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찬 한국당, 강경일변도 고수…민주당의 국회 윤리위 제소에도 맞불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자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자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그동안 국회 보이콧을 감수하면서 요구해온 손혜원 의혹 국정조사 등이 끝내 여당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4일 “저희 스스로 결단을 내려 국회를 열기로 했다”며 돌연 국회 유턴 결정을 내렸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작심한 바 있었던 듯 3월 국회가 열리자마자 공세수위를 연일 높이며 여당을 몰아붙이고 있다.

과거 여당 의원 시절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발언까지 주저 없이 쏟아내면서 일각에선 ‘나다르크’로 변신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런 나 원내대표의 강공이 한국당의 국회 복귀와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 추진 등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은 줄 알았던 민주당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강성’ 변모된 羅, 선거제엔 ‘비례 폐지’ 맞불…연설선 文 직격

부담이 큰 국회 보이콧을 지속하기보단 원내 투쟁으로 선회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일까. 국회로 복귀한 한국당의 공세수위가 도리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고 과감해지면서 이를 예상치 못했는지 여당의 대응조차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심상치 않은 징후는 이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한국당에 자체 선거제 개편안을 내놓을 마지노선으로 꼽았던 지난 10일 나타났었는데,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처리 가능성을 내비치며 한국당을 압박하던 상황이었음에도 정작 나 원내대표는 이날 비례대표제 폐지와 의원정수 10% 감축이란 역제안을 던지면서 판을 깨버리는 카드를 던졌다.

아직 한국당 지지율이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처음 30%선을 돌파했다는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YTN 의뢰로 전국 성인 2518명에 4~8일 실시, 95% 신뢰수준±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가 발표되기 전이었음에도 자신 있게 ‘정면 돌파’를 택한 셈인데, 당시 미세먼지 사태 등 여러모로 현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던 상황이었고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여론이 부정적이란 점에 힘입어 이 같은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전당대회 내내 ‘5·18 폄훼’ 지적이나 우경화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오히려 보수우파 결집의 계기로 작용했는지 황교안 신임 대표 선출 이후론 5·18 폄훼 의원들에 대한 징계 문제를 놓고도 지난 6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노골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느냐”는 발언이 일부 나왔을 만큼 이전과는 사뭇 온도차가 느껴졌다.

앞서 자당에 불리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엔 아예 비례대표 폐지와 의원정수 감축이 민심이라며 맞불을 놨던 나 원내대표는 12일 한국당 차례인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한 발 더 나아가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이다. 헌정농단 경제정책”, “먹튀·막장 정권”, “좌파 포로정권”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현 정권에 직격탄을 날렸고 급기야 여당 의원들이 단상까지 올라와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중도에 저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민주당으로부터 가장 큰 반발을 산 부분은 지난해 9월 26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사가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었던 점을 꼬집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던 발언이었는데, 민주당은 즉각 긴급 의원총회까지 열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으나 한국당에선 전혀 물러서는 바 없이 황교안 신임 대표부터 소속 의원들 모두 나 원내대표를 극찬하면서 거꾸로 연설을 중단시킨 민주당의 태도를 성토했다.

◆ 한국당, 민심은 우리 편? ‘野 시절 민주당’식 공세로 맞대응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나경원 원내대표를 겨냥했으나 전날보단 한층 발언수위가 낮아진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오훈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나경원 원내대표를 겨냥했으나 전날보단 한층 발언수위가 낮아진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오훈 기자

여기에 당사자인 나 원내대표까지 13일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여당이 저의 연설에 대해 역대 최악으로 평가했지만 국민들은 역대 최고로 속 시원했다고 말씀해주신다”고 자평하면서 “국민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야당 원내대표 제소는 바로 국민을 제소하는 것이고 구가원수 모독이란 말 자체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당의 속을 더욱 긁어놨다.

심지어 이런 대여 강경일변도 전략은 공격대상을 그간 한국당의 약점이었던 계파 내홍을 불식시키는 부수효과까지 끌어낸 듯 비쳐지고 있는데, 비박계 장제원 의원이 12일 KBS ‘사사건건’에 나와 “민주당의 야유와 소란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응한 원내대표의 원숙함이 돋보인 연설이었다. 민주당이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야당의 어떤 비판이라도 당시엔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민주당을 질타했으며 친박계 홍문종 의원도 13일 중진회의에서 “여당이 북한 만나더니 닮아간다. 어제 본회의장은 북한에서 존엄 모시는 모습”이라고 여당에 포문을 집중시켰다.

이 뿐 아니라 한국당이 과거 민주당의 야당 시절 했었던 대여 공세를 그대로 되돌려주면서 여당이 대응하기 한층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중단시키려고 했던 점이나 즉각 긴급 의총을 열고 ‘국가원수모독’을 거론하며 국회 윤리위 제소 등 초강경 기조로 대응한 부분은 민주당의 야당 시절과 비교했을 때 ‘내로남불’이란 지적까지 받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장제원 의원은 12일 KBS ‘사사건건’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야당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귀태라 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명박박명이라고 했다. 그런 저주의 단어들을 쓴 게 민주당”이라고 지적했으며 황교안 대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국가원수모독죄’라고 질타한 데 대해 13일 의총에서 “30년 전에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를 통해 시계바늘을 먼 과거로 돌리려 한다. 국회가 과거 독재 시절로 회귀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놀랐다”고 역공을 가했다.

무엇보다 ‘국가원수모독죄’를 언급한 이 대표가 정작 이 법이 폐지되던 31년 전 13대 국회 당시 ‘폐지 찬성’ 쪽에 표를 줬다는 전력이 있다는 점도 모순으로 비쳐져 민주당이 대응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형세가 되어버렸는데, 일례로 표창원 민주당 의원의 경우 13일 나 원내대표를 향해 “해당 발언은 국회법상 의원 품위 규정에도 반한다. 저질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고 일갈했다가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으로부터 “의원회관에서 (박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누드전시회 열었으면서 저질 운운하니 민망할 노릇”이라고 부메랑을 맞았다.

그러다 보니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13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전략, 황교안 체제 출범 이후 자신들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도 있다”며 “민주당이 항의하면서도 연설은 들었더라면 (한국당이) 국민과 언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었는데 오히려 세련되지 못하게 과민반응을 해서 나 원내대표를 용으로 만들어주고 양비론을 불렀다”고 현 상황을 꼬집었다.

그래선지 이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전날의 격앙된 반응과 달리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중심을 잡고 의연하게 나아가겠다”며 “발언 기조를 보면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아주 극단적 발언을 하는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정권을 놓친 뒤 거의 자포자기하는 발언”이라고 대응방식을 일부 바꾼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당이 거꾸로 민주당에 역이용하고 있는 ‘독재·야당 탄압’ 프레임을, 전당대회 내내 한국당을 압박했었던 ‘극우 프레임’으로 뒤덮겠다는 전략인데, 이 대표와 다르게 강경 발언을 이어간 설훈 최고위원조차 “태극기 집단이 써준 연설문 아닌가”라며 “나 원내대표를 사퇴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민주당은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예고한 대로 이날 국회 의안과를 찾아 나 원내대표 징계안을 제출했는데, 이 자리에서도 민주당에선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태극기 부대에 바치는 극우적 망언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한국당에서도 이에 질세라 같은 날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한선교 사무총장이 “제1야당 대표의 연설을 제일 먼저 방해하기 시작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를 국회 윤리위에 제소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오전 중 민주당이 끝내 나 원내대표를 제소하자 한국당에서도 오후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홍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제소하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 ‘캐스팅 보트’ 바른미래당도 흔들…여야4당 공조 균열 가나

1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자인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우)가 본회의장에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좌)와 대화를 나누며 악수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1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자인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우)가 본회의장에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좌)와 대화를 나누며 악수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이렇듯 원내 1, 2당 원내대표가 모두 국회 윤리위에 제소되는 초유의 사태로 치달으면서 자칫 국회 공전 사태마저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제3 원내교섭단체인 바른미래당은 이를 자당이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로 삼았는데, 손학규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거대 양당은 국민들에게 막말과 고성, 몸싸움으로 얼룩진 구태 정치를 보여줬다”며 양비론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같은 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양당을 모두 비판하는 한편 자당이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력해 그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던 ‘한 자릿수 지지율’을 극복하고자 했는데, 문제는 바른미래당 내부조차 불협화음이 여전하다는 데에 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하락세와 반대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당이 연일 자신감에 차서 강공을 펴다 보니 정부여당으로선 일단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야당들과의 연대가 한층 중요해졌는데, 그런 일환에서 청와대는 바른미래당에서 내놨던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구성’ 제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화답했지만 바른미래당에선 여당과 추진키로 뜻을 모은 ‘선거법 개혁-개혁입법’ 패스트트랙을 놓고도 당내에서 점점 엇갈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바른정당 출신인 정병국 의원은 12일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다른 민생법안과 연계해 선거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올리는 것을 당이 받아들여선 안 된다. 선거제 패스트트랙은 정부여당의 술수”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원칙을 견지하는 게 우리 당의 기본 노선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13일 같은 당 이언주 의원도 SNS를 통해 “패스트트랙은 다른 말로 날치인데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선거법을 그렇게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여당과의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어떤 사안이든 패스트트랙으로 올리려면 우선 국회의원 180명이 동의해야 하는 만큼 여야 4당 중 누구 하나 빠짐없이 한 목소리로 결집해야만 가능한 상황에서 벌써 바른미래당 내 균열이 일고 있다는 것은 여당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외에도 19~22일 이뤄지는 대정부질문과 21일부터 시작되는 인사청문회 등 야당이 공세의 장으로 활용할 만한 의사 일정까지 계속 이어지다 보니 한국당과 반대로 민주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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