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만난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인데, 이를 둘러싼 갈등과 엇박자의 파열음은 대한민국에서 강하게 나오고 있다. 우파 보수와 좌파 진보간의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해석 차이가 너무나 크다. 과연 어느 쪽이 김정은과 북핵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것일까.

3월5일 아침 7시30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에서는 제2차 미북정상회담을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두 개의 세미나가 동시에 열렸다. 자유한국당의 김무성 정진석 의원이 주최하는 세미나에는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이 연사로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29명이 주최한 세미나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강연자였다.

전성훈 전 원장은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모른 채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만 갖고 애매하게 타협했던 한국과 미국의 비핵화 외교는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북한은 ‘북핵 폐기’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핵 보유국가로 인정받겠다는 전략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핵 개발을 숨겨오다가 지난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력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가 선대의 염원이자 강력한 보검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결렬 이후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하는 비핵화의 간격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전성훈 전 원장은 이제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아 대한민국 안보시스템을 전혀 달리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억지력 유지를 위해 핵을 자체 개발하거나 핵 전략자산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에서 우발적으로 핵을 사용할 때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핵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간 정세현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가 돼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 띄우기에 바빴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5월 제1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될 위기에 처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정상회담이 잘 이뤄졌는데, 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가교 역할을 하고 (미북간) 용접할 시점이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인 효과가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 시키는 동력이다’고 말한 부분을 언급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 버전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정 전 장관은 “남북이 손을 잡고 경제협력을 강화해 북한이 우리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의 발언 중 우려스러운 대목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비난 부분이었다. 그는 미국이 군산복합체의 나라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때문"이라며 "볼턴은 한반도 문제에서 매우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볼턴)을 보면 인디언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을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잘 했다고 하는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난다"는 말도 했다. 정 전 장관은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는) 강선은 작년 6월에 나온 이야기다. 구문(舊聞)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고 여론을 역류시키는 앞잡이가 볼턴인데 판 깨놓고 아니면 말고 식"이라고 했다.

정 전 장관은 "(볼턴이) 이번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부탁을 받은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을 떠올리게 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유튜브 채널인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통해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가 나오고 나서 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아니었나. 그 각료들도 희색만면해 잘됐다고 한다"며 "3·1절에 그 장면을 보니 화가 나더라"고 했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베 때리기’는 국내 여론을 위해 전혀 나쁠 게 없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었다.

사실 제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미국의 막강한 정보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북한에 대해 구석구석까지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보력은 키홀(Key Hole, 열쇠구멍)로 불리는 첩보위성과, U-2 정찰기, 각종 정보 요원 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과의 군축협상에서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라는 러시아 속담을 즐겨 인용했다. 미국 관료들은 북한에 대해서도 이 원칙을 지켰고, 그게 북한 김정은의 행동반경을 좁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인사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이 감정적인 해석과 우방국 인사들에 대한 인신공격에 나선 모습이었다.

아무튼 ‘세기의 만남’이라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별 소득이 없이 끝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60시간이 걸리는 기차여행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직접 내놓은 말이 없다. 다만 로동신문 1면에 ‘우리 당과 국가, 국내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웰남사회주의공화국에 대한 공식친선방문을 성과적으로 마치시고 조국에 도착하시였다’고 전했다. 미북 정상회담 결렬이라는 최고 존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로동신문은 북한이 3대 세습국가이자 절대 독재자 국가임을 확인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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