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도산 위기 처한 현대차 2차 협력업체들
손실보상·기업인수 요청했다가 ‘공갈죄’ 실형

사진 / 시사포커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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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 임솔 기자]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업체들이 최근 수 년 사이 줄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2차 협력업체 경영자들이 납품을 중단하며 손실 보상이나 기업인수를 요청했다가 공갈범으로 내몰리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 협의회 소속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로 인해 부도 위기에 놓인 갑질 피해자들이 공갈범으로 처벌받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밝혔다.

추 의원에 따르면 현대차와 대기업 1차 협력업체들은 직서열생산방식(JIS, Just in sequence)과 전속거래 체제 아래서 2차 협력업체들에게 지속적인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왔다. 현대차 매출 신장기에는 늘어난 매출 덕에 협력업체들이 최저 마진으로도 버틸 수 있었으나 2010년대 들어 현대차의 매출이 부진해지면서 중소협력업체들부터 줄줄이 경영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부도 위기에 직면한 2차 협력업체 경영자들은 현대차 또는 1차 협력업체에 자금 지원 또는 회사 인수를 요청하게 됐다. 그러나 현대차 1차 협력업체들은 2차 협력업체들을 지원해줄 것처럼 달래다가 몰래 금형을 강탈하기도 하고 해당 금형을 다른 업체에 넘긴 뒤 갑자기 거래를 끊는 식으로 2차 협력업체들을 고사시키는 일이 빈번했다고 추 의원은 주장했다.

2018년에는 1차 협력업체로부터 기습적으로 거래 중단을 당한 천안 소재 2차 협력업체 대표가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일부 2차 협력업체 경영진들은 최후의 저항으로 회사 문을 걸어 잠그고 납품 중단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며 현대차 및 1차 협력업체에 충분한 보상금 지급이나 기업인수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대차 1차 협력업체들은 대형 로펌을 끼고 일단 계약에 응하는 형식을 갖춰 납품을 재개하도록 한 직후, 계약 무효를 주장함과 동시에 2차 협력업체 경영진들과 그 가족들까지 공갈죄로 형사 고소해 왔다. 법률 문외한이 대부분인 2차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형사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면서도 정작 회사는 빼앗긴 채 막대한 손해배상금만 물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이런 문제는 지난해 8월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가 주최한 갑질 피해 증언대회에서 소개된 후 국회 토론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지적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게 됐다. 올해 설 연휴 직전인 1월 31일 현대자동차 2차 협력업체인 태광공업의 전 회장과 전 사장 부자(父子)가 2심 재판부에서 공갈죄로 각각 징역 2년형과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다시 한 번 하청업체들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이 도마 위에 올랐다.

추 의원은 “하도급 전속거래관계에서 하청업체들은 거래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교섭력을 갖기 어렵다”면서 “이들이 부도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납품 중단에 대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넘어 형사 사법이 개입하는 것은 국가공권력의 남용 소지가 큰 만큼 이를 막을 입법을 신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 협의회 관계자들은 “기업 부도 위기시 긴급 납품 중단권을 주장하는 것은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그런 경우조차 공갈죄로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국회가 나서달라”며 국회에 관련 입법을 청원했다.

추 의원은 이와 관련해 “부품 생산을 위해 ‘갑’이 대여한 금형 탈취를 막고 불공정행위로 인해 부도 위기에 처한 하청업체가 계약 상의 의무이행을 중단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하도급법 개정안과 거래조건 합리화를 위한 중소기업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며 “법이 강자의 갑질을 막고 약자를 보호해 공정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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