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회 '인간 상록수'로 추대된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살아온 역사는 그 자체로 우리 민족종교가 지난 세기 동안 겪어온 질곡의 역사이자, 21세기에 이르러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민족종교의 새역사이기도 하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갱정유도에 입도한 그는 줄곧 민족종교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다, 마침내 1985년, 해방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던 여러 민족종교 교단을 한 데 모은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왕성한 활동을 펼친 바 있는데, 벌써 20년째 회장직을 맡아 민족 종교의 뿌리를 단단히 하고, 활동영역을 대폭 넓히며, 나아가 '남북화해'의 실마리로써 민족 종교가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한회장의, 이렇듯 오랜 기간 동안의 공로는 마침내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2001년에는 국가에서 수여하는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의 영광을 누렸고, 지난 5월 29일에 열린 '제 17회 인간상록수 추대식'에서는 경산대학교 재단이사장 이육주 선생과 함께 '인간상록수'로 추대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새롭게 '인간상록수'의 칭호까지도 더한 한양원 회장을 찾아 그의 종교관과 정치관, 그리고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이번에 사단법인 한국상록회에서 개최한 추대식에서 '인간상록수'로 추대되신 일,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간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의미있었다거나, 후회없이 살았다는 식의 자부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를 점차 먹어가다 보니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고, 왜 좀 더 잘 살아보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많은 분들이 받은 상을 내가 받게 된다 생각하니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양도 여러 번 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또 상을 받아온 걸 보면 아직까지도 나는 좀 덜 된 사람인가 봅니다. (웃음)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상이 남은 여생을 지나간 인생보다 훨씬 값진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생각과 각오를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회장님께서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직을 맡으신 지도 벌써 햇수로 20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20년 간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활동 중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시는 일과, 또 그간 가장 미흡했다고 생각하시는 점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사실 이 협의회를 만들기 전만 해도, 우리 민족종교들은 서로 적대의식을 가지고 상극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협의회를 만들어 서로 상봉, 내왕하게끔 하자 서서히 화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각각 종교 이름만 다를 뿐이지 모두 다 좋은 시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동반자로써 서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미흡했던 점도 많습니다. 절대 짧은 세월이라 할 수 없는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왜 좀 더 의욕적으로 활동해서 좀 더 나은 성과를 낳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 후회가 많습니다. 욕심같지만, 더 잘 찾아보면, 더 깊이 생각해보면 분명 지름길이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작년부터 시작된 '겨레얼 살리기' 운동을 통해 이제부터라도 후회없이,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다는 각오를 새삼스레 다지고 있습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겨레얼 살리기' 운동은 지난 해에 '겨레얼 지키미' 운동으로 처음 알려졌었습니다. '지키미'에서 '살리기'로 취지가 변모한 연유와, '겨레얼 살리기' 운동이란 과연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 알고 싶습니다. '겨레얼 지키미'는 작년에 시작된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운동입니다. 여기서 '겨레얼'이란 우리 민족의 혼을 가리키는데, 우리 혼을 되살려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하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 앞장서 나가자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이며,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내가 먼저 앞장서서 해나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일깨우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겨레얼 지키미' 운동은 지난 해 제주도에서부터 국내 대도시 12곳에서 순회강연회를 열어 1만 5000∼6000명 이상의 참가객을 동원한 행사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올해 국제세미나를 하면서 '겨레얼을 지키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살려야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금년 5월 28일부터 '겨레얼 살리기' 운동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순회강연회 중심이었던 작년에 비해 금년에는 강좌를 추가로 진행하고 있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매월 두 차례 강좌를 하고, 또 대도시를 중심으로 순회강연회도 계속 해 나갈 계획입니다. 올 8월 20일에 대전시민회관에서 대강연회가 예정되어 있고, 외국에 나가 우리 교포들을 상대로 강연회를 열 계획도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서구종교의 경우 활발하고 다양한 복지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갔고, 근래 들어서는 불교계도 복지사업의 영역을 넓히고 각종 문화행사를 마련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종교로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민족종교가 이런 면에서 그간 부진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 민족종교가 물질적인 사업의 측면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의 본래 민족 정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어 서구 사상과 문화가 유입되고, 그러다보니 물질문명이 정신문명을 압도해버린 현재의 상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눈으로 보이는 성과에 자극받고, 그래서 더욱 이에 주력하게 되고, 이런 물질중심의 사고가 만연한 가운데 정신 운동을 펼쳐나가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찌보면 현재, 서구적 사상이 물질에 치중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한 것처럼, 우리 민족종교 역시 물질적인 면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겨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적인 면은 중요한 것이고, 이것을 약화시켜 물질적인 면을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민족종교계에서 아직까지도 범법행위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만큼 정신적인 측면은 인간 삶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과의 균형을 이루어, 우리 민족종교도 물질적인, 가시적인 면을 보완해 더욱 건강하고 건전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종교로 나아가야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전까지의 종교계는 정치적인 문제, 사회적 문제에 개입되길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종교계도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또 이를 가시적인 운동으로 이끌어내고도 있는데, 우리 민족종교의 경우에는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내가 갓을 쓰고, 한복을 고집스럽게 입고 다닌다해서 세간에선 내가 현실사회와 동떨어진 사람은 아닌가 오해들을 하고, 정치적인 면과는 더더군다나 거리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나는 정치도 우리것, 사회도 우리것,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요소가 우리것이고, 내것이기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40여년 전, 미국과 소련의 조종에서 벗어나 남북이 서로 합심해 화해를 이루자고 주장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이렇듯, 나는 정치적인 입장표명을 경원시하지 않고, 항상 세상 모든 것이 다 '우리것'이므로, 다 주장을 하며 세상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정치 풍토를 보자면, '상생'이라는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쓰여지고 있는 듯한데, '상생'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하는 말들인지 의문이 갑니다. 정말 '상생시대'를 만들고, '상생정치'를 하려면,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을 먼저 이롭게 하는 것',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것'이 바로 '상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상생'을 부르짖고 잇는 정치판은 어떻습니까? 나부터 생각하고, 내 것부터 챙기려 하고, 내 이득만을 좇고 있으면서 '상생'을 외치고 있습니다. '상생'은 구호가 아닙니다. '상생'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원칙이고, 규약입니다. 정치인들이건, 일반대중들이건 간에, 이 '상생'의 말뜻을 명확히 알고,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면서 썼으면 합니다. 한회장님은 특히 남북간 문화교류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간의 성과와 달라진 점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겠습니까? 그간 평양을 벌써 6차례나 다녀오고, 지금도 올해 개천절 행사를 논의하자는 팩스가 들어와 있는 상탭니다. 물론 처음부터 일이 쉽게 풀렸던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동족상잔의 비극을 통해 나뉘어진 국토의 국민들인지라 처음에는 참 어렵고 삭막한 분위기가 연출됐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북측도 우리를 함께 민족 정기를 되살릴 동반자로서 점차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북측 분들과 처음 만났을 때 말했습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는 총과 칼이 아니고, 주의나 사상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도의'를 함께 지니고 있으며, 이 '도의'를 해방 이전의 순수한 상태로 되살려낸다면 통일도 먼 일만은 아닐 것이고, 비로소 우리 민족 앞에 찬란한 서광이 비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분들도 내 말뜻을 받아들이고서, 이제 만나면 "늙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어르신들이 왕성하게 활동해 주셔야 저희들도 힘이 납니다"라고 인사도 건네곤 합니다. 현재 북측은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북측에서 '종교'란 현재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또 북측에도 우리 민족종교의 뿌리가 아직 남아 한국민족종교협의회와 긴밀히 교류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사실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는 종교가 허용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고,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종교 교류가 이루어지다 보니까 북측에서도 '종교'라는 것이 서서히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천도교, 이렇게 4대 종교가 존재하고, 이 4대 종교를 모아 '종교협의회'라는 것이 창설되어 현재 북측에서 적십자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재언씨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대화창구용'으로써 종교의 활성화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줄곧 종교활동이 없던 곳에서 이를 처음부터 시작하려니 힘도 들었겠지요. 하지만 그렇듯, 조금은 억지스럽게 시작되었던 것이 이제는 완전히 활성화가 돼서, 교회도 만들고, 절도 다시 보수하고, 천도교를 중심으로 '단군민족통일협의회'가 만들어져 북의 '단군릉'을 관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남북 교류가 북의 종교 문화를 되살려 놓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족종교에 젊은층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과연 민족종교가 지니고 있는 어떤 요소가 젊은층의 참여를 저지하고 있는 것이라 보십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일제 시대에 자행된 '민족 정기 말살 정책'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총독부의 민족 정기 말살 정책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바로 우리 민족 정기를 대표하는 민족종교였고, 그렇기에 민족종교를 '사교(邪敎)'로 몰아붙여 대중들을 떼어놓은 것입니다. 이런 정책 탓에 일제 치하에서 민족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어디 나가 자기 종교를 떳떳이 밝히지 못했고, 해방 후에는 이렇듯 불행한 시대상황에서 비롯된 '습관'에 더해, 앞서 언급한 물질만능주의의 도래로 인해 민족종교의 위상이 더욱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민족종교의 대(代)가 한번 끊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 민족종교에는 청장년층이 현저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앞서 말한 외부사정 탓도 있지만, 그간 어려운 사정 탓에 청장년층을 길러낼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각 종단에서 젊은이들을 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포교의 현대화, 홍보의 다각화를 통해 좋은 성과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10년 후에는 '민족종교에는 젊은층이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금 뿌린 씨앗이 잘 커나가리라 기대하고 있고, 지나치게 종교적 깊이만을 강요하지 않고 현실참여도 하면서 젊고 활기찬 분위기로 혁신해 나갈 예정입니다. 끝으로, 한회장님의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서양이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그것도 힘으로써, 전쟁으로써 상극의 상황을 조장하는 이 힘겨운 시대가 마침내 끝나고, 바야흐로 동세서점(東勢西漸)의 시대가 다가왔다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동세서점(東勢西漸)은 곧 상생의 시대를 상징하며, 힘이 아닌 정신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로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의지를 말합니다. 지난 해 미국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했을 때, 우리 민족종교는 정반대로 평화를 선포하고 나섰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평화 외에는 없고, 평화로써만 이 땅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우리 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내건 '겨레얼 살리기' 운동을 통해, 우리 혼을 살리면서 세계평화를 이루어내는 일입니다. 이 꿈을 내 생을 마칠 때까지 반드시 이룩해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