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논쟁’ 해결 못해 뒤숭숭한 바른미래당…이를 이용해 ‘흔들기’ 나선 평화당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사이에 정계개편 논의에 나선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좌)과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우).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사이에 정계개편 논의에 나선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좌)과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우).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난달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무산을 계기로 여당발 정계개편론은 식어버렸지만 야권발 정계개편론은 정치권 내에서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이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경우 일부 의원들 사이에 실제 논의가 이뤄진 바 있고, 최근 자유한국당마저 합동연설회 도중 일부 후보가 ‘자유우파 빅텐트’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야권발 정계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통합설 ‘선 긋기’에도 정계개편론 계속 ‘솔솔’

현재 야권발 정계개편론 중 먼저 주목 받는 곳은 장기간 ‘지지율 저조’ 국면에 빠져 있는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인데, 바른미래당은 원내 제3당이지만 5석의 정의당 지지율도 넘어서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을 보이고 있지 못한 실정이고 평화당은 아예 바른미래당보다도 낮은 지지율로 더욱 속이 타들어가고 있어 동병상련 처지인 이들 두 당 일각에서 나름의 혈로를 모색할 방안으로 지난달 30일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해 논의까지 한 바 있다.

특히 이미 지난해 9월말부터 김경진·이용주 등 일부 초선의원들의 탈당설이 불거진 적 있을 만큼 일찌감치 당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 기류가 감돌았던 평화당에선 무소속 의원들의 민주당 입당 좌절로 여당발 정계개편론이 사실상 무산되자 이번엔 바른미래당과의 야권발 정계개편에 적극 나선 모양새다.

이에 반해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가 12일 기자회견에서 “평화당과의 합당 문제는 거론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데다 하태경 의원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번만 더 이런 (평화당과의 통합을 거론하는) 일이 일어나면 당 차원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을 정도로 지도부 차원에선 단호히 일축하고 있어 원내대표가 직접 논의에 나선 평화당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심지어 바른미래당 내에서 호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이 주로 ‘평화당과의 통합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지만 호남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주승용 의원이 10일 페이스북에서 “평화당과의 통합은 아직 이른 이야기고 지금은 통합의 명분이 서지 않는다. 한국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4월 재보궐 선거 치른 뒤 시간이 흐르면 국민들께서 정계개편 명분을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속도조절을 주문하거나, 김관영 원내대표는 아예 “다시 헤쳐모여 하는 게 국민들에 얼마나 감동 줄지 의문”이라고 회의적 시각까지 내비치는 등 온도차가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양당 간 정계개편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징계 경고도 개의치 않은 채 ‘제3세력론’을 내세우며 평화당과 접촉하는 의원들이 있는데다 손 대표 역시 여전히 정계개편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당 정체성’ 논란을 진화하기보다는 한층 부채질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바른미래 ‘중도세력론’, 확장 방향은 어느 쪽?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실제로 김동철 의원과 함께 지난 12일 ‘제3정당의 길’이란 토론회에 참석해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황주홍 의원과 “민주당과 한국당을 대체할 제3세력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가 13일 하 의원으로부터 ‘당 차원 징계’ 경고까지 나오게 만든 박주선 의원은 14일에도 연합뉴스TV에 나와 거듭 제3정당 필요성을 거듭 주장하면서 일각의 시선처럼 호남당을 만들려하는 게 아니고 평화당 내에서조차 국민의당 분당 앙금 때문에 바른미래당 측에 아직도 일부 반감이 있을 정도지만 모두의 미래를 위해 중재에 나섰다는 취지로 ‘제3세력론’을 정당화했다.

또 손 대표는 유승민 전 대표까지 참석한 1박2일 동안의 연찬회에서 당 정체성 문제를 논의했지만 그 뒤에도 곧바로 개혁보수 뿐 아니라 ‘합리적 진보’도 아우르는 중도통합의 길로 나가겠다고 천명했고, 12일 창당 1주년 기자회견에선 “유승민 전 대표도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는 정책에 동의해 줄 것”이라고 발언해 진보 쪽과는 거리를 둔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을 자극했다.

이런 불만을 보여주듯 13일 열린 창당 1주년 기념식엔 불과 며칠 전 열린 연찬회에도 나타났던 유 전 대표는 물론 정병국·이혜훈·정운천·지상욱 의원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대거 불참했으며 오로지 당직을 갖고 있는 하태경 최고위원과 오신환 사무총장,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 정도만 참석해 분열된 당 내부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더구나 14일 YTN ‘뉴스N이슈’에 출연한 하태경 최고위원에 따르면 유 전 대표가 원래 보수만 고수했는데 연찬회 때 ‘중도까지 양보하겠다’고 했다면서 “당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보수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에, 더 많이 지지하는 쪽에 힘을 모아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것”이라고 손 대표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하 최고위원은 직접 손 대표를 겨냥 “우선 중도보수 쪽에서 힘과 세력을 모아 진보로 2단계 확장을 하자는 것인데, 손 대표가 거부한 것이 당의 핵심 갈등”이라며 “지지층 확장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단을 촉구했는데, 급기야 손 대표가 평화당과의 합당은 거론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진보 통합도 고수하는 건 과거 자신이 탈당했던 민주당 내 ‘친손학규계’ 의원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인 게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이 바른미래당에서 끊이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실상 저마다 출신 지역구의 민심을 고려한 부분도 없지 않기 때문인데, 민주당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장 중도·보수만 내세울 경우 호남지역에서 당선되기 쉽지 않을 거라 판단하는 의원들은 ‘진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반면 대구가 지역구인 유 전 대표 등 보수 성향 의원들은 한국당도 있는 판국에 진보란 꼬리표를 계속 단 채로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데 한계가 있을 거란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바른정당 출신인 오신환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의 경우 12일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한 쪽에 우리가 매몰되지 않고 젊은 20~30대 층과 수도권 중심의 정당으로 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한 데 이어 안철수·유승민 역할론도 들면서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른미래당 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간극을 좁히려는 모습도 보였다.

◆ 속 타는 평화당, 정계개편 위해 바른미래 ‘흔들기’ 본격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DB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DB

하지만 평화당에선 한시가 급한지 바른미래당을 흔들어서라도 결과를 내려는 보이는데, 오 사무총장이 한국당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유 전 대표가 거취를 정하지 않겠느냐는 견해에 “한 번도 그런 거취 문제에 대해 유 전 대표가 얘기한 적 없고 과대하게 왜곡돼 전달되지 않았나”라고 해명했음에도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같은 날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나와 “한국당 전당대회 보면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 태도가 결정될 것이고 손 대표도 진보, 중도개혁의 길을 갈 수 있기에 그때 (정계개편) 자연스레 발생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이 뿐 아니라 박 의원은 양당의 호남 출신 일부 의원들이 ‘제3정당’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데 대해서도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이 다시 뭉쳐 호남을 위해 기지개 켜자는 의미에서 모였다고 들었다”며 당사자들의 부인이 무색하게 호남당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바른미래당 내 보수의원들의 의심에 불을 붙였고 “정치는 중요한 게 정체성이기 때문에 햇볕정책 지지하는 우리 세력과 보수를 고수하면서 햇볕정책 반대하는 분들의 길은 갈라지게 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한 발 더 나아가 박 의원은 14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유 전 대표는 개혁보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친박당, 한국당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고 (거기서) 받지도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지금 유 전 대표가 갈 곳이 없는 것”이라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향해 “비박들 데리고 나와 신당을 한다면 좋고 그래야 유 전 대표도 갈 곳 찾는다”면서 “한국당에 대척할 수 있는 비박당도 있어야 될 것이고 또 진보개혁세력도 뭉쳐야 된다는 생각”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최근 한국당에선 표면상이나마 황교안 전 총리나 오 전 시장이 당권경쟁 와중에 보수 통합·결집 의사도 간간이 내비치고 있는 만큼 일부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15일 비박계 김학용 의원이 동 라디오 방송에 나와 “비박이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오 후보를 도와야 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고 밝혔던 데 비추어 오 전 시장이 한국당 내 비박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기대는 현재로선 그저 박 의원의 희망사항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평화당에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본격 속도를 내려는 상황인데, 오는 22~23일 진행할 비공개 워크숍에서 창당 논의를 위해 공론화 과정을 거칠 방침이고 한국당 전당대회도 끝난 뒤인 3~4월 중 구체적으로 추진할 예정인데, 20인 이상만 돼도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14명 규모인 평화당에서 최소 6명의 바른미래당 의원만 끌어와도 ‘제3당’을 출범시키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줄곧 출당을 요구하며 평화당에서 활동해 온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상돈 의원의 경우 평화당 측 움직임과 달리 속도조절 쪽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는데, 이 의원은 14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당대당 통합은 불가능하다. 무리해서 합당해 오늘날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라며 “연말쯤 가게 되면 바른미래당이 상당히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거기서 변화의 출발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이 의원의 전망처럼 바른정당 출신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도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누군가는 녹차도 팔고 커피도 파는 두 가지 아이템을 파는 거라고 주장하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습이다. 존재할 수 없는 상품”이라며 진보와 보수의 공존이란 상황엔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는데, 과연 장차 바른미래당이 평화당의 희망대로 분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인지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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