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탕롱(昇龍, 하노이 옛이름)에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떠오르는 용(昇龍)’이 된 인물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뉴스가 됐다. 그가 담배를 태울 때 재떨이를 대령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까지 화제로 올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제2차 미북회담이 성공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까지 희석되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도 호의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평화를 위한 첫 걸음’ ‘한반도 봄 연다’ ‘3000km 달려왔다’ ‘열차 대장정’ ‘낭만기차는 달려 간다’ ‘영변 핵폐기-종전선언 명문화에 통 큰 결단 기대’  등등. 

오히려 ‘영변 핵폐기만으로 제재 못푼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는 기대도 못할 상황’ ‘하노이 핵담판’ 등 이번 회담이 갖는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질문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과연 김정은은 ‘한반도 평화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솔직 담백한 인물이고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다. 경제 발전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을 더 잘 살게 하겠다는 그런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옳기를 바라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사실을 가르쳐줬다. 역사는 ‘독재자는 악질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이다’라는 팩트(사실)로 수놓아져 있다. 김정은도 예외가 아니다.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란 오로지 자신만 알고 자신에게만 애착하는 사람으로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Narcissos)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나르시시스트의 마음에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이 비집고 들어갈 영역은 없다. 이들은 남들을 상대적으로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고,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막강한 권력과 성공에 대한 환상을 지니며 기분에 따라 욱하는 성향이 강하다, 조건만 잘 만나면 일부 악질적 나르시시스트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데,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나르시시스트는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의 특성을 보인다. 종종 가학적이고 끝도 없이 권력을 탐한다. 그러면서도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적이고 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의 위엄과 권능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악마적인 본성을 가리는데도 능숙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이코패스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마오쩌둥, 이디 아민, 김정일, 폴 포트, 사담 후세인. 카다피 등이 있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과 집시 등을 학살하며 인종청소극을 벌였다. 성격은 의외로 가정적이고 생활도 매우 모범적이었다. 상대를 띄워 주는 다정한 말투로 비서나 주변 인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히틀러는 스스로를 순수 화가이며 문필가라고 말하면서 예술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탈린은 본명이 이오시프 주가시빌리였는데 ‘강철’을 뜻하는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그는 1930년대에 우크라이나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게 만들고 수많은 정적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주치의가 건강을 생각해 업무량을 줄이라고 조언하자 분기탱천해 즉각 체포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그러한 스탈린도 세평에 의하면 매우 정감있는 사람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훈훈한 유머감각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변덕스러움과 무자비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보건장관이 후세인에게 난국 타개를 위해 ‘일시 사임 후 대통령직 복귀’를 건의했다. 후세인은 감사 인사를 한 후 체포를 명했다. 장관 부인이 석방을 간청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한 후 다음 날 토막 난 시신을 가방에 담아 부인에게 보냈다. 1979년 7월에 있었던 ‘반역자 회의’에서는 60명 이상의 동료들을 반역 모의 혐의로 체포했고, 살아남은 당 간부들이 반역자들을 총으로 쏘아 죽게 만들었다. 공범 의식을 주입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1950년대 말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데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문화혁명 당시 수많은 사람이 맞아 죽어간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마오쩌둥은 "히틀러가 더 잔인하지 않았나? 사람을 더 많이 죽일수록 진정한 혁명가가 되어간다"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시인이자 문장가였고 중국 고전에 밝은 지식인이었는데도 그 뒷면에는 이런 잔인함이 있었다.

그렇다면 대를 이어 권력을 물려받은 ‘세습 독재자’는 어떨까.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의대를 나오고 영국에서 유학했다.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의 뒤를 이어 2000년 35세의 나이에 대통령이 됐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정치제도를 개혁하려면 민주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법의 지배가 우리의 자유를 지켜줄 것이다."라고 말하며 정치범 수백 명을 석방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개혁 욕구가 거세지자 아사드대통령은 돌변했고,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반정부 투쟁이 계속되자 화학무기로 반군은 물론 민간인까지 무차별 살상했다. 시리아는 분열돼 이슬람국가(IS)의 터전이 됐고, 지금 온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해외로 떠났다.

리비아의 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의 둘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는 영국에서 공부했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의 주제가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의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반(反)카다피 시위가 발발하자 TV에 등장해 "피가 강물을 이룰 것"이라고 국민을 협박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사는 벵가지를 반군이 장악했다는 이유로 전투기를 동원해 무차별 폭격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피를 이어받은 김정은에 대해 그의 서울 방문을 환영한다는 ‘위인맞이 환영단’은 “(김정은의) 모습은 겸손하고 배려심 많고 결단력 있고 배짱 좋고 실력 있는 지도자였다. 나이를 떠나 진정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연 이른바 '위인맞이환영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앞서 열린 백두칭송위원회 광화문 집회 참석자도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모습은 김 위원장의 본래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은을 귀엽게 묘사한 피겨와 캐릭터 상품도 나왔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나 카다피의 아들처럼 외국(스위스) 유학파이니 뭔가 다를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쏴 죽이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극물로 암살한 김정은의 진짜 행태를 애써 외면한다.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 이유로 ‘양봉음위"(陽奉陰違, 앞에서 받들고 뒤로는 딴마음을 품는다)’가 얘기됐다. 면종복배(面從腹背)나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뜻인데, 양봉음위는 김정은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적용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북한 사회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역사를 보면 ‘악질적인 자기애’를 보이는 나르시시스트, 즉 사이코패스는 추종자를 많이 끌어 모을 수 있다. 리더의 아집과 비타협적 행동은 소신으로 포장되고, 권위주의적 행동은 카리스마로 둔갑한다. 많은 사람이 그의 권세에 눈이 멀고 영화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에 홀린다.

하지만 역사는 ‘악질적인 나르시시스트’가 지닌 오직 하나의 관심은 끊임없는 권력 확보임을 가르쳐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못할 게 없다. 독재자인 북한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빵(경제)이 아니라 ‘칼과 총(무력)이며, 세계를 향해 과시할 수 있는 무력은 핵무기다. 핵이 권력기반인데 과연 이를 순순히 내려놓을까. ’패망이나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스스로 내려놓은 독재자는 없었다는 게 역사의 진실이다. 독재자에 대한 환상과 착각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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