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 ‘패스트 트랙’ vs 한국당 ‘의원직 사퇴’ 배수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회의장-원내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문희상 의장과 원내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바른미래당 김관영,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방 일정으로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 이들은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처리와 관련해 신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데 모두 공감대를 형성했다. ⓒ뉴시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회의장-원내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문희상 의장과 원내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바른미래당 김관영,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방 일정으로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 이들은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처리와 관련해 신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데 모두 공감대를 형성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국회가 정상화 되자마자 이번엔 선거제 개혁 문제를 놓고 자유한국당과 그 외 정당들의 의견이 완전히 갈라지면서 언제 다시 파행을 빚을지 모를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군소야당들은 일찍이 거대 양당을 향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를 개편하자고 촉구해왔지만 그나마 먼저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고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배분하는 방안을 내놓았을 뿐 아예 한국당은 비례대표 폐지는 물론 의원정수도 줄이자고 주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는 실정이다.

◆ ‘판 깨는’ 한국당의 선거제 개편안, 與野 4당 결집 불러와

앞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선거제 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있던 한국당을 향해 10일까지 마련해 제출하라고 최후 통첩한 바 있는데, 이 같은 압박에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10일 긴급회의를 가진 뒤 “내각제 개헌 없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찬성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뒤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폐지하고 내손으로 뽑을 수 있는 국회의원을 10% 줄이는 270석을 제안한다”고 도리어 의원정수 감축안으로 맞받아쳤다.

현재 여야 4당이 비례성 강화 쪽에 방점을 두고 이미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안 등을 논의 중인 상황에서 한국당이 비례대표제를 폐지해버리자고 역제안하는 건 사실상 절대 타협할 여지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결국 민주당과 군소야당 등 여야 4당 역시 한국당과 협의하기보다 이제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올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한국당에 선거제 개편안을 제출하도록 촉구해온 심 위원장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선거제도 개혁에 어깃장을 놓기 위한 청개구리 안이다. 오히려 패스트트랙을 빨리 하라고 등 떠미는 안”이라며 “비례대표제는 헌법 41조3항에 명시된 입법명령 조항인데 율사 출신이 헌법도 잊어버렸나”라고 나 원내대표를 거세게 비판했다.

특히 심 위원장은 “작년 12월 말 5당 원내대표 합의 첫 번째 조항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는데 합의 시한도 어겼지만 합의 내용을 정면 부정한 것”이라며 “이번 주말이나 늦어도 다음 주초까지는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다”고 밝혀 이젠 한국당 설득보다 패스트트랙 처리 쪽에 확실히 무게를 실었다.

마찬가지로 같은 날 바른미래당에서도 손학규 대표가 최고위 모두발언 중 한국당에서 제안한 선거제 개혁안을 꼬집어 “약속 파기 행위를 덮으려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강한 유감”이라며 “한국당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정한 이상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제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평화당에서도 정동영 대표가 한국당의 제안에 대해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에 역행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주권을 축소하겠다는, 사표를 최대한 늘리겠다는 역주행”이라고 질타했으며 정의당까지 이날 이정미 대표가 “나 원내대표 스스로가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한 장본인이면서 자신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 국민에게 필요한 전문인들의 정치 진입을 봉쇄하자는 것은 무슨 심보냐”라면서 “오늘부터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국회의원들이 논의에 착수한다. 패스트트랙 열차는 이번 주 안에 출발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야권이 선거제 개혁을 계기로 한국당과 기타 정당으로 양분되면서 이를 호재 삼은 여당은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초반과 달리 이제는 적극적으로 선거제 개혁에 동참할 뜻을 피력하는 상황인데, 이를 보여주듯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교섭단체 원내대표 연설에서 “민주당은 지난 20년 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왔다. 지역주의를 해결하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라며 “선거제 개혁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20대 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그래선지 처음엔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데에는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는 식으로 질책하던 일부 야당들도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던 민주당의 ‘지역구 225석과 비례대표 75석’ 선거제 개혁안까지 이제는 75석의 비례대표 배분에 대해서만 온건한 연동형으로 하는 정도로 조정한 채 수용할 만큼 전향적 태도로 전환했으며 여야 4당의 논의는 급물살을 타 오는 12일까지 패스트트랙에 올릴 안건을 확정키로 뜻을 모았다.

◆ 초읽기 들어간 ‘패스트트랙’…한국당, 총사퇴 가능성은?

현 대통령제 하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모습. ⓒ시사포커스DB
현 대통령제 하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모습. ⓒ시사포커스DB

소위 ‘패스트트랙’은 국회의 신속처리안건 지정 절차로, 특정안건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면 최장 330일 뒤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돼 별 논의 과정 없이도 입법화 할 수 있는 일종의 ‘우회로’인데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운 쟁점 법안이 국회에서 장기 표류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신속처리안건 지정은 전체 재적 의원 또는 상임위원회 재적 위원 과반수가 요구하면 이를 국회의장 또는 상임위원장이 무기명 투표에 부쳐 재적 의원 또는 상임위 재적 5분의 3 이상(180명)이 찬성했을 때 가능한데, 113석인 한국당을 제외해도 여야 4당끼리 처리가 가능한 만큼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한국당은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강수까지 두며 맞서는 상황이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이 길게는 330일이나 걸리는 관계로 21대 총선을 개정된 선거법으로 치르기 위해선 내년 2월까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하기 때문에 이달 15일까지는 패스트트랙으로 올려야 하는 만큼 당장 갈 길 바쁜 이들은 한국당의 ‘총사퇴’ 엄포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그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도만 “자칫 좌파독재 척결이란 이념적 프레임을 걸고 국회 문을 닫은 채 거리로 몰려나가려고 할지도 모른다. 선거법 패스트트랙 반대 투쟁을 전당대회 후 잔존한 당내 분란을 분산시키기 위한 정치투쟁 수단으로 이용하려 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일부 우려를 표했을 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한국당이 의원직 사퇴한다는 협박에 겁먹을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응수했고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마저 “지금까지 의원직 총사퇴 이야기를 해놓고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면서 한국당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가 절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여전히 의원직 총사퇴 가능성을 열어둔 채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데, 나 원내대표는 이날도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패스트트랙 강행은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제1야당을 말살하는 시도”라며 “어렵게 3월 국회를 열었는데 여당이 민생법안은 도외시하고 도저히 우리 당이 받을 수 없는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자는 것은 국회를 열지 말자는 뜻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 한국당, 배수진 치고 반대하는 이유는?…지지율 상승, 자신감 배경 됐나

3월 1주차 정당 지지도 집계 결과 ⓒ리얼미터
3월 1주차 정당 지지도 집계 결과 ⓒ리얼미터

이렇듯 극렬하게 각을 세우는 이유와 관련해 표면상 나 원내대표는 여야 4당이 추진 중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에 위헌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1년 1인1투표 제도를 통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 배분 방식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점을 근거로 “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국회의원 득표율까지 다 합쳐 받은 득표율로 의석을 나누자는 건 지역구 선거제를 무력화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향으로 선거제를 개편할 경우 한국당 의석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단지 위헌 여지가 있어 반대 중이란 나 원내대표의 주장보다는 한층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5년 내놓은 ‘지역구 200석, 비례 100석으로 개편-권역별 비례대표제’ 권고안과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득표율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할 경우 한국당은 122석에서 105석으로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지적에 대해 한국당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 늘리고 국회의원 늘려서 선거 전략적으로 자기 정파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려는 특정정파의 무리한 주장”이라고 그대로 역공을 펴고 있는데, 정유섭 한국당 의원은 11일 “연동형 비례제는 특정 정파가 국민의 이익이 아닌 자기들 이익을 위해 들고 나온 제도”라며 “비례 선정과정이 정당지도부의 밀실공천, 낙하산, 연줄편법으로 이뤄져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들이 직접 뽑지 않는 비례대표를 확대한다면 기성정당 정치계급의 특권만 늘려주는 결과”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비판에도 바른미래당에선 “우리는 비례대표 의원을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있는 제도를 강구해 우려를 불식시킬 것”이라고 반박하는 등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겠다는 다른 정당들의 의지를 꺾진 못하고 있는데, 타협 여지없이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만큼 결국 민심의 향배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선 각 정당 지지율 변화가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상황인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4~8일 전국 성인 2518명 대상으로 조사해 11일 공개한 3월 1주차 정당 지지도 집계 결과(95%신뢰수준±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한국당은 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끝에 30.4%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약 2년 5개월 만에 30%선을 처음 회복한 데 반해 민주당은 2주 연속 하락하면서 37.2%에 그쳤으며 바른미래당과 평화당도 모두 전주보다 내림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고무됐는지 한국당에선 황교안 대표부터 “국민들께서 이 정부 폭정에 대해 심판을 시작했다. 한국당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시단 반증 아닐까”라고 호평했으며 나 원내대표도 “한국당이 대안정당으로서의 국민 기대가 반영됐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는데, 이 같은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최종적으로 ‘선거제 개혁’ 치킨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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