, 깨질 수도 있다”고 불발 가능성도 열어뒀다.

◆ 바른미래 ‘균열’ 부추기는 한국당, 승기 또 잡을까

이렇듯 바른미래당 내 상황이 다소 달라져버린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한국당은 호재를 잡은 듯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안 처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더욱 굳히는 것은 물론 ‘패스트트랙 공조’를 깨는 데 당력을 집중시켰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은 의회 민주주의의 부정이자 좌파 장기집권 공고화 플랜의 일환”이라며 “바른미래당이 좌파 장기집권플랜의 조력자가 된다면 앞으로 정체성을 범여권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나 원내대표는 ‘선거제 패스트트랙’ 마지노선으로 꼽힌 15일엔 단체로 상복(검정색 드레스코드)까지 맞춰 입은 채 개최한 의원총회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용기를 내줄 것을 촉구한다.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에 동참하는 것은 야당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에 들러리 서는 것”이라며 “선거법은 2중대 정당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바른미래당에서 보면 별로 얻을 게 없다. 완전 연동형 비례제에서 후퇴하겠다는 건데 바른미래당의 양심 있는 의원들을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인 데 이어 아예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위한 박수까지 유도했다.

이미 지난 13일 실질적 패스트트랙 처리시한인 15일까지 비상 각오로 함께 해야 한다고 예고했던 만큼 비단 나 원내대표 뿐 아니라 한국당 소속의원 전원이 한 목소리로 ‘패스트트랙 저지’에 힘을 모았는데,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바른미래당을 향해 “왜 (선거법과 다른 법안들을) 묶어서 패스트트랙 하는지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개헌선 이상 의석을 확보해 한국당을 지역적으로는 TK로 묶고, 정치지형적으론 극우로 몰아서 자신들이 좌파 영구 집권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역설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장제원 의원도 같은 날 “선거제 논의에서 제1야당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작당 모의하는 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밀매조직들의 국회 찬탈행위”라며 “민주당은 오로지 대통령의 하명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3당에게 패스트트랙이라는 탐욕적 미끼를 던졌고 야3당은 생존을 위해 그 미끼를 덥썩 물려고 한다. 민주당은 야3당에게 던진 썩은 고깃덩어리를 치워라”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수위 높은 발언에 비해 한국당 의총 분위기는 절박하다기보다 최근의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상당히 고무된 상황이었는데, 이런 기류를 보여주듯 나 원내대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패스트트랙을) 막겠다”면서도 “민주당이 지금 총체적으로 위기 상황”이라며 패스트트랙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국회 보이콧은 하지 않겠다고 이전과 달리 여유를 보인 데 이어 의총 직후에도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대화와 압박 수단을 모두 쓰겠다. 김관영 원내대표와도 계속 접촉하고 있다”면서 바른미래당 흔들기에 적극 나설 의지를 보였다.

그렇지만 바른미래당이 이 시점에 무작정 한국당의 러브콜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를 줄곧 주장해온 바른미래당이 먼저 대열에서 이탈하는 모양새를 띠게 되면 향후 다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기 위한 정치권의 공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워지는데다 설령 패스트트랙에 반대하기로 선회하고 한국당과 연대한다고 한들 ‘패스트트랙 무산’ 결단을 내린 건 바른미래당일지언정 표면상으론 ‘한국당의 유도’에 따른 모양새로 비쳐져 한국당 지지율 상승으로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손 대표도 패스트트랙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한국당의 반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면서 소속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있는 실정인데, 반대 입장을 고수 중인 일부 의원들의 뜻이 확고하다 보니 180석을 넘겨야 가능한 패스트트랙이 추진되기는 결국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늘어가고 있다.

◆ 바른미래에 이어 평화당까지 ‘삐끗’?…물 건너가는 패스트트랙

민주평화당에선 유성엽 최고위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오훈 기자
민주평화당에선 유성엽 최고위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렇게 패스트트랙 문제로 바른미래당에 다시금 내홍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선거제 개혁안에 공조해온 또 다른 한 축인 민주평화당에서마저 불협화음이 새어나와 시한 내 처리는 차치하고 이젠 단일안 도출 가능성마저 확언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상임고문·전국상설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유성엽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의원정수를 300석으로 유지해 선거제 개편을 하자는 것은 안하자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이) 225대 75로 갔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전북은 최대 3석, 최소 2석이 줄어드는데 아무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지역구 의석을 2~3석까지 줄이면서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여기에 같은 당 조배숙 의원까지 “패스트트랙을, 그것도 민주당 안으로 추진할 경우 호남 지역구가 줄어들게 된다. 집권여당의 횡포”라며 유 최고위원에 힘을 실었는데, 결국 이날 회의 직후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농촌 지역구가 날아가는 선거제 개혁 합의안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안이 최종안이 아니란 전제에서 접근한다”며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고 연동형을 도입하면서 의석 수 증가를 최소화하기로 당론을 정했다고 결과를 전했다.

일단 패스트트랙을 우선하진 않기로 평화당까지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그간 여러 법안을 함께 처리하려던 민주당의 속은 한층 타들어갈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날 한국당은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수를 270명으로 줄이겠다던 나 원내대표의 주장을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으로 당론 발의해 ‘선거법 정국’ 전망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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