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부대’가 장악한 한국당 전대…황교안까지 태극기부대에 ‘러브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태극기부대의 모습. ⓒ시사포커스DB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태극기부대의 모습.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태극기부대가 장악하다시피 한 전당대회로 인해 한국당이 극우 논란에 휘말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각계각층에서 쏟아지고 있다.

당내에서까지 이런 비판이 나오자 그간 태극기 부대에 힘입어 목소리를 높여온 일부 후보들이 뒤늦게나마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력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부정하는 입장을 내놓는 등 다시금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어 자칫 전대 초반 일어났던 ‘컨벤션 효과’마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계륵’인가 ‘대세’인가, 선거판 뒤흔드는 태극기부대

그동안 정치권보다 장외집회를 통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태극기부대가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줄줄이 입당하면서 한국당조차 점점 대한애국당과 유사한 급진 우경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건 지난 14일과 18일 각각 대전과 대구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였는데, 태극기부대는 당 대표격인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단상에 올라서자 “김병준 나가라”, “빨갱이” 같은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으며 급기야 18일 연설회에선 김 위원장도 더는 못 참겠는지 큰 소리로 “조용히 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뭘 이야기하고 요구하는지 알고 있다”고 항변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당을 쇄신하기 위해 영입한 김 위원장조차 불과 반년여 만에 이런 취급을 받는 상황인데 반해 친박 색채를 드러내온 김진태 의원은 이날 태극기부대가 김 위원장 연설 도중에도 한 목소리로 연호했을 만큼 확고하게 지지받고 있어 한국당이 다시금 탄핵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당 대표 출마 후보 중 ‘비박’ 성향으로 분류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박근혜 대통령하고 더 가깝다고 하면 국민들이 표를 주시겠습니까”라고 호소했으나 연설회장을 장악한 태극기부대로부터 야유만 들었고 “보수 말아먹고 왜 왔나. 바른미래당으로 가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는데, 아예 이들은 ‘우리가 대한애국당이냐. 김진태 데리고 애국당 가라’고 발언했던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를 향해선 거친 욕설까지 퍼부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물론 한국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던 태극기 부대 규모는 약 8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어 37만8000여명의 전체 선거인단 수에 비하면 2%에 그친다는 점에서 단지 ‘목소리 큰 소수’가 과잉 대표됐다는 지적도 일부 없진 않지만 선거인단의 27% 정도를 차지하는 18일 대구·경북 지역 합동연설회마저 앞서 대전·호남 연설회 때보다 한층 우경화 색채가 짙어졌을 정도로 태극기부대에 의해 좌지우지돼 후보들도 이들의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몇몇 후보들은 태극기부대가 환호할 만한 ‘과격 발언’을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김준교 청년 최고위원 후보의 경우 김순례 최고위원 후보가 구설에 올랐던 ‘5·18 망언’이 무색할 정도로 15일 “문 정권을 탄핵시키지 않으면 자유대한민국이 멸망해 북한 김정은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18일엔 “짐승만도 못한 저 종북주사파 정권과 문재인을 민족반역자로 처단해야 한다.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인가”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김 후보는 자신을 향한 비판이 쇄도했음에도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에서 아무리 막말·극우 프레임으로 엮어도 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고 맞받아친 데 이어 20일엔 “10대 대선은 원천 무효이고 문재인 역시 대통령이 아니므로 제가 현직 대통령에게 막말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등 줄곧 태극기부대와 비슷한 태도로 일관했다.

◆ 당 지지율 하락에 ‘급진화’ 제동 거는 목소리도 비등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19일 오전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 우경화 분위기와 관련 “당이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19일 오전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 우경화 분위기와 관련 “당이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사진 / 오훈 기자

하지만 후보들까지 태극기부대에 부응하는 상황이 오히려 당 지지율 하락이란 역효과로 나타나자 한국당 내에서도 쓴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먼저 비박계 김무성 의원부터 1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된다. 당이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당은 역사퇴행적인 반동세력이 아니다. 지극히 일부 사람들에 의해 볼썽사나운 이념투쟁장으로 변질된 연설회장”이라며 “더 이상 5·18 논쟁이나 박 전 대통령 논쟁을 할 시간이 없다. 당을 극우정당으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였는지 투표로 증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뿐 아니라 친박계 홍문종 의원까지 같은 날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조금은 지나치지 않았나. 당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또 당 중진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많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으며 박근혜 정부 2대 총리를 지냈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 역시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화합 아래 국가를 발전시키자는 게 정당의 존립 이유인데 이런 식으로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선 없어져야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당내에선 물론 당 밖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집중됐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9일 조승현 상근부대변인 논평에서 “한국당 합동연설회는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저질스러운 망언으로 난장판이 됐다. 극우 당원들의 표를 얻기 위한 망언경쟁의 끝판”이라며 “모든 책임은 저질 정치인들이 막말과 망언을 마음껏 내뱉도록 무대를 마련한 한국당이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야당인 바른미래당에서도 손학규 대표가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당을 겨냥 “전당대회는 온통 극단적 지지자들에 의해 극우정치의 잔치장이 되고 있다. 전대에서 대통령에 대해 하지 못할 말들이 나오는 정도”라며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오로지 당권 쟁취와 역사를 과거로 돌릴 생각에만 급급하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같은 당 정병국 의원도 이날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나와 “오죽하면 저희들이 분당해가지고 새 정당을 만들었겠냐. 개선도 없이 심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한국당 상황에 일침을 가했다.

◆ ‘극우’ 비판에도 ‘태극기 여론’ 우선? ‘朴 탄핵’ 놓고 黃까지 동참

TV토론회에 나선 한국당 당 대표 후보들의 모습. (좌측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 있다. ⓒ시사포커스DB
한국당 당 대표 후보들이 토론회에 나선 모습. (좌측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진태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 있다. ⓒ시사포커스DB

이렇듯 당 안팎을 막론하고 ‘극우화’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비등한데도 한국당 선관위는 18일 정작 막말 논란을 일으킨 후보들이 아니라 태극기부대와 김진태 후보를 싸잡아 비판한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에게만 주의 및 시정명령을 내렸고, 19일 나경원 원내대표도 전당대회가 급진 과격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민주당이 전당대회 해도 비슷한 현상이 있지 않을까. 일부 걱정도 있겠지만 충분한 자정능력으로 당이 거듭날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선지 ‘도를 넘었다’는 비판에 잠시 자세를 낮췄던 후보들도 다시금 태극기부대에 ‘코드’를 맞추는 모양새인데, 19일 “대구 합동연설회장에서 야유 등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 저도 마음이 불편하다. 앞으로는 보다 품격 있는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입장문을 내놓은 김진태 후보는 같은 날 오후 TV조선 주최로 열린 당 대표 후보 TV토론회에선 “태극기집회하시는 분들 너무 놀리거나 그러지 마라. 그렇게 이상한 주장하는 분들 아니다”라고 ‘태극기부대’를 적극 두둔하고 나섰다.

여기에 김준교 최고위원은 당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징계 논의’ 때문인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완구 전 총리님과 홍문종 의원님, 당의 어르신과 선배님들께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젊은 혈기에 실수했다”면서도 “한국당이 사는 길은 선명한 애국우파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라며 도리어 자신에게 후보직 사퇴를 촉구하는 민주당까지 겨냥 “2017년 초 민주당 모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더러운 잠’이란 그림을 국회 의원회관에 게시했다. 품격을 생각한다면 민주당 의원께서 의원직 사퇴하라”고 입장을 내놨다.

결국 태극기부대에 경도된 모습을 당내외의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끝내 버리지 못했는데, 그만큼 태극기부대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의미인지 여태 박 전 대통령 탄핵 등에 말을 아껴온 황교안 전 국무총리마저 19일 한국당 대표 후보 2번째 TV토론회에선 작심한 듯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거 입증 안 됐다. 그런 상황에 탄핵이 타당한지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며 그동안 보인 행보와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지난달 한국당 입당 기자간담회에서만 해도 황 후보는 ‘탄핵이 잘못됐느냐’는 질문에 “지금 절실한 게 국민통합”이라며 즉답을 피했던 데 비추어 이번 발언은 설령 친박 프레임에 갇힐지언정 태극기부대 표심을 끌어오려는 의도에서 나왔단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사실상 이번 전대 결과를 좌우할 변수는 중도층보다 ‘태극기부대’란 반증 아니겠느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전당대회는 다른 선거에 비해 투표율이 높지 않다 보니 소수더라도 열성 지지층이 있는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 황 후보가 이 시점에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고 나선 것은 사실상 유일한 비박 후보인 오 전 시장이 받을 ‘비박 단일화 효과’보단 친박 김진태 후보를 지지하는 ‘태극기부대 위력’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남은 연설회와 토론회에선 황 전 총리의 변화에 태극기부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여부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흐름이 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 ‘극우 논란’을 한층 부채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향후 한국당 지도부의 대응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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