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더듬고∙∙∙노리개 취급해요”

흔히들 '성희롱'하면 남성보다는 여성 피해자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남성의 전화’에 걸려오는 성희롱 피해남성들의 상담 전화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남성들도 성희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나타낸다. 남성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는 강간이나 혼인 빙자 간음 등과는 달리 직장 내 성희롱에서는 남성들도 제도적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남녀 성별에 관계없이 직장 내 지위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인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준다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성희롱에 원치 않는 성관계까지 99년 고용평등법이 개정된 뒤 노동부는 지방 노동관서 등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 상담과 신고를 받고 있으며 성희롱이 인정될 경우 해당사업체에 과태료 부과 등 처분을 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한 지방공장에 근무하는 P씨는 지난해 말 여성 선배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노동부는 정황을 검토한 결과 이 여성들의 행위가 직장 내 성희롱이었다고 인정했다. 99년 정부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신고를 접수 한 후 처음으로 여성에 의한 남성 성희롱이 인정됐다. P씨는 성적인 수치심과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분을 참지 못해 노동부에 2명의 성희롱 주범을 고소했다. 또 피해자인 P씨는 가해자로 인정되어 회사로부터 해고당하여 이에 회사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해 정신적 고통을 준 회사와 2명의 가해자에게 각 3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서울의 한 중견 기업에 근무하는 K씨(26)는 요즘 직장 내에서 여직원들과 눈길을 마주치는 것이 두렵다. 회사 내 나이 많은 유부녀 직원들이 그에게 음란패설을 던지거나 엉덩이를 더듬는 등 성희롱을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새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운 요즘 상황에서 사표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K씨는 할 수 없이 '남성의 전화'에 상담을 의뢰했다. 대처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직장인 L씨(32)는 직장 여성 상사로부터 수시로 성희롱을 당한다. 여성 팀장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자신이 가는 곳에 동행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차례 업무와 상관없이 식사 및 술자리를 같이했다. 물론 L씨는 술자리 등에서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성적으로 놀림을 받곤 했다. 그러다가 이씨는 얼마 전 팀장의 압박에 못 이겨 원치 않는 성관계까지 맺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팀장의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관계를 종용해왔다. 이씨는 '남성의 전화'에서 "상사의 요구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을 토로했다. 여자만 당할 수 없지 않느냐는 의식이 문제 이렇듯 '남성의 전화'등에는 성희롱의 '가해자'로만 알려져 있던 남성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접수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덩달아 여성 상급자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여성들에게는 '여자만(성희롱을)당할 수 없지 않느냐'는 비뚤어진 남녀동등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남성의 전화' 이옥소장은 "최근 들어 성희롱 문제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건수가 부쩍 늘었다"며 "특히 여성 근무자가 많은 블루칼라 계열의 업종에서 관련 사실을 토로하는 전화가 자주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직장인 성희롱 실태조사는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한국노총은 얼마 전 금융, 관광,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조합원 1,027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했다.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조사에 응한 남성 근로자 세 명중 한 명이(36.8%)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성희롱 유형을 보면 기존 여성들의 사례와 별 차이가 없다. 우선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힌 후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거나 춤을 추자고 요구하는 경우가 14.7%로 가장 많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슴이나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7.6%) 입맞춤, 포옹, 뒤에서 껴안는 등의 신체적 성희롱(7.5%)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상사로부터 성관계를 요구받는 남성도 3%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이미 성희롱을 당한 남성 직장인들의 소송이 끊이지 않는 등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 행정부 소속 기구인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한 해 동안 성희롱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남성은 전체 성희롱 건수의 13.6%에 달한다. 기업체들의 적극적인 성희롱 교육으로 소송은 점차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담건수는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다. 드러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성희롱을 상담하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성희롱을 당하는 남자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만만치 않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등의 뒷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여러 차례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여성들의 인식은 많이 개선된 편이다. 관련 상담소를 찾아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박정옥 가사는 "예전에는 '성희롱을 당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문의전화가 많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변했다"며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화되면서 피해사실을 토로하기 보다는 회사측의 미온적인 대책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했다. 이에 반해 남성들은 혼자서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자인 책임상담원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서 남성들은 드러내놓고 성희롱 사실을 토로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성희롱을 토로할 수 있는 루트도 변변치 않은 게 사실이다. 유 책임상담원은 "여성들의 경우 직장이나 상담소를 통해 성폭행 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마련돼 있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며 "덕분에 대다수의 남성들은 혼자서 삭이는게 대부분이다"고 덧붙였다. 어쩌다 회사에 신고를 해도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회사 측이 나서서 문제를 덮어버리는가 하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사직서를 강요하는 등 '2차 성폭행'에 시달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성도 성보호를 받아야할 시기 전문가들은 남성들도 성희롱 문제에 대한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은 "지난 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은폐하거나 해결책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대할 경우 처벌 받도록 규정돼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어떠한 경우라고 성관계를 가지지 말기를 조언하다. 이 소장은 "아무리 여성의 강요에 의해 성관계를 가졌다 해도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남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응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성에 의한 남성 성희롱 사례도 늘고 있는 것은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고, 사회적인 분위기 역시 성적으로 개방 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여성이 성 피해자로 고소하면 고소를 당한 남성은 증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해자로서 억울한 누명을 쓸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는 남성들이 성희롱을 하느냐, 당하느냐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점차적으로 남성 성희롱 피해자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여성의 예처럼, 남성들도 성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마땅히 남성 성희롱 피해자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성희롱, 성폭력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아름다운 성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성에 대한 진지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성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육체적인 피해는 이 사회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 성 문화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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